눕기가 삶을 좌우한다

- 1장 왜 지금 눕기인가

by 김뭉치

삶은 좌절 투성이다. 오늘 아침만 해도 나는 좌절했다. 거의 매일 아침 나는 좌절감을 느낀다. 일단 5분만, 5분만 하다 진짜 5분 늦게 일어났다. 준비를 마치고 출근하려 시간을 보니 출근도 5분 늦을 각이다. 부랴부랴 나가 보니 마을버스가 서 있다. 아침부터 단거리 달리기를 시작해보지만 버스는 코앞에서 떠난다. 다시 하릴없이 마을버스를 기다린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역으로 가니 방금 지하철 한 대가 떠났고 4분 동안 다음 지하철이 오지 않는다. SNS로 시간을 때우고 다음 지하철을 탄다. 연신내역에서부턴 경보가 시작된다. 시간을 보니 9시 정각에 출근 가능하겠다. 에스컬레이터에서부터 사람들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6호선이 왔나 보다. 덩달아 발이 안 보이게 후다다닥 뛰어 내려가 본다. 에스컬레이터에선 분명 뛰지 말라고 했지만 그 문구는 나의 지각을, 대표의 꾸지람을 책임져주지 않을 것이다. 가까스로 도착했지만 6호선 지하철이 떠나는 모습을 본다. 다음 지하철은 6분 뒤에 온다. 자아효능감이고 성취감이고 없고 내게 남은 건 허탈함뿐이다. 누군가는 5분 일찍 일어나면 될 일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배차간격은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5분 일찍 일어난 어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30분쯤 먼저 일어나면 될 일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게 되면 나에게 이런 에피소드가 남겠는가.


9시부터 꼬박 8시간을 앉아 있다 보면 저녁이 내려앉는다. 그마저도 야근을 하면 까무룩한 밤길을 나서야 한다. 꼼짝없이 컴퓨터를 바라보며 긴장한 채 앉아 있다 보니 어깨는 코끼리가 올라선 듯 무겁고 목은 뻣뻣하게 굳어 있다. 눈두덩이를 꾹꾹 눌러 보지만 모니터를 보느라 이미 피곤해질 대로 피곤해진 눈을 어쩔 도리는 없다. 전문가들은 50분 컴퓨터를 봤으면 10분은 쉬라고 하고 척추를 위해서도 일하는 중간중간 산책을 나서야 한다고 하지만, 회사에 묶인 몸에게 그런 자유는 사치다. 50분 컴퓨터를 보다 10분 쉬면 그 업무는 누가 해주나. 직원이 근무시간 중간중간 산책에 나서는 걸 좋아할 대표가 있을까.


그렇게 척추는 굽어지고 안구는 피로해지고 목은 뻣뻣해지고 어깨는 눌린 채로 저린 다리를 겨우겨우 움직여 집으로 오면, 누워야 한다. 아니, 누울 수밖에 없다.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듯 우리 몸과 마음을 충전해줘야 오늘의 남은 시간과 다가올 내일을 보낼 힘을 얻을 수 있다. 선 채로 충전되는 배터리는 없다. 배터리들은 배터리집에 반듯하게 누워서, 휴대전화 속에 예쁘게 누운 채로 충전된다. 도대체 왜 누워야 하냐고, 그 시간에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나라도 더 해야 하지 않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면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 「영국 대 영국」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그가 말했다. "놀지는 않고 너무 공부만 하는 것 아니야?"
"맞아요." 찰리가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병원에 갔어요. 의사가 강장제를 처방해주면서, 나더러 기본적으로 건강한 몸이라고 하더라고요." 찰리가 상류층 영국인인 의사의 목소리를 흉내 내자 마이크가 즐거워했다.
마이크는 찰리의 장난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한쪽 눈을 찡긋했지만, 직업상 항상 즐거운 표정을 지어야 하는 그의 얼굴은 여전히 심각했다. "너무 한꺼번에 기운을 다 쓰려고 하지 마." 그가 진심으로 주의를 주었다
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의사랑 똑같은 말을 하시네요. 너무 한꺼번에 기운을 다 쓰지 말라고 했거든요. 의사가."
(중략)
"사실 의사 말이 옳았어요. 좋은 뜻에서 한 말이니까. 그런데요 마이크, 난 해내지 못할 거예요. 실패할 것 같아요."
"뭐 그런다고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잖아."
"세상에. 내가 그래서 아저씨를 좋아한다니까요. 인생을 넓게 바라보시니까."


나는 여기서 술집 주인 마이크의 질문을 "눕지는 않고 너무 공부만 하는 것 아니야?"로 바꾸고 싶다. 눕기는 놀기의 상위개념이다. 눕기 안에는 놀기가 포함된다. 그래서 눕기는 즐거운 일이다. 눕기는 본능이다. 눕기는 좌절감을 안기지 않는다. 눕기는 피로를 만들지 않는다. 눕기에는 지시도 없고 명령도 없고 실패도 없다. 그저 눕는 내가 있을 뿐이다. 또 "너무 한꺼번에 기운을 다 쓰려고 하지" 말라는 술집 주인 마이크의 조언대로 눕기는 삶의 균형을 맞춰주는 행위다. 한꺼번에 기운을 다 쓰려는 우리를 붙잡아주고 소진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충전시켜주는 행위다. 이 세상에 눕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만큼 눕기는 삶을 좌우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눕기는 게으름의 표상처럼 굳어진 게 사실이다. 누가 눕기에 오명을 씌웠는가.


삶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삶의 추는 늘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거나 불균형하기 일쑤다. 이제 나처럼, 김영하 작가처럼 "함부로 앉아있지 말고" 대체로 누워 있어 보라. 너무 한꺼번에 기운을 다 쓰면 안 된다. 눕기는, 기운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고 안으로 쌓일 수 있게 도와주는 최적의 행위다.


집에선 대체로 누워있어요! 함부로 앉아있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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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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