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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랑 Jun 10. 2018

뉴욕 산부인과 이야기

다양한 민족과 생각들의 집합체

한동안 일을 쉬다가 다시 돌아온 일터는 참 만만치 않았다.

일을 쉬기 전 마지막 직장이 있었던 LA에서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였던 걸까, 

소아/성인 유전학을 몇 년간 하다가 돌아온 산부인과가 낯설어서 그랬던 걸까,

뉴욕의 산부인과에서 유전상담사로 적응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물론 지금도 끊임없이 발버둥 치고 있는 실정이라 적응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뉴욕이라는 도시는 참 신기하다.

뉴욕만이 갖는 느낌이 있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특별함을 내뿜는 사람들로 가득 찬, 텃세 부리기는 당연하고, 기가 세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도시라는 느낌. 


내가 일하는 산부인과는 뉴욕에서도 잘 사는 동네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참 의사들의 기도 세고, 직장동료들의 기도 세고, 하다못해 환자들의 기는 더 세다. 환자들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사회적 지위가 어느 정도 있고, 고등교육을 받고, 돈도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더 그럴 수밖에 없지 싶다. 




산부인과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겪게 된 두 부류의 집단이 있다. 하나는 직장동료라는 부류와 다른 하나는 환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의 부류이다.


직장동료 이야기

내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텃세와, 잘난 척과, 남을 무시하고, 존중이라는 것은 가볍게 생략해버리는 사람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제일 가깝게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이러니 참 괴롭다. 꿈에 나와서 날 괴롭힐 정도니. 뭔가 나랑은 너무 코드가 안 맞는 느낌. 


뉴욕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원래 일하던 사람들이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시험"해보는 시기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이 하는 일을 잘 해내고 어느 정도 자기네들이 "인정"한다고 느끼면 그제야 베스트 프렌드가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데, 나는 참... 시작이 안 좋은데 어떻게 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물론 시간이 지나면 내 생각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오늘 하루만 잘 넘기자 하는 심정이다.


더 얘기하기도 싫다 ㅎㅎㅎ


환자 이야기

대도시답게 만 35세 이상의 고연령 산모가 많다 ("고연령 산모"라는 단어가 싫지만 그렇게 통용되고 있으니 뭐... 우선 그렇게 쓰기로 한다). 내가 만나는 환자들은 대부분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환자들이어서, 만 35세가 넘었거나, 스크리닝 검사/진단검사 등에서 이상 결과가 나왔거나, 초음파상으로 이상소견이 있을 때 주로 나를 만나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뉴욕이라는 도시가 빠르게 돌아가고, 그 속도를 못 맞추면 내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지다 보니, 불안장애, 우울증 등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실제 내가 만나는 환자들 중에서도 불안장애와 우울증 약을 많이들 복용하고 있다. 물론 임신 중에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싶겠지만, 어떤 연구에 따르면 임신 중에 약을 먹어서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잘 조절하는 것이, 약을 먹지 않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버티는 것보다 더 건강한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다는 결과가 있다. 불안장애, 우울증이 이 도시를 지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삭막한 사회의 이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요즘에는 난임도 많고 임신을 늦게 하다 보니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공수정을 많이 하게 한다. 인공수정을 하는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내가 뉴욕에서 만나는 환자들이 인공수정을 하는 이유는 - 특정 유전질환에 대한 가족력이 있어서 (인공수정을 통해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음), 난임으로 인해 정자나 난자를 기증받아서 (기증보다는 돈 주고 산다는 표현이 더 옳지만), 그리고 동성커플의 경우 정도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돈이 많은 사람들은 대리 산모를 사는 경우들도 있다. 남의 난자, 남의 정자, 대리 산모 등을 통해 아이를 갖게 되는 경우, 기분이 어떨까 싶겠지만, 이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히 하기로 하자. 


내가 만나는 또 하나의 환자 부류는 종교적인 신념이 강한 유대인 집단이다. 이들은 그들만이 지켜야 하는 원칙과 규율이 따로 있어서, 모든 것은 라바이라 불리는 그들의 종교적 지도자한테 허락을 받은 후 실행해야 한다. 어떤 때는 라바이가 유전상담에 동행해서 대신 결정을 내려주기도 한다. 이 집단의 환자들은 대부분 피검사, 양수검사, 낙태, 태아의 유전자 검사 등을 거부한다. 종교적 신념에 어긋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좋은 크리스천이 있으면 선데이 크리스천 혹은 성탄절에만 교회에 가는 크리스천이 있는 것처럼, 유대인도 종교적 신념이 강한 유대인이 있고 그냥 태생만 유대인인 사람들도 있다. 유대인은 참 독특한 집단이어서 예전에는 유대인들끼리만 결혼을 하는 문화가 있었다 보니, 특정 열성 유전을 하는 유전질환에 대한 보인자 확률이 높다. 문제가 되는 것은, 커플이 같은 유전질환에 대해 보인자인 경우, 25%의 확률로 아이가 그 유전질환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속하는 대부분의 유전질환들은 어린 나이에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심각한 유전질환들이다. 그래서 유대인 종교센터 같은 곳에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특정 유전질환에 대한 검사를 해주기도 하는데, 만약 커플이 같은 유전질환에 대한 보인자인 경우 결혼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미국에는 보인자 검사(carrier screening)가 발달해 있는데, 특히 유대인들에서 많이 나타나는 유전질환들은 꼭 포함되어 있다.


이 외에도 물론 우리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온다. 뭐... "평범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평범하든 평범하지 않든, 임신과 출산을 겪게 되면서 느끼는 감정들은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기쁨으로 시작했다가 불안해지고, 불안함이 슬픔이 되기도 하지만 다시 행복으로 바뀌기도 하는 과정들. 그 감정을 존중하며, 인정하며, 임신이라는 여정에서 잠시 그들의 나침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요즘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과 사상들을 가지고 살고 있구나 배우게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내가 옳다고 믿는 신념은 접어두고 환자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하는 유전상담사로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배우려는 자세로 나아가고 있지만, 참 어렵다. 언제까지 뉴욕에 있게 될지 모르겠지만, 여기에 사는 동안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이 도시를 바라보게 될 수 있길.



6월의 더운 초여름날.

Arang Kim, MS, CGC

Certified genetic counse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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