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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랑 Apr 17. 2018

나도 환자가 되어보니...

임신과 초기 자연유산

기대와 설렘을 가득 안고 찾아갔던 산부인과. 

하지만 초음파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이미 알아버렸다. 

유산인 것을.

첫 임신. 첫 자연유산. 

멍했다. 


초음파가 끝나고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시기 전에 남편에게 초음파에서 내가 본 것들로 마음의 준비를 시켜줬다. 내가 환자로 병원을 와서도 직업병은 못 버렸나 보다 싶었다. 남편이 놀랄까 마음의 준비를 시켜주는 내 모습을 보면서.


미국은 보험이 있어도 한국처럼 쉽게 병원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생리일을 기준으로 8주 3일째 되는 날 처음으로 초음파를 하러 갔다. 미국은 초음파 테크니션이 따로 있어서 산부인과 의사를 만나기 전에 테크니션들이 초음파를 진행한다. 물론 그들은 환자에게 초음파상의 소견을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그동안 직업상 봐왔던 초음파 사진들이 도움이 되었던 걸까... 기대와 설렘이 가득해야 할 초음파가 한순간에 심장이 철렁하는 경험으로 바뀌어 버렸다. 아기의 사이즈는 6주 3일밖에 안됐고, 혈액의 흐름을 보는 doppler 검사에서는 태아가 있는 쪽에 혈액의 흐름이 없었다. 물론 심장 소리도 나지 않았다. 


유산이구나. 

아니길 바라고 바랬지만 결국 유산 같다는 의사의 말.




미국은 병원이 참 복잡스럽다. 초음파상 소견을 말해준 할아버지 의사는 유산이 확실한 것 같다며 염색체 이상 어쩌고 저쩌고를 설명하기 시작하셨는데, 내가 유전상담사임을 밝히자 몇 개의 숫자들을 나열하시더니 얼른 마무리하셨다. 그다음 내 담당 산부인과 의사를 따로 만났다. 그 의사는 마지막 생리일이 확실하냐, 유산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배란이 조금 늦게 되었을 수도 있다, 태아의 크기가 7mm 이하일 때는 심장박동이 안보일 수도 있는데 태아가 지금 3.7mm 밖에 안되기 때문에 한 주 더 기다렸다가 초음파를 다시 해봐야 한다 등등. 유산을 부정하는 말들로 나를 안심시키려 하고 있었다. 내가 유전상담사임을 밝히고 왜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는지 이해하지만, 나의 여러 가지 계산 상 자연유산이 거의 확실한 것 같다고 얘기했을 때에도 이 의사는 애매모호한 답변만 남겼다. 


의사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이제 의료진의 입장이 아니라 환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그들의 말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공허해진 마음을 더 공허하게 만들어버렸다.


내가 유전상담사로서 만났던 많은 환자들도 나의 말들이 공허하게 들렸을까...


이틀 후 임신 호르몬인 hCG 레벨이 내려가는 것을 확인한 후 내 담당 산부인과 의사도 유산인 것 같다는 메시지를 남겼고, 그 메시지를 보면서 더 공허해져 버렸다.


내가 환자들을 만나면 제일 먼저 얘기하는 것 중 하나가 절대 인터넷을 맹신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내가 환자가 되고 보니 인터넷만큼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참 아이러니하다. 


물론 인터넷에는 틀린 정보들이 많다. 특히 환자들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포럼이나 블로그 같은 곳에는 알차고 실속 있는 정보들도 있지만, 환자들이 이해한 의료정보들을 공유하는 경우에는 틀린 정보들이 꽤 있다. 어떤 것이 올바른 정보이고 어떤 것이 옳지 않은 정보인지 구분해 낼 수 있는 능력이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이상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인터넷을 보지 말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자연유산이라는 일생일대의 일을 겪고, 병원도 의사도 나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주지 못할 때 인터넷이 참... 큰 도움이 됐다. 특히 초기 자연유산을 겪은 엄마들의 포럼 같은 경우, 같은 아픔을 겪은 엄마들을 서로 공감해주고 격려해주면서 경험에서만 나올 수 있는 조언들을 해주는데... 그것이 참 큰 위로가 됐다.




임신한 여성의 약 40% 정도는 초기 자연유산을 겪게 된다. 또한, 모든 자연유산의 약 80%는 12주 이전에 일어난다. 어떤 논문이나 책을 보느냐에 따라 그 수치가 조금씩 다를 수는 있지만, 생각보다 아주 흔하다. 초기 자연유산은 내가 뭘 잘못해서도, 잘못 먹어서도, 몸에 건강한 것을 먹지 않아서도, 비타민을 먹지 않아서도, 그동안 피임약을 먹어서도, 운동을 해서도 혹은 안 해서도 아니다. 물론 남편의 탓도 아니다 :) 


우리는 어떤 사건에 대해 "이유"를 찾고 싶어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내 행동들을 하나씩 되짚어보고, 혹시 이것 때문이었을까, 저것 때문이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도 나 자신을 탓하게 되고 아기를 지켜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가 실망스럽기도 했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 욕하고 싶어 지기도 한다. 사람이기에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당신의 탓이 아니다. 


