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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랑 Mar 07. 2018

산부인과에서 들은 것들

친구: "아랑아, 나 산부인과 다녀왔는데, 태아의 정신질환, 자폐, 발달 장애 여부에 대해 한 번에 다 알 수 있는 유전자 검사가 있다고 해서 하기로 했어. 이거 검사하면 진짜 다 알 수 있어?"

나: "검사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나?"

친구: "잠깐만 내가 적어놨는데... 아! 취약 X 증후군 검사라고 써놨어."

나: "아..."


몇 년 전 친한 친구가 임신을 했을 때 통화를 하다가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 나는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병원에서 하는 얘기를 완벽하게 다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의료계에 몸담고 있는 나도 내가 생소한 분야의 전문의를 찾아가서 설명을 들으면 멍 때리게 되는데, 의료계통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야 오죽할까. 그래도 친구와의 전화통화는 조금 수상한 구석이 있었다. 과연 의사 선생님이 정말로 취약 X 염색체 증후군 검사 하나로 태아의 정신질환, 자폐, 발달 장애 여부를 한 번에 다 알 수 있다고 했을까?


인터넷에 임신을 준비하거나, 임신을 했거나, 출산을 한 엄마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들이 많다. 또한, 산부인과를 다녀온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리시는 산모들이 꽤 있다.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자신이 이해한 내용들을 다른 사람들도 알기 쉽게 정리해 놓은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것일까.


유전학 기술의 발달로 20년 전에는 꿈도 못 꿨을 여러 가지 다양한 검사들이 임신 중에 가능해졌다. 이러한 기술들을 이용해서 산모와 그 가족들이 자신들의 상황과 환경에 보다 더 알맞은 선택을 고민할 수 있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선택의 다양성만 놓고 과연 좋다고 할 수 있을까? 다양한 검사들이 가능해진 만큼, 산모와 그 가족들이 소화해야 할 정보의 양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다양한 정보 속에서 산모와 가족들은 얼마만큼의 정보를 이해해야 하고, 또한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 어떻게 판별해 낼 수 있을까?




위에 소개한 친구와의 대화로 다시 돌아가서 친구와 했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면, 태아의 정신질환, 자폐, 발달 장애 여부에 대해 한 번에 알 수 있는 유전자 검사는 없다. 그럼 친구가 소개받았다던 취약 X 증후군이란 무엇인가?


취약 X 증후군 (Fragile X syndrome)

X 염색체에 FMR1이라는 유전자가 있는데, 이 유전자의 특정 부분에 CGG라는 염기서열이 불안정하게 반복되면서 생기는 유전질환이다. 여성은 X 염색체가 두 개이고 남성은 X 염색체를 하나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보다 증상이 덜하다. 여성은 하나의 X 염색체에 이상이 있어도 다른 하나의 X 염색체가 기능을 해주면 되기 때문에 증상이 덜하고, 남성은 X 염색체가 하나이기 때문에 이상이 생기면 대신 기능을 해줄 수 있는 다른 X 염색체가 없기 때문에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 일반 사람들은 CGG가 반복되는 염기서열을 5-44개 정도 가지고 있는데, 취약 X 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은 200개 이상을 가지고 있다.


정상범위: 5-44개의 CGG 반복 염기서열

그레이존: 45-54개의 CGG 반복 염기서열 (염기서열이 불안정하지만 취약 X 증후군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변이 전 단계: 55-200개의 CGG 반복 염기서열 (취약 X 증후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해당하는 여성들은 조기폐경 (40세 이전) 혹은 취약 X 관련 운동실조 등의 증상을 보일 수 있다. 또한, 취약 X 증후군이 있는 자녀를 출산할 가능성이 높다.)

취약 X 증후군: 201개 이상의 CGG 반복 염기서열


취약 X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남성들의 증상은 발달장애, IQ 30-50, 특징적인 얼굴 생김새 (긴 얼굴, 두드러진 이마, 두드러진 턱, 큰 귀 등), 사시, 유연한 관절, 심장질환, 큰 고환, 행동장애, 자폐 등이 있다. 여성의 경우에는 남성보다는 증상이 덜 심하게 나타난다.


