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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랑 Feb 24. 2018

양수검사 이야기

오하이오에서 유전상담을 공부하던 당시 실습으로 나갔던 산전 진단 클리닉에서 한 커플이 양수검사를 받게 되는 전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학생이었던 나에게 참 흥미로웠던 것은, 산모는 생각보다 담담히 그 과정을 버텨냈었던 반면 남편은 양수검사 과정을 지켜보다가 잠깐 기절하는 일이 벌어졌다. 약 1-2초간 기절했었던 상황이라 그 자리에 주저앉는 정도로 끝났지만, 나는 처음 겪는 상황에 적잖이 놀랐었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가끔 있는 일이라 하셨다. 바늘 공포증이 있거나 긴장하는 경우 그럴 수 있다고...


그래서 나에게 "양수검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기절한 남편"이다. 그날 그 방의 상황이 한 장면의 그림처럼 떠오른다.


당신에게는 "양수검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산전 진단 클리닉에서 일할 당시, 양수검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산모들의 반응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났었다. 양수검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는 다음과 같은 상황들이었다:


출산 시 나이가 만 35세 이상인 산모 (클리닉의 방침 상 언급은 해야 했음)

기형아 검사와 같은 산전 스크리닝을 통해 특정 질환에 대해 양성 반응이 나왔을 때

가족 내 특정 유전질환의 대물림을 알아보기 위해 (어떤 유전자의 어떤 돌연변이인지 알아야 가능)

초음파 상 이상소견을 보였을 때 등


"양수검사"라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산모가 있었던 반면,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산모들도 많았다. 캘리포니아 지역적 특성상 내가 보는 산모들의 약 30-40% 정도가 남미 분들이었는데, 그분들은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이다 보니 피임에서부터 양수검사, 낙태 등에 이르기까지 임신과 관련된 모든 면에서 매우 보수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 물론 개인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어떤 분들은 양수검사 자체에 대해 듣는 것도 싫어했었다. 이런 종교적인 신념뿐만 아니라 "옆집 사는 사람의 친구가 양수검사를 했는데 유산을 했다더라," "어떤 의사는 실수로 태아를 찔렀다더라," "양수검사 자체가 매우 위험하다던데" 등과 같은 이야기를 통해 이미 양수검사에 대한 거부 반응을 가지고 내원하는 경우 상담을 이끌어가기가 어려웠다.


양수검사를 해야 하는 상황까지 가지 않으면 좋겠지만, 혹여 양수검사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고민하는 산모들이 많은 것 같다. 올바른 선택을 내리기 위해서는 양수검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부터 풀어보는 것이 좋은 시작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출처: Greenwood Genetic Center


양수검사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들

양수검사는 임신 약 15-22주 사이에 하게 된다. 보통은 임신 약 18-20주 사이에 하지만, 양수검사를 임신 몇 주에 하게 될지는 클리닉마다, 양수검사를 진행하시는 의사 선생님마다 방침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양수검사는 초음파로 태아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진행된다.

양수검사 과정 자체는 매우 짧다. 클리닉마다, 의사 선생님마다 다르겠지만, 소독하고 후처리 하는 과정이 더 걸리지, 바늘이 배에 들어갔다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1분도 채 되지 않는다.

양수검사는 진단 검사이다. 우리가 물에 오랫동안 있으면 때가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양수에는 태아의 몸에서 나온 세포들이 떠다니게 되는데 이를 채취해서 염색체 질환 검사, 특정 유전질환 검사 등이 가능한 것이다. 정확성은 99.9%라고 이야기한다.


양수검사에 대한 오해 풀어보기


바늘을 배꼽으로 넣나요?


누군가는 이 질문을 읽고 웃겠지만, 정말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이다. 우선 답을 하자면, 아니다. 바늘을 배꼽으로 넣지 않는다. 이 오해가 왜 생겼을까 생각해보니, 태아의 배꼽과 엄마가 연결되어 있으니 엄마의 배꼽을 통하면 태아에게 닿는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양수검사의 바늘은 배꼽이 아니라 초음파를 통해 확인한 태아의 위치에서 최대한 먼 쪽을 타깃 해서 산모의 복부에 바늘을 넣게 된다. 바늘은 생각보다 길고 두껍다. 하지만 양수검사를 받은 산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가 주사 맞을 때 따끔하는 그런 느낌보다는 위에서 누르는 듯한 압력을 더 많이 느낀다고 한다.


양수검사를 하다가 태아를 찌를 위험성은 얼마나 되나요?


"매우 낮다"라고 밖에 얘기할 수가 없다. 유전상담을 공부하면서 실습하던 학생 시절부터 산전 진단 클리닉에서 일하는 기간 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왜 이 질문을 많이 받았을까? 흔히 나쁜 소문이라고 하는 것들은 더 빨리, 더 멀리, 더 다이내믹한 스토리들이 붙어서 퍼지게 마련이다. 양수검사를 하는 전 세계의 수많은 의사 선생님들 중에 몇 명쯤은 양수검사를 하는 도중 태아가 움직여서 바늘에 가까이 오거나 바늘에 찔리는 일이 있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내가 직접 겪어본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매우 낮다"라고 밖에 얘기할 수 없지만, 만약 양수검사를 해야 하는 산모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리고 걱정이 된다면, 의사 선생님의 경험을 직접 여쭤보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다. 양수검사를 받기로 한 날 태아의 위치가 바늘을 넣을 수 없는 상황인 경우 양수검사 날짜를 다시 잡게 되거나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양수검사를 하면 유산할 확률이 높아지나요?


