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아 서울대학교병원 건축과 조경 담당
writer. 최주연 photo. 황필주(Studio79)
지난봄, 서울대학교병원 대한의원 본관 앞 사과나무에 새하얀 꽃이 피었다. 사과나무를 심은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휠체어에 앉은 아이를 달래던 부모는 발걸음을 멈췄고, 우연히 꽃을 발견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잠시 후 그들은 진료실과 입원실 등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지만, 삽시간의 꽃 구경이 남겼을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손끝에서 비롯한 그 삽시간의 휴식을 동력 삼아, 오현아 씨는 오늘도 서울대학교병원 곳곳의 풀과 꽃과 나무를 돌본다.
조경담당 업무에 지원해 처음 서울대학교병원을 찾았던 날, 오현아 씨의 눈에는 형형색색의 국화가 들어찼다. ‘다양한 색감이 뇌에 자극을 주어 치유를 돕는다’라는 오감테라피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날의 면접을 거쳐 서울대학교병원 조경을 담당하게 된 그는 대학 시절 배운 ‘산림치유학’을 접목시켜 서울대학교병원 조경공간을 열정적으로 가꾸고 있다.
Q. 서울대학교병원 내에 조경 전문가가 있다는 사실이 신선합니다. 어떤 계기로 이 일을 맡게 되셨나요?
저는 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면서 조경공간에서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건강 물질이 무궁무진하다는 점, 산림치유를 통해 환자들이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느껴 병원 조경에 대한 관심을 키웠어요. 이후 1인 노인 가구를 위한 ‘치유 텃밭 조성’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조경이 주는 치유의 힘을 확신하게 되었고 그 힘을 펼치기 위해 서울대학교병원 건축과 조경 담당으로 입사했습니다.
Q. 구체적으로는 어떤 일을 하시나요?
거의 매일 병원 전체 현장 점검을 다니며 나무와 풀, 화분 등을 유지하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실내에서는 실내 화분을 관리하는데 주기적으로 물과 영양제를 줘서 식물의 생장을 돕고 식물이 올곧게 자랄 수 있도록 전지(剪枝) 및 수형(樹形) 고정 작업도 합니다. 본관 1층 로비에 있는 배경식재와 어우러진 수족관도 쾌적하게 관리하고 있고요. 외부에서도 물과 영양제를 주는 일과 전지 및 수형 고정 작업 등의 기본 작업에 더해 잔디 깎기나 풀베기, 잡초 뽑기 등을 진행합니다. 특히 나무가 병충해로 인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병충해 방제, 병해를 입은 나무를 회복시키기 위한 회복 주사 주입, 겨울철 냉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보온재를 감싸주는 월동 작업, 계절별에 맞춰 꽃과 풀을 심는 작업 등을 합니다.
서울대학교병원은 이례적으로 원내에 ‘조경전문가’를 둠으로써, 잘 관리된 공간으로 수많은 생명을 불러들였다. 병원을 찾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도심 숲’의 기능도 겸해야 한다는 철학 덕분이다. 이렇게 조성된 곳들 중 오현아 씨는 암병원 4층 행복정원과 대한외래 제1게이트와 병원교회 사이에 있는 비오톱(Biotop) 그리고 대한외래 지하 1층에 있는 벤치형 화단을 적극 추천했다.
Q. 먼저, 나무 이야기를 해볼까요, 서울대학교병원에는 어떤 나무들이 있나요?
높이가 8m가 넘는 교목(喬木) 약 1,700그루, 2m가 넘지 않는 관목(灌木) 약 27,000그루가 있습니다. 특히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특성상 미세먼지를 저감시켜주는 수종이 많은데요. 한여름 예쁜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부터 단풍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등의 교목과 화살나무 쥐똥나무, 영산홍 등의 관목이 잘 어우러져 있는 편입니다.
왕성한 생장 과정을 보며 환자들이 긍정의 에너지와 결실의 기쁨을 얻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최근에는 사과나무, 감나무, 복숭아나무, 모과나무와 같이 열매를 맺는 유실수도 늘려 가고 있어요. 올봄에는 사과나무에 처음으로 흰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어요. 내원객들이 사진을 찍는 등 관심을 가져 주셔서 저 역시 더 열정을 가지고 관리했던 기억이 나네요.
Q. 조경에 있어 꽃과 풀도 큰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이 경우에는 어떤 부분에 가장 신경을 쓰시나요?
꽃이 피는 풀 즉 초화(草花)는 시각적인 역할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색감의 초화를 조화롭게 심어서 계절별 느낌을 살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봄철에는 온화한 분위기의 화단을 연출합니다. 따스한 색상의 꽃을 피우는 데모로후세카, 비올라 팬지, 리빙스턴 데이지 등을 화단과 화분에 심어서 철쭉, 영산홍, 백철쭉 등 관목의 꽃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하죠. 여름철에는 화단을 바라보며 열기를 조금이나마 식힐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습니다. 노란 빛깔의 황매화, 키가 크고 시원한 색감의 해바라기, 바다를 닮은 듯 푸른 빛깔의 수국, 길게 뻗은 초록 잎 속 한줄기 보랏빛 꽃을 피우는 맥문동 등이 어우러지면 시원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거든요. 가을에는 국화 중에서도 노란색과 분홍색 꽃을 피우는 지지국화를 넓은 면적에 심습니다. 지지국화는 색감도 아름답지만 꽃향기도 진해서 가을의 깊이를 느끼기에 좋기 때문입니다.
