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의 중심에서 개를 외치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오마주한 듯한 도입으로 <개들의 섬>은 시작된다. 매 시퀀스마다 감탄을 연발했던 건 정교하기 짝이 없는 인형들이 실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모형을 1000개 이상 제작해 작업기간만 6개월이 넘게 소요된 인형들이라고 하니, 웨스 앤더슨의 강박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자로 잰 듯 딱 떨어지는 대칭 미쟝센과 인스타그램에서 많이 봐 이제는 익숙해진 탑뷰숏, 컬러칩을 참고해 물들이듯 자연스러운 따뜻한 색감까지, 보는 재미 하나는 역시 웨스 앤더슨이 끝판왕이다. 게다가 스칼렛 요한슨, 에드워드 노튼, 빌 머레이, 틸다 스윈튼 등 웨스 앤더슨 사단의 유명 배우들이 목소리 출연을 했기 때문에 목소리만 듣고서 어느 배우일지 맞추는 재미도 있었다.
치료약이 있음에도 개 혐오증 때문에 쓰레기 섬에 방치된 개들. 추방된 자신의 개를 찾기 위해 쓰레기 섬으로 향하는 주인공 소년. <개들의 섬>의 스토리는 자연스레 감독의 전작을 떠오르게 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냉전시대의 폭력을 중심에 두고 만들어졌다면, <판타스틱 Mr. 폭스>는 동물과 농장주의 대립을 다뤘다. <개들의 섬> 역시 전작들과 맥을 함께하고 있는 듯 보인다. 독재자이거나 야쿠자처럼 보이는 고바야시 시장과 집단적이고 폐쇄적인 메가사키 시의 시민들은 포비아에 사로잡혀 개들을 모두 내쫓는다. 이건 명백히 제국주의 일본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 모습은 인종차별정책을 내세우는 트럼프 정부와 일치한다. 내가 이 작품을 웨스 앤더슨식 트럼프 비판 우화로 보는 건 그래서다.
실제 몇몇 평론가들에게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이 일기도 했다는데, 백인 구원자로 등장하는 미국인 교환학생 트레이시 캐릭터는 그런 지점에서 불편하긴 하다. 불의가 일어났을 때 그에 맞서 조직을 모으고 항거하는 이는 일본인 아타리가 아니라 서양인 트레이시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있었지만 영화 자체가 가벼운 터치로 그려진 판타지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그 불편함이 계속 상기되진 않았다. 트레이시의 경우에도 자막 쓰는 걸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감독의 성향이 반영됐을 수도 있으니까. 어찌 보면 웃자고 보는 영화에 죽자고 덤벼드는 꼴이 될까봐 그렇기도 했을 것이다. 한편 치프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려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웅들과도 모습이 닮아 있는데, 종국엔 아키라의 경호견이 되면서 그 모양새가 어째 이상하다. 개들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아 모르겠으나 주체적인 떠돌이 개로서의 삶도 괜찮지 않을까.
그나저나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고양이』를 쓰더니 웨스 앤더슨은 <개들의 섬>을 찍었다. 어쨌거나 지금 핫한 건 동물임이 틀림없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이렇게 읖조리자. “인간의 오랜 벗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 벚꽃이 떨어진다”
- 스시 만드는 신이 워낙 길고 힘주어 만들었다 보니 웨스 앤더슨을 비건으로 착각할 뻔했다. 생선을 도륙하는 장면이 그토록 잔인하다.
- <개들의 섬>은 <블랙 펜서>를 떠올리게 한다. 두 영화 모두 근미래의 일본, 근미래의 와칸다를 배경으로 하는데 어찌 된 게 근미래의 나라들 정치 체제가 하나같이 왕정 시대 느낌 물씬이다. 심지어 고바야시 시장이 감옥에 가니 그의 열두 살 난 조카 아키라가 시장이 되는 체제다. 이런 영화 속 미래의 정치 체제 회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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