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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Mar 29. 2018

[받은:책] 셀린에게 점 세 개란

- 『Y 교수와의 대담』(읻다), 『Y 교수와의 인터뷰』(워크룸프레스)

『Y 교수와의 대담』. 국내에 딱 두 권이 번역되어 있는데, 읻다와 워크룸프레스가 그 두 출판사다. 두 권 다 읽어본 결과 번역은 읻다의 책이 더 매끄럽다. 워크룸프레스 판본의 번역가 김예령은 셀린 연구자로서 정밀하게 번역했으나 가독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읻다의 판본으로 술술 읽은 뒤 또 한 번 이 작품을 읽고 싶다면 워크룸프레스의 책을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읻다의 충실하고 독자를 배려한 번역으로 나는 ‘괄호시리즈’를 더욱 신뢰하게 됐다. 최근에 남편이 ‘괄호시리즈’ 9 폴 발레리의 『테스트 씨』를 구매했다. 남편을 마구 칭찬해주고 껴안고 싶다.   


   

『Y 교수와의 대담』(읻다)


다시 작품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Y 교수와의 대담』은 매우 희곡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화자인 셀린과 Y교수(레제다 대령) 둘의 대화로만 전개되며 중간중간 셀린이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나 그마저도 희곡의 지문 또는 독백과 같다. 희극적이면서도 엉뚱하고 유의미해보이면서도 무의미한 대화들은 일견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상시킨다. 다만 Y교수는 갈리마르를 기다린다는 점에서 다르다.      


『Y 교수와의 인터뷰』(워크룸프레스)


화자 셀린의 말투는 자유롭고 신랄하며 작품 전체적으로는 해체적이다. 속어와 비어가 점철된 노골적인 문체는 체계 없는 말들의 화려한 향연과 찰떡궁합이다. 셀린은 냉소주의자나 성격파탄자로 보이며 시건방지기까지 한데, 그 점이 독자로서는 무척 유쾌하다. 또 계속되는 말줄임표는 셀린이 이 작품을 통해 형식적 실험을 이뤄냈다는 점을 일깨운다. 이에 대해서는 읻다 관계자의 리뷰가 잘 말해주고 있기에 여기에 인용한다. ““점 세 개 찍는 대신에, 적당한 단어들로 바꿔 채울 수 있는 거 아닙니까?”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셀린은 “당신, 반 고흐가 성당들을 찌그러지게 그렸다고 해서 비난한 적 있습니까?”, “드뷔시가 박자 무시했다고 비난한 적 있어요?” 하고 따져 묻는다. 소설가로서 “문장을 끝내는 법을 모른”다는 말을 들어도 결코 점 세 개를 포기하지 않는다. “무슨 무슨 풍으로 헉헉거리며 써 내려가는”, “서로 닮았고, 지루하고, 엇비슷한 소설”을 쓰느니 점 세 개를 택한 거다. 점 세 개가 뭐기에? 그게 얼마나 대단해서? 옮긴이 이주환은 말한다. “그에게 있어 글쓰기란 쓰고 싶어서, 또는 가치 있다고 생각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쓰지 않을 수 없어서 하는 일에 가깝다”, “두려움을 글쓰기로 버텨낸 인간”이 셀린이다, 라고. 당신이 셀린을 알고 싶다면, 소설을 읽거나 쓰고 싶다면, 그저 누군가와 같이 걷고 싶다면, 그러니까 어떤 용기를 얻고 싶다면 이 소설을 읽으면 된다.“     



깔깔 웃으며, 깊게 생각하며 읽게 되는 『Y 교수와의 대담』은 글쓰기에 대한 책으로도 손색이 없다. 편집자인 내 직업을 생각하면 출판사 편집자들에게도 더없이 재미날 책이다. 가령 다음의 문장들을 보자.    


“실상은, 그러니까, 아주 간단히 말해, 출판사가 매우 심각한 판매 부진을 겪고 있다는 겁니다. 출판 부수가 1,000,000권이네 40,000권이네 하는 얘기에서 단 하나의 ‘0’ 자도 믿지 마세요! 아니 400권 찍었다는 말조차 의심스럽습니다... 사기예요! 저런... 저런! 오직 〈프레스 뒤 쾨르〉 정도가... 쳇!... 그 정도가 그럭저럭 팔리고... 그 외에는 〈세리 누아르〉, 〈세리 블렘므〉 정도가 근근이 팔리지요... 사실, 더는 책 한 권이 안 팔립니다... 이건 심각한 상황이에요!”(p.7)      



지금의 상황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흡사 자신이 자신을 인터뷰하는 것 같은 이 소설은 셀린이 자신을 홍보할 목적으로 기획한 작품이라 지금의 출판 마케팅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가스통은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두르시오!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도록 하란 말이오!“     


한편 과거의 셀린은 지금의 독자들에게 어떻게 일갈하는가. “그럴듯한 정치적 과거가 있고, 좋은 편집자가 붙고, 할머니가 둘, 셋 있고, 유럽 어딘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거나 “공쿠르상”을 받은 작품이라면 덮어놓고 읽지 않냐고 힐난한다.     


