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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랑 May 03. 2019

"너는 자격이 없어"

보인자 검사 (carrier screening)의 결과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빴던 어느 날.

프런트 데스크에서 추가로 환자 한 명만 더 봐달라는 연락이 왔다.

스케줄도 마침 괜찮았고, 환자로 오는 커플에게는 한시라도 빨리 상담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흔쾌히 보겠다고 했다. 내 스케줄에 넣으면서 프런트 데스크 매니저가 말하기를 본인에게 좀 예의 없고 무례하게 대했으니 나에게도 조심하라고 경고 아닌 경고를 해주었다. 내가 일하는 뉴욕의 upper East side는 부유하고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인 만큼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흔히 "high maintenance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라고 불리는 환자들이 많이 온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커플을 맞이했다.


커플은 상담실로 들어올 때부터 상기되어 있었고, 내가 미리 조사한 바로는 보인자 검사 (carrier screening) 결과 둘이 같은 유전질환에 대한 보인자로 나와서 그 유전질환을 가진 아이를 낳을 확률이 25%나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 검사 결과만 알고 있었고 전후 사정은 몰랐기에 커플을 맞이하면서 질문해야 할 목록들을 하나하나 생각해두었다.


보인자 검사 (Carrier Screening)

보인자 검사란, 열성 유전을 하는 특정 유전질환들에 대해 나에게 돌연변이를 지닌 유전자가 있는지 검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보인자는 증상이 없다. 하지만 나와 같은 유전질환에 대해 보인자인 배우자를 만나게 되는 경우, 다음 세대에 25%의 확률로 그 유전질환이 나타나게 된다.


미국에서는 임신 전 혹은 임신 초기에 보인자 검사를 많이 한다. 예전에는 기본적으로 *4개의 유전질환에 대해서만 검사를 했었는데, 지금은 비용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대량의 유전질환을 검사하는 것이 용이해져서 한 번에 300개 가까운 유전질환들을 검사하는 회사들이 많아졌다. 알려져 있는 유전질환이 약 6,000-7,000개 정도 되는데, 그중에서 기본적으로는 4개, 많게는 300개의 유전질환을 추릴 때는 어떤 기준이 적용될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보통은 보인자 빈도를 통해 결정한다. 유전자 검사를 제공하는 회사들마다 그 기준이 다르지만, 대개 보인자 빈도가 1/100~1/500 사이인 유전질환들이 보인자 검사 패널에 포함되고 있다. 보인자 검사가 예전에는 백인, 유대인 등 특정 인종/집단에서 흔히 나타나는 유전질환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지금은 pan-ethnic carrier screening이라고 하여 어느 한 인종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종에서, 다양한 보인자 빈도를 갖는 유전질환들을 포함하고 있다.


* 기본적인 4개의 유전질환: Cystic fibrosis (CF; 낭성 섬유증), spinal muscular atrophy (SMA; 척수성 근위축증), Fragile X syndrome (취약 X 염색체 증후군), Smith-Lemli-Opitz syndrome (SLOS; 스미스-램리-오피츠 증후군)




내가 만난 커플은 pan-ethnic carrier screening 검사를 통해 둘 다 *GJB2라는 유전자에 대해 함께 보인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각자 다른 유전질환에 대해서도 보인자라고 나왔지만 커플이 함께 보인자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원래 유전자의 이름은 비스듬한 글씨채로 써야 하는데 브런치에서는 그 옵션이 없는 관계로 그냥 쓰기로 한다. 혹시 과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이 보셨을 때 불편하실까 봐 :)