자연유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는 염색체 질환이다. 많은 염색체 질환들 중에서도 16번 염색체가 3개인 Trisomy 16이라는 질환이 제일 흔하다. 그 외에도 다른 종류의 염색체 질환들, 유전 질환들로 인해 유산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유를 모르는 경우들도 많다. 태아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어지는 경우 자연유산이 일어나게 된다. 


자연유산을 경험하는 산모들의 경우 후속 처치에 대해 몇 가지 옵션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후속 처치를 하는지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미국에서 내가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해보면:


몸이 알아서 처리해주길 기다리는 방법 (자연배출): 

생리를 하는 것처럼 나온다. 사람마다 몸이 다르기 때문에 몇 시간 안에 끝나는 사람이 있고 며칠 동안 지속되는 사람이 있다. 나 같은 경우 (too much information 일수도 있지만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생리처럼 나오기 며칠 전부터 생리통처럼 아랫배 통증이 있었고 피가 비치긴 했지만 생리처럼 나오지는 않았다. 후속 처치가 시작된 날은 심한 생리통보다 조금 더 아팠고, 3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그 후 약 1주일 정도는 계속해서 조직들이 조금씩 나왔다. 이 방법의 장점은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라는 것이다. 우리 몸은 이런 경우 알아서 take care of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몸이 자연스럽게 회복될 수 있고 부작용이 적다. 하지만 단점은 태아가 성장을 멈춘 시점부터 몇 주가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지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 태아의 성장은 6주 3일에 멈췄지만, 몸이 후속 처치를 할 때는 거의 3-4주가 지나서였기 때문에 임신을 한 것도, 하지 않은 것도 아닌 상태가 몇 주 있었다. 자연배출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것 중 하나는 오랫동안 임신 산물이 나오지 않아 감염의 위험이 있는데 열이 나고 냄새나는 분비물이 나오는 경우에는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Cytotec(misoprostol)이라는 약을 사용하는 방법:

이 약은 몸이 조금 빨리 알아서 처리해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약이다. 원래는 위궤양 같은 질환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되는데, 유산을 겪은 경우 몸이 자연배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효과적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경구복용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체내 흡수를 빠르게 하기 위해 많은 경우 질내 투입을 하게 된다. 이 약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약 80%의 경우 효과를 본다고 한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어서 질내 투입 시 약이 녹지 않아서 효과가 없는 경우도 있고, 약이 그냥 흘러내리는 경우도 있다. 


수술(D&C)을 하는 방법:

인위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빨리 후속 처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이 방법은 자연배출 방법이 스트레스가 되고 감정 소모가 많은 만큼 간단한 수술로 후속 처치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단점으로는 확률이 아주 적지만, 자궁에 흉터가 남을 수도 있다는 점과 간단한 수술이지만 수술 자체로 인해 따르는 부작용들을 들 수 있다. 엄마들의 포럼을 읽어보면 어떤 사람들은 수술 후 바로 다음 날 출근했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수술 후 계속해서 피를 많이 흘렸다는 사람도 있었다. 개인마다 몸이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 자연배출이 진행된 후 초음파를 했는데 초음파에 약 1cm 정도 임신 산물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해서 빨리 배출해내려고 cytotec을 사용했었는데 효과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hCG 레벨이 5 이하로만 내려가면 더 이상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하셔서 피검사만 진행하고 있는데 저번 주에 8까지 내려갔다는 결과를 들었다. 다음 주에 한번 더 피검사를 하게 되는데 5 이하로 나오길!


임신 산물이 아직 남아있는 경우 호르몬이 계속 분비되어 hCG 수치가 떨어지지 않게 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몸이 계속 임신했다고 착각하고 다시 자연적으로 생리주기가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hCG 호르몬을 모니터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호르몬 수치가 0-5 사이로 떨어지게 되면 (물론 0-5 사이로 꼭 떨어지지 않더라도 생리주기가 돌아올 수 있다) 몇 주 안에 생리주기가 돌아오게 되고 그때 혹시라도 남아있는 임신 산물들이 있다면 생리와 함께 자연스럽게 배출될 수 있다. 따라서 유산 후 첫 생리는 양이 조금 많을 수 있다. 또한, 생리주기가 돌아오면 다시 임신을 시도할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혹시 이 정보가 도움이 될까 하여 써보게 되었다. 내가 자주 다루던 이야기를 의료진이 아닌 환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보니, 참 새롭기도 하고 그동안 봐왔던 환자들의 행동들이 더 잘 이해가 되었다. 나에게도 새로운 배움의 시간이 된 것 같아서 마냥 슬퍼하지만은 않기로 했다. 


아직도 유산은 여성의 잘못이라는 시월드의 이상한 논리에 지친 사람들에게, 

어설픈 말로 위로받아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글이었길.



구름 가득 낀 뉴욕에서,

Arang Kim, MS, CGC

Certified genetic counse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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