확률이 높아진다기보다는 양수검사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에 나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양수검사를 통해 나타날 수 있는 위험성에는 유산, 감염, 통증, 바늘이 통과한 복부나 질로의 출혈, 조기 진통/출산 등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의 확률이 약 1/400 이라고 발표하였다. 약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의사 선생님들의 노하우도 쌓이고, 기술도 더 좋아지고, 모든 장비들도 훨씬 좋아졌지만 여전히 1/400 이라는 확률을 말한다. 그 이유는 산전 진단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모든 것을 매우 보수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1/400 보다는 훨씬 위험성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1/400 이라고 말하고 있다.


태아가 자라고 있는 자궁은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바늘로 찌르면 어느 정도 수축을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양수검사가 끝난 후 배가 뭉친 기분이 든다고도 말씀하신다. 대부분 자궁 근육이 다시 이완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양수검사 후 계속해서 불편함이 느껴지는 경우에는 의사 선생님께 꼭 전화하시길!


왜 양수검사를 했는데 결과가 "알 수 없음"으로 나오는 거죠? 진단검사 아닌가요?


양수검사는 진단검사, 즉 의심되는 질환에 대해 태아가 양성이나 음성으로 확진을 받는 검사인데, 아주 가끔 "알 수 없음"이라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에 대표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있다:

1) 모체 세포 오염 (maternal cell contamination):

바늘이 산모의 복부를 지나가면서 혹은 양수검사가 끝난 후 바늘을 빼는 과정에서 산모의 세포가 양수에 들어가 검사 과정에 혼란을 주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태아의 염색체 검사를 하고자 했지만, 모체 세포 오염이 있는 경우, 어떤 것이 태아의 염색체이고 어떤 것이 산모의 염색체인지 확실치 않기 때문에 정확한 검사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하게 된다.

2) 양수에서 채취한 태아의 세포들이 실험실에서 잘 자라지 않는 경우

말 그대로 양수에서 채취한 태아의 세포가 패트리 디쉬(petri dish)에서 잘 자라지 않아 검사를 할 수 없는 경우이다. 이는 태아가 이미 어떤 질환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그런 경우도 있다.

3) 채취한 양수의 양이 적은 경우

양수검사를 통해 할 검사들에 필요한 최소한의 양수가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경우이다. 이 경우도 충분한 양의 세포가 자라지 않아 검사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과 비슷하다.

4) 검사기관의 실수

매우 드문 경우지만, 검사를 진행하는 기관에서 기계의 오작동이나 사람의 실수로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흔하지는 않지만 양수검사 샘플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첫 아이 때 양수검사를 했는데도 아이가 자폐가 있어요. 다 알 수 있는 거 아니었나요?


많은 사람들이 하는 오해이다. 양수검사로 자폐의 여부는 절대 알 수 없다. 이런 오해를 하는 이유는 양수검사가 마치 만능인 것처럼 생각을 하기 때문 아닐까? 임신 때 하는 그 어떤 검사로도 (양수검사를 포함해서) 태아의 자폐, 발달장애, 정신질환의 여부는 절대 절대 절대 알 수 없다. 양수검사로 가능한 검사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기본적인 염색체 검사만 하는 경우:

염색체가 46,XX 딸인지, 46,XY 아들인지

다운증후군 (Trisomy 21), 애드워드 증후군 (Trisomy 18), 파타우 증후군 (Trisomy 13), 터너 증후군, 클라인펠터 증후군, 트리플 X 증후군 등

2) 양수검사를 통해 마이크로어레이 검사까지 하는 경우:

미세결실 혹은 미세중복 염색체 질환들 (예: 22q11.2 결실 증후군, 1p36 결실 증후군 등)

3) 특정 유전자의 특정 돌연변이 검사:

가족 내 특정 유전질환이 있는 경우나, 산모와 태아의 아버지가 특정 유전질환에 대해 보인자인 경우 가능한 검사이다. 이때는 어떤 유전자의 어떤 돌연변이를 검사할지 정확하게 알아야 검사가 가능하다.

4) 신경관 결손, 배꼽류 (omphalocele), 위벽 파열 (gastroschisis) 검사:

이 질환들은 보통 opening defects라고 불리는데, 이는 태아의 몸에 완전히 닫히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발생하는 질환이라는 뜻이다. 양수에서 AFP (alpha-fetoprotein) 수치를 재서 정상수치보다 높게 나오는 경우 이 질환들을 의심하게 된다. AFP는 난황(yolk sac)과 태아의 간에서 분비되는데 태아의 몸에서 완전히 닫히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은 태아의 간으로부터 AFP가 양수에 많이 배출되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5) 초음파 상 이상소견을 통해 특정 유전질환이 의심되는 경우:

미국에서는 패널 유전자 검사라고 해서 특정 질환들을 일으키는 유전자들을 그룹으로 묶어서 한 번에 검사하는 것이 있는데, 초음파 상 이상소견이 특정 유전질환을 향하는 경우, 패널 유전자 검사 혹은 단일 유전자 검사, 필요한 경우 마이크로어레이 검사까지 오더 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이유들로 양수검사 여부를 놓고 고민하시는 산모들이 계시다면, 이 글이 조금이나마 좋은 길잡이가 되었길. "의사 선생님이 시켜서 했어요," "꼭 해야된다던데"라는 식의 말보다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양수검사해야겠더라고~" 혹은 "이러이러한 이유로 양수검사까지는 필요 없겠더라고~"라고 말할 수 있는 산모님들이 되시길!



내 친구 생일날 이브 뉴욕에서,

Arang Kim, MS, CGC

Certified genetic counse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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