이 취약 X 증후군 검사는 태아의 검사가 아니고 산모의 검사이다. 산모의 혈액을 통해 산모에게 이 질환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를 검사하는 것이다. 검사 결과 정상범위가 아닌 그레이존, 변이 전 단계, 혹은 취약 X 증후군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양수검사를 통해 태아를 검사하게 된다. 따라서, 취약 X 증후군 검사는 임신을 했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하는 검사가 아니라 임신 전이라도 본인이 원하는 경우 할 수 있는 검사이다.


이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제 친구와의 대화에서 두 가지 오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태아"를 검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둘째, 취약 X 증후군의 증상 중 정신질환, 자폐, 발달장애가 있는 것이지 취약 X 증후군 검사 하나로 모든 정신질환, 자폐, 발달장애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여러 맘스 블로그나 카페들을 보면, 취약 X 증후군 검사 외에도 산부인과마다 제안하는 검사들이 조금씩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항목이 달라서 그럴 수도 있고, 본인이 속한 학회나 지방에서 교육받은 내용이 달라서 그럴 수도 있다. 이때 어떤 것이 나에게 필요한 검사이고 필요하지 않은 검사인지 구분하기 위해서는 의료진에게 질문을 많이 해야 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환자가 질문을 많이 하면 귀찮아하지 않을까 되레 걱정하는 환자들이 많다. 하지만 나의 선택이 존중받고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되묻고 질문해서 완벽하게 이해한 후 선택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이해만이 길이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래 두 가지 팁만 기억하면 어느 정도는 진짜와 가짜를 판별해낼 수 있을 것이다.


유전학 검사와 관련해서 100%란 없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 검사 결과로 100% 알 수 있어요"라고 한다면 다른 산부인과를 알아보시길. 유전학에서 거의 100%라는 말은 쓸 수 있어도 완벽한 100%란 존재하지 않는다. 양수검사를 임신 중 가장 정확한 검사로 여길 수 있는데, 이마저도 99-99.7% 정확하다고 말하지 절대 100%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검사를 진행하는 의료진이나 검사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유전학에서는 알 수 없는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100%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물론 검사를 받는 입장에서는 99%나 100%나 큰 의미가 없다 여길 수 있지만, 그 1%의 차이가 결과를 들었을 때 사람의 마음가짐을 조금 다르게 만들 수 있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이 퍼센트의 기준 혹은 대상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수검사를 예로 들어보자. <양수검사 이야기>에서 정리해봤듯이, 양수검사를 통해 기본적으로 알 수 있는 질환에는 염색체 질환과 신경관 결손 등이 있다. 또한, 만약 어떤 유전자의 어떤 돌연변이를 검사해야 하는지 아는 경우에는 그 돌연변이의 유무에 대해 검사할 수 있다. 이렇게 양수검사로 "가능한 검사들"을 검사했을 때 99-99.7% 정확하다는 이야기이다. 이외에 다른 여러 유전질환들, 자폐, 발달장애, 정신질환, 성 정체성과 관련된 것들 등에 대해서는 양수검사뿐만 아니라 그 어떤 산전스크리닝(기형아검사 포함)이나 산전 진단 검사로도 알 수 없다.


완벽해 보이는 검사는 가짜이다.

영어에 "too good to be true"라는 말이 있다. 이는 "너무 좋아서 믿을 수 없는, 믿어지지 않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어떤 검사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너무 완벽하다 싶으면 우선 의심하라는 말이 하고 싶었다. 너무 의심하면 정신건강에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기당했다는 느낌을 받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너무 완벽해 보이는 검사가 있어서 고민 중이시라면 댓글에 달아주시길 :)




유전자 검사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고 이를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지만, 몇몇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참 속상하다. 착한 사람들만 가득한 세상을 꿈꾸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웃음거리가 되어버리는 세상에서 나 스스로 정보를 찾지 않으면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물론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겨 진짜가 가짜가 되기도 하고 가짜가 진짜가 되기도 하지만, 어찌 됐든 어떤 검사를 선택하기 전에 무엇이 진짜인지 꼭 확인하고 선택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길!



문화생활하러 가기 전 뉴욕에서,

Arang Kim, MS, CGC

Certified genetic counse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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