또 그는 작품 전반에서 권위적인 출판 현실을 풍자한다.


“선생들이 하나같이 무슨 무슨 “풍으로” 헉헉거리며 써 내려가는 걸 보는 게 참 애처롭습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서로 베끼는 거예요... 그분들은 수업에 너무 자주 들어갔어요... 수업에 들어가 있는 것이 그들 직업이죠... 그런데 수업 시간에 우리가 뭘 배웁니까? 서로 닮는 법을, 그러고서는 서로 베끼는 법을 배우잖아요... 공쿠르상을 받고 싶어 하는 모든 작가들은 서로 베껴댑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그들의 작품은, 이런저런 미술전이 있을 때마다 우르르 출품되는 그림들과 꼭 닮은 꼴로, 정체되었고, 서로 닮았고, 지루하고, 엇비슷합니다... 미술전 금상작이나, 공쿠르 수상작이나, 한쪽은 엉성한 그림이고 다른 쪽은 막 휘갈긴 잡소린데도... 그게 사람들을 퍽 행복케 한다지요! 그래서 Y는 그 벤치에 앉아, 내 곁에서, 자기 거지 같은 원고로, 금상을, “공쿠르”를 받을 생각에 푹 빠져 있던 것이죠! ‘가스통이 한 번만 눈길을 던져준다면, 가스통이 한마디만 건네준다면!’”(p.18)


“내게는 관념이라는 게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내 생각에, 관념이란 것보다 더 천박하고, 진부하고, 역겨운 것도 없습니다! 도서관마다, 그리고 카페테라스마다, 관념들로 꽉 차 있어요!... 무력한 사람들이... 그리고 철학자들이!... 관념을 곱씹어대지요... 관념이란 거... 그게 그들의 산업입니다!... 그들은 관념을 갖고 젊은이들에게 허세를 부리지요! 그들은 젊은이들의 포주 노릇을 하려 들어요!... 젊은이들은, 아시다시피 뭐든 마구 삼킬 준비가 되어 있으며... 무엇을 보더라도 이거 “주우우욱이는데!”를 외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철학자들이 젊은이들을 창녀처럼 다루는 것이 얼마나 용이하겠어요! 정열 어린 청춘기가 저 “관녀어엄”들 앞에서, 그리고 더 정확하게 짚자면 ‘철학’ 앞에서 흥분하느라, 열광하느라 바쳐지는 것입니다 선생님!... (중략) 그들은 내달리고, 짖어대다가, 자기 시간을 잃고 말지요, 이것이 요점입니다!... 이제, 젊은이들과 놀아주는 데 여념이 없는 저 모든 삼류 작가들을 봐보세요... 그들이 끊임없이 젊은이들에게, 속이 텅 빈, 그리고 ‘철학적’인 가짜 뼈다귀들을 던져주는 모습을... 아, 청년들이 목이 쉬어라 짖어대는 모습을!... 얼마나 만족해합니까! 얼마나 감사해합니까!... 그들은, 포주들은 젊은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어요! 관념들!... 더 많은 관념들! 결론을! 지적 변화를! 포르투갈 포도주에 절여서! 언제나! 논리적이고! 주우우우욱이는, 포르투갈 포도주에 담가서!... 젊은이들은 속 빈 강정일수록 더 넙죽넙죽 삼키고, 먹어치우죠! 그들이 저 가짜 뼈다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과아아안념이라는 장난감뿐이거늘!...”(p.20)


“문학상을 받은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다 개똥 같은 것들이라고 일축하시렵니까?...” “아뇨! 높이 삽니다! 진심으로 높이 평가합니다! “졸작”으로서 말입니다!... 팔십 년은 뒤처진 인간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집필에 매달리는 모습은, 하나같이, 아카데미 미술전에 금메달 따려고 달려들던, 1862년의 사람들 같더란 말입니다... 아카데미풍이든, 살짝 “벗어난” 풍이든, 아예 반?아카데미풍이든,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골고루 다 필요하죠!... 다만 졸작이면 되는 거예요!... 아나키스트 졸작!... 과장이 심한 졸작!... 빌어먹을 놈의 졸작!... 졸작...!””(p.27)    


혹독한 절망까지도 위트로 풀어내는 셀린의 문장들을 보며 그의 다른 책들을 더 읽고 싶어졌다. 사르트르는 어떠한 이유에서 셀린의 영향을 받은 걸까. 혹 그도 이러한 이유로 셀린의 영향을 받았다고 표명한 건 아닐지. 어느새 갈리마르의 집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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