눕기의 일상성

- 3장 눕기의 효용

by 김뭉치

나는 매일매일 줄기차게, 어제도 오늘도 눕고 있다. 누울 때는 어떤 궁리도, 오늘은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누워보겠어, 하는 결의도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추구하지 않고 그저 어제처럼 오늘도 혼자 누울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쟤 또 누워 있네, 말할 것이다. 타인에게는 매번 똑같은 모습으로 보이거나 게으름뱅이로 비칠 수 있는 나만의 길티 플레저다.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길티 플레저는 갖고 싶지 않다. 나는 특별한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해서 내 안에 숨어 있는 특별함을 찾으려 애를 쓴다. 그러나 어쩌면 그런 것은 찾을 필요가 없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일상성의 힘을 믿는다. 일상성이란 인간 본연의 자세이기도 하고, 날마다 반복되는 성질이기도 하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일상성은 '자기만의 일상성'으로,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언급한 '평균적 일상성'은 아니다.


일상성으로서의 나의 힘은, 나는 특별하지 않음을 자각한 데에서 나온다. 나는 나를 포장하고 싶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그리 대단치도 않고 거의 모든 일에 확신이 없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요즘 여기저기서 자존감에 대한 얘기가 많이 들려온다. 우리는 자존감이 낮고 그래서 스스로를 괴롭히기에 낮아진 자존감을 다시 끌어올려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면서 나 자신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고 특별한 존재이니 숨은 나의 특별함을 찾으라고들 한다. 그러면 잃어버린 자존감이 다시 돌아올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어쩌면, 자존감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하는 데서 찾아지는 것 아닐까. 나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 나의 불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특별함 따위는 없다. 그러니 굳이 애를 써서 특별함을 찾을 필요도 없다. 그건 그저 수고로울 뿐이다. 이건 절대 절망적인 일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지 자신에게 물어보고 그렇게 발견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건 스스로의 일상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그의 실존에서부터, 즉 그 자신으로 존재하거나 그 자신이 아닌 것으로 존재하거나 할 수 있는 그 자신의 한 가능성에서부터 이해한다. 현존재는 이러한 가능성들을 그 스스로 선택했든가, 아니면 그 가능성들 안으로 빠져들게 되었든가, 아니면 각기 이미 그 안에서 성장해왔다. 실존은 장악하거나 놓치는 방식으로 오직 그때마다의 현존재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현존재는 일상적으로 ‘서로 함께 있음’으로 타인들에 ‘예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존재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이 그에게서 존재를 빼앗아 버렸다. 타인들이 임의로 현존재의 일상적인 존재가능성들을 좌우한다. 이때 이러한 타인들은 ‘특정한’ 타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어느 타인이건 다 그 타인을 대표할 수 있다. 결정적인 것은 오직 ‘더불어 있음’으로서의 현존재가 뜻하지 않게 떠넘겨 받은 눈에 띄지 않는 타인들의 지배일 뿐이다".


우리가 사회의 굴레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해 질문할 시간을 잃어버린 사이 삶은 우리가 무엇인지 물을 새도 없이 '살아진다'. 살아가기보다 살아지게 되는 삶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흐리멍덩하고 애매모호한 혼자만의 눕기가 필요하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나의 존재가 지워진 것은 "형이상학에, 즉 존재의 잊어버림에 그 내력이 있다". 따라서 현대의 삶에 필요한 한 가지 일은, 나 자신에 대해 알아 나를 지키고 간직하는 일이다.


하이데거가 말한 평균의 일상성을 피하기 위해 우리에겐 혼자 고요히 누워 나만의 일상성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워서 홀로 마주하게 되는 그 흐릿함 속에서 나의 존재는 점차 분명해진다. 우리에겐 단지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눕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누구나 누워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도피하거나 망각하지 말자. 사회에, 회사에, 가족에 빼앗기다시피 내던져진 나의 일상은 누워야 비로소 선명해진다. 온전한 일상성의 혁명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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