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학과 삶 #1
자폐는 유전일까 아닐까?
왜 요즘 들어 자폐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일까?
자폐는 치료될 수 있는 질환인가?
자폐와 관련된 많은 궁금증들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폐와 유전학은 아직 ~ing 중이다. 자폐의 원인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렇기 때문에 "완치"가 될 수 있는 질환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자폐의 원인을 찾기 위해 유전학과에 오는 것일까?
어느 날 내가 정말 좋아하고 아끼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두 살 된 둘째 아들의 소아과 체크업이 있는 날이어서 다녀왔는데, 자폐 증상이 의심된다며 대학병원 자폐 클리닉에 가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대학병원 소아 유전학과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서 할 말을 찾아봤다. 유전학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상담사로서 할 수 있는 말까지, 다 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아끼는 친구의 일이다 보니 객관적으로 상황이 봐지지는 않았다. 대화 중에도 계속 "아닐 거야"라는 말을 반복하는 나를 보면서, 이렇게 밖에 말하지 못하는 내가 참 한심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을 알았고, 그래서 더 열심히 친구의 말을 들어주려 했지만, 친구가 받은 충격만큼 나도 충격적이었기에, 전화하는 내내 몸이 떨렸다.
엘에이에 있는 대학병원 소아 유전학과에서 일하고 있을 당시, 6개월이 넘는 대기 환자들의 명단 중 60-70%는 자폐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중 자폐만 가지고 있는 환자들은 약 20-30% 정도 됐었던 것 같고, 나머지는 자폐와 함께 발달장애, 선천성 기형 등이 동반되는 경우였다. 대학병원에 있는 소아 유전학과이다 보니 "눈을 안 맞춰요, " "반복적인 행동을 해요" 등의 증상만을 가지고 내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소아과 의사나 발달전문 소아과 의사 (developmental pediatrician) 등의 소견을 가지고 예약을 한다. 자폐의 유전학적인 원인을 찾고자 하는 경우를 정리해보면:
- 자폐와 함께 발달장애, 선천성 기형 등 다른 증상들도 있는 경우
- 임신을 하고자 하는데 가족력으로 자폐가 있는 경우 (특히 자폐가 있는 자녀가 있는 경우)
- 몇 세대를 걸쳐 자폐가 있거나, 가족 중 여러 사람이 자폐가 있는 경우
- 학교나 특정 시설에서 physical therapy, occupational therapy, speech therapy, behavioral therapy 등 어떤 서비스를 받기 위해 진단명이 필요한 경우 등이 있다.
* 미국에서는 DSM-5로 자폐를 진단한다. DSM-5는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에서 2013년에 발간한 5판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를 말한다. 여러 영역으로 나눠서 자폐 여부를 진단한다. 자세한 내용은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5th ed. Arlington, VA: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13. 혹은 https://www.autismspeaks.org/autism-diagnosis-criteria-dsm-5?page=3&gclid=Cj0KCQjw4dr0BRCxARIsAKUNjWR0AnE-7HKH9ploBZRp39KR1ILc3y-rzqeYWh1Dqoby_HQTg7mYYzsaAvPTEALw_wcB 에서 볼 수 있다.
내가 일했던 UCLA 대학병원에 KidsConnect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예전 이름은 ECPHP이다). 이 프로그램은 10주 동안 일주일에 5번, 하루에 6시간 동안 자폐, 발달장애, 행동장애가 있는 2-6세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전 세계적으로 꽤 유명하다. 각 아이에게 맞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언어치료/물리치료/작업치료 등을 함께 진행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을 이수한 아이들의 부모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만족도가 꽤 높다. 물론 자폐가 치료되는 것은 아니지만, early intervention (빠른 교육/치료/개입)을 통해 아이의 가능성을 끌어올려줄 수는 있다. 만약 이런 프로그램을 찾고 있었던 부모님이 계시면 https://www.semel.ucla.edu/ecphp 이 웹사이트를 참고하시길! 참고로, 1년 이상의 대기명단이 있다고 한다.
아래의 그림은 가상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든 가계도이다. 가상의 가족력을 바탕으로 자폐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가계도를 보는 가장 기본적인 수식은 다음과 같다. 나머지는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부연설명으로 덧붙여볼까 한다.
<가계도 수식 정리>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는 동그라미가 오늘 우리의 환자이다. 이 환자는 4세 여아로 자폐와 발달장애 (developmental delay; DD로 표기되어 있음)를 가지고 내원했다. 가족력을 그려보니 9세 오빠도 자폐가 있고, 아빠는 자폐 스펙트럼에 포함되는 아스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스퍼거가 따옴표로 표기되어 있는 이유는, 정식적으로 의사의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 의심된다는 소견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아빠의 아빠, 즉 친할아버지를 보면 (돌아가셔서 네모에 작대기가 그려져 있다) 따옴표 안에 "socially awkward"라고 써져 있는데, 이는 살아계실 때 사회성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계도에 대한 분석은 이 정도로 하고, 가계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 가족에서는 자폐가 우성 유전 형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우성 유전: 모든 세대에 증상이 있는 사람이 있고 50%의 확률로 유전되는 형태). 세대를 내려올수록 증상이 심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렇게 보이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할아버지와 아빠의 경우에는 그 세대에 자폐를 진단하는 기준이 잘 정해져 있지 않아서 제대로 된 진단을 받을 수 없었을 수도 있다는 것과, 만약 이 가족에 자폐를 일으키는 유전질환이 있다면 유전질환의 발현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났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같은 다운증후군이라고 해도 모든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똑같이 심장질환이 있고, 똑같은 IQ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조금 쉬울 것이다.