GJB2라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 nonsyndromic hearing loss and Deafness (DFNB1)라는 유전질환을 일으킨다. 이 질환의 증상은 감각신경성 난청 (sensorineural hearing loss)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사람마다 증상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살면서 나아지거나 심해지지 않는다. 또한, nonsyndromic이라는 명칭이 붙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감각신경성 난청 이외에 다른 증상은 하나도 없다. 치료는 보청기의 착용이나 인공와우 수술이 있고, 많은 경우 어린 나이부터 수화 교육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한다. 많은 환자들이 물어보는 것 중 하나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냐는 것인데, 이 질환은 정신지체나 자폐, 신체적 장애가 수반되지 않는다. 오로지 청각상실만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질환을 심각하지 않은 유전질환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청력을 잃고 태어나는 것이 세상과 단절된 것이라 여겨 아주 심각한 유전질환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내가 만난 커플은 이 유전질환을 매우 심각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들의 성격, 가족 상황, 사회적 지위, 문화, 유전질환에 대한 인식 등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적용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태아가 유전질환이 있다고 밝혀지면 낙태를 하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이 커플은 날 만나는 날 아침,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검사 결과를 전화로 통보받고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의사로부터 환자 본인과 남편이 모두 nonsyndromic hearing loss and Deafness라는 유전질환에 대해 보인자라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지금 임신한 태아가 이 질환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25%가 된다는 것, 이 질환의 증상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원한다면 유전상담사를 만나 더 설명을 듣고 태아를 검사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를 할 것을 추천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산부인과 의사가 정말 훌륭하게 환자에게 안내를 해줬다고 나는 생각했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이 환자는 의사에 대한 불만도 빼놓지 않고 나에게 털어놓았다. 이때 나는 이미 환자가 뭔가 비난할 대상을 찾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쉽지 않은 상대일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나는 커플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보인자 검사는 왜 하는 것이고, 각자의 검사 결과가 뜻하는 것은 무엇이고, 둘이 같은 유전질환에 대해 보인자이기 때문에 지금 임신한 태아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 모두 이 유전질환을 가지고 태어날 확률이 25%라는 것, 융모막 채취법이나 양수검사를 통해 태아의 유전질환 여부를 검사할 수 있다는 것, 임신 전에 알고 싶다면 인공수정을 통해 체내에 착상하기 전 유전질환 검사가 가능하다는 것, 검사의 정확도는 얼마나 되는지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해나갔다. 커플은 내가 제공한 정보에 만족감을 표시했고 융모막 채취법을 통해 태아가 이 유전질환이 있는지 검사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우리는 융모막 채취법 동의서에 서명을 했고 나는 검사에 대해 안내해주었다. 다행히 내가 일하는 산부인과에서 당일날 검사를 할 수 있어서 날 만난 후 바로 검사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검사 결과는 2주 정도 후에 환자가 부탁한 대로 (본인은 전화를 받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에게 전화로 알려줄 것이라고 얘기했고, 우리는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나는 이 일이 있은지 반년이 넘게 지난 지금 생각해봐도 우리의 첫 만남에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융모막 채취를 통해 실시한 태아의 유전질환 검사 결과 태아에게 nonsyndromic hearing loss and Deafness라는 유전질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이 결과를 남편에게 전화로 알려주었고, 나중에 아내와 같이 다시 전화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자세한 이야기는 나누지 못한 채 전화를 끊게 되었다.


일은 이때부터 터졌다.


커플은 내가 퇴근한 후 전화를 걸었고, 당연히 오피스에 없던 나는 다음 날 아침 출근했을 때 화가 잔뜩 난 환자의 음성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환자가 말하기를 지금 남편이랑 호텔방에 들어와서 전화를 하는데 내가 전화를 받지 않아 당황스럽다면서, 내가 전화를 할 때까지 밤새 안 자고 기다리겠다는 내용이었다. 화를 꾹꾹 누르며 말하는 목소리에 큰일 났구나 하는 마음으로 환자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환자의 남편 전화기도 꺼져 있었다. 계속 전화를 할 수는 없으니 이 메시지를 들으면 나에게 전화하라는 음성 메시지만 하나씩 남긴 채 나는 기다렸다. 연락이 오지 않아 나는 오후 2시쯤 한 번 더 전화를 해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내심 무슨 일이 있나 걱정도 되었다.


오후 3시. 환자에게 전화가 왔다.


남편과 함께 어디 외국에 있다가 어제 오후 내 전화를 받고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다른 환자들은 보통 어디 여행을 가게 되면 혹시 전화를 못 받거나 할까 봐 나에게 여행 일정을 알려주곤 하는데 이 커플은 그러지도 않았고, 심지어 유럽 쪽이라 시간대도 아예 달랐는데, 이도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본인들이 있었던 시간대에는 우리 병원이 문을 연 시간이었다나... 흠...