이런 가족력을 가지고 있는 환자의 경우, 유전학과에 오면 진행하게 되는 여러 가지 유전자 검사들이 있는데, 가장 기본적으로 하는 검사로는 염색체 검사 (karyotype)와 마이크로어레이 (microarray) 검사가 있다. 이 두 검사 모두 염색체에 어떤 이상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검사이다. 이 두 검사가 정상이 나올 경우, 미국에서는 whole exome sequencing이라는 검사를 진행하게 된다. 이는 각 유전자에서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암호를 저장하고 있는 exon이라는 부분을 검사하는 것인데, 만약 암호에서 실수가 발견될 경우, 이 실수로 인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예상을 해보게 된다. 환자의 증상과 그 결과가 일치하는지를 비교해봄으로써 그 실수가 의미가 있는 실수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게 된다. 이 검사가 시작된지는 꽤 됐지만, 아직도 유전자의 변이를 해석해내는 것이 이 검사의 큰 관건으로 남아있다.
많은 유전학과들에서 자폐로 환자가 내원하는 경우, fragile X syndrome (취약 X 증후군) 검사도 진행하지만, 얼마 전 어떤 연구에서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고 밝혀졌다. 나도 소아 유전학과에서 일할 당시 이 검사를 많이 오더 해봤지만, 자폐로 인해 이 결과가 양성이 나온 경우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만약 환자가 자폐와 함께 머리 크기가 큰 경우 (macrocephaly), PTEN 유전자 검사를 하게 된다.
이 외에도 환자의 증상에 따라 다양한 유전자 검사가 가능하다. 무조건 whole exome sequencing을 하지는 못하는 것이 미국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사보험을 쓰기 때문에 이 비싼 검사를 하기 전에 보험회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비싸 봤자 얼마나 비쌀까 하지만, 상상을 초월한다. 유전자 검사 기관마다, 병원마다 보험회사에 청구하는 비용이 천차만별이지만, 몇천만 원 넘게 청구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많은 보험회사들이 커버를 안 해준다. 이런 경우 환자들을 위해 각 기관에서는 payment plan 같은 것들을 제공해준다. 물론 가격도 보험회사에 청구하는 것보다는 훨씬 싸게 (몇백만 원 수준 - 물론 이것도 많이 비싸지만). 비용의 문제로 유전자 검사를 포기하는 환자들도 꽤 많이 있다.
이 가족의 경우 만약 유전자 검사를 통해 답을 찾지 못했다면, recurrence risk (자폐가 또 일어날 확률)는 어떻게 될까? 가족력만 가지고 봤을 때는 50%까지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빠와 친할아버지가 확실히 자폐인지 그 여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환자 세대만 놓고 보면, 약 4-17%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수치는 아들이냐 딸이냐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에 범위가 좀 크다. 자세한 수치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다음의 논문을 참고해 보시길: Pamer N, Beam A, Agniel D, et al. Association of sex with recurrence of autism spectrum disorder among siblings [published online September 25, 2017]. JAMA Pediatr. doi:10.1001/jamapediatrics.2017.2832.
대부분 자폐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의 가족력을 그려보면 가족력은 전혀 없는데 환자로 온 아이만 자폐가 있는 경우가 제일 많다. 어떤 사람들은 엄마가 임신했을 때 뭘 잘못 먹어서 그렇다, 환경오염 때문이다, 전자파 때문이다, 예방접종 때문이다, 특정 음식을 잘못 먹어서 그렇다 등 근거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엄마 탓은 아니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아직 확실한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물론 몇몇 유전질환 때문에 그런 것은 빼고) 무성한 루머만 믿고 결론 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4월은 autism awareness month이다. 소아 유전학과에서 일할 당시를 생각해보면, 자폐 증상이 없는 환자를 만나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자폐를 가진 환자들을 많이 봤다. 어떤 사람들은 자폐 진단을 너무 남용해서 주는 것 아니냐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위에서 얘기한 DSM-5 진단기준을 놓고도 말이 많다. 하지만 나는, 물론 진단 방법이 제일 중요하긴 하지만, 이런 문제보다 자폐를 바로 알고 자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COVID-19처럼 전염되는 것도 아닌데, 색안경을 쓰고 보고, 자폐를 가진 아이와는 친구도 못하게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참 마음이 아프다. 함께 배우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노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배울 점이 참 많은데. 이번 4월 한 달 만이라도 주변에 자폐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따뜻한 눈길로 바라봐주고, 학교 다니는 자녀의 반에 자폐를 가진 친구가 있다면 "친구 하지 마"라고 말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는 어른들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날씨가 찢어지게 좋지만 COVID-19으로 집에 갇혀 있어야만 하는 우울한 4월의 어느 날.
Arang Kim, MS, CGC
Certified Genetic Counsel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