목소리가 지나치게 상냥한 것이 뭔가 불안했다. 그 상냥한 목소리로 갑자기 내가 잘못한 것들을 알려주겠단다. 내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나에게 욕을 퍼부어댔다. 물론 영어로.


"왜 전화를 안했냐, 너 때문에 밤에 한숨도 못 잤다, 네가 우리 여행을 망쳤다, 왜 결과를 이렇게 알려주냐, 너는 유전상담사로서의 자격이 없다, 첫 만남 때부터 우리에게 무례했다, 우리에게 지금까지 이렇게 대한 의료진은 없었다, 매니저 나오라고 해라, 너네 회사에 너 보고할 거다, 너 같은 애가 의료계에서 일한다는 것을 의료계가 수치로 여길 것이다" 등등.


한 10분을 넘게 혼자 쏘아대는데, 나는 눈물을 꾹꾹 누르며 미안하다는 얘기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환자가 원하는 대로 다른 유전상담사랑 검사 결과에 대해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 환자는 결국 낙태를 선택했다. 내가 이 환자를 봤던 당시 미국 뉴욕주는 24주까지 낙태가 합법적으로 가능했다. 현재는 24주라는 기준이 없어진 상태지만.




한동안 이 환자의 욕설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계속 맴돌았다. 무엇보다 송곳처럼 날카롭게 내 마음에 비수를 꽂은 것은 "유전상담사로서의 자격이 없다"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동료 유전상담사들과 같이 일하는 의사들의 위로도 이 말을 지워주지는 못했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여기고 싶어도 환자 입장에서 봤을 때 나의 작은 행동이나 말 하나가 싫었을 수도, 옳지 않게 여겨졌을 수도 있다. 또한, 환자들은 안 좋은 이야기 혹은 본인이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비난할 무언가를, 누군가를 찾기 마련이라는 것도 잘 안다. 이는 유전 상담학 교과과정에도 나오는 가장 기본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이 모든 것을 다 아는대도 쉽사리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 경력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상담은 여전히 어렵다.


지금은 글로 풀어낼 수 있을 만큼 괜찮아졌지만 그때 당시에는 사람 마음을 저렇게까지 뒤집어 놓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환자가 미웠었다. 유전상담사로 일을 하다 보면, 고마워하는 환자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 하지만 가끔 이 커플처럼 상처 주는 말로 자신의 상황을 남 탓으로 돌리려 하는 환자를 만나게 되면 그들의 상황과는 무관하게 쉽사리 용서가 되지는 않는다. 내가 아직 너그러운 유전상담사가 되기에는 깜냥이 부족한가 보다.




보인자 검사에는 분명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존재한다. 여러 가지 윤리적인 문제도 있다. 검사 전 유전상담을 통해 어떤 검사인지 정확하게 인지한 후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 좋지만, 많은 경우 산전검사의 일환으로 검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실시하게 되기 때문에 이 커플처럼 이런 결과가 나왔을 때 더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된다.


가장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보인자 검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전질환을 검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자폐나 정신지체, 발달장애 등에 대한 "증상"을 알 수는 없다는 것, 유전질환이 있다고 해도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다는 것, 보인자 검사는 확률을 따지는 검사라는 것 등이 있다.


사람들은 알 권리를 논하지만, 알지 않을 권리도 생각해봐야 한다. 예전에는 정말 심각한 유전질환들, 예를 들어 태어나자마자 죽을 수 있다거나, 심각한 기형을 가지고 태어나게 될 그런 유전질환들만 보인자 검사에 포함되어 었었다면, 지금은 상대적으로 덜 심각하다고 여겨지는 유전질환들도 포함되어 있는 패널들을 종종 보게 된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덜 심각한 유전질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태어나기도 전에 미리 알게 되거나, 특정 유전질환의 보인자 중에서도 간혹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 예방하는 차원에서 미리 알게 된 것이 이득이다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모르고 살았으면 더 편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만약 이 보인자 검사가 우리나라에서도 실시가 된다면 우리 사회의 윤리적인 문제, 검사의 장단점, 환자에게 어떻게 상담이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명확히 수립된 후에 진행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약 1년여 만에 다시 글을 쓰게 된 5월 뉴욕에서.

Arang Kim, MS, CGC

Certified genetic counse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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