Q. 드물기는 하지만 실내에도 화분과 화단이 있습니다. 이곳은 어떻게 관리하시나요?
실내에서는 양분 공급이 잘 안 되는 데다 습도를 맞추기도 쉽지 않습니다. 특히 화분 받침대에 물이 고이면 최대한 빨리 비워내야 하고요. 실외에 있는 조경공간에 비해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죠.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는 사이, 시든 화분이나 화분 받침대에 고인 물이 내원객과 환자들께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봐 실내 화분은 줄여가는 추세입니다.
Q. 조경 담당자로서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눈여겨 볼 조경공간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나요?
서울대학교암병원 4층에 있는 행복정원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행복정원은 약 200평형의 정원으로, 넓은 잔디밭을 둘러싼 나무데크를 따라 걸으며 계절별 야생화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노지에서 겨울을 나고 시기에 맞춰 다시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있죠. 서양 측백나무, 키 작은 소나무 등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는 침엽수들과 키가 작은 관목류가 많아서 눈높이에 맞게 수목을 감상하며 산책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장점이고요. 등나무를 엮어 만든 퍼걸러(Pergola) 그늘 아래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쉴 수 있는 휴게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Q.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숨은 조경공간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대한외래 제1게이트와 병원교회 사이에 있는 비오톱(Biotop)입니다. 비오톱은 생명을 뜻하는 Bios와 영역을 뜻하는 Tops의 합성어로,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최소 단위입니다. 생태계 보존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공간으로, 도심 속 생태지역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서울대학교병원 내부에도 비오톱을 조성했습니다. 벤치 뒤쪽으로 죽은 나무의 마른 가지와 돌담을 쌓아 참새들이 쉴 수 있는 생태공간을 만든 것이죠. 스쳐가기 쉬운 공간이라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벤치에 앉아 참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휴식을 즐겨 보시기를 바랍니다.
Q. 실내공간 중에서도 특별히 신경 쓴 곳이 있나요?
대한외래 지하 1층에 있는 벤치형 화단입니다. 화단 관리를 하고 있으면 지나가는 분들께서 ‘당연히 조화(造花) 화단인 줄 알았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키가 큰 남천을 배경으로 낮은 수호초를 심어서 실내에서도 연중 푸르름을 느낄 수 있도록 조성한 조경공간입니다. 남천은 특히 공기정화 식물로, 대한외래의 공기를 쾌적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실내에 있는 식물은 조금만 건조하거나 양분이 부족하면 시들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갑니다. 하지만 실내공간에서도 내원객들이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내부 화단 관리에 각별히 힘쓰고 있습니다.
3만여 그루의 나무와 8만 본이 넘는 꽃과 풀을 가꾸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오현아 씨는 “유실수를 좀 더 심고 싶어요”라거나 “대한의원을 둘러싼 치유의 길을 만들어야겠어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자신이 힘써 가꾼 공간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자꾸 욕심이 난다는 것이다.
Q. 서울대학교병원 조경 담당으로서 어떤 순간에 보람을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햇살이 따뜻하던 날, 관수작업을 하기 위해 암병원 행복정원에 갔습니다. 입원복을 입은 아내와 보호자인 남편이 나무 그늘 아래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계셨어요. 입원 생활 중 잠시나마 아픔을 잊고 잔잔한 휴식을 즐기시는 모습에 제 마음까지 평화로워졌고, 제가 관리하는 공간이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점심시간, 병원 관계자들이 대한의원 화단 근처에 걸터앉아 식사 후 티타임을 가지는 모습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휴식시간에는 편안한 곳을 찾기 마련인데 제가 가꾼 조경공간이 그런 곳이 되는 것 같아서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Q. 앞으로 서울대학교병원 조경에 적용하고 싶은 콘셉트가 있으신가요?
이미 잘 알려져 있어서 주목할 공간으로 꼽지는 않았지만, 대한의원 본관 주변에는 다양한 교목과 풀꽃들이 있습니다. 사과나무, 감나무 등 유실수 등도 많고요. 이런 것을 적극 활용해서 대한의원 산책로가 ‘치유의 길’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게 조성하고 싶습니다. 숲 치유가 이루어지는 국립횡성숲체원에서 활용 중인 오감테라피를 적용하고자 하는데요. 대한의원 산책로 일부 구간에 신발을 벗고 걸을 수 있는 돌 지압길을 만들고, 향긋한 풀 내음을 맡을 수 있도록 길을 따라 허브식물을 심고, 잔잔한 음악이 흘러 나오게 한다면 시각, 후각, 청각, 미각, 촉각을 자극해 뇌를 일깨우는 오감테라피를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를 통해 서울대학교병원 조경공간의 치유 효과를 조금 더 상승시키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Q. 많은 이들이 식물과 녹지공간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휴식을 준다고 이야기합니다. 서울대학교병원 조경공간이 어떤 역할을 하기를 바라시나요?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숲이 제공하는 녹색과 빛, 소리, 공기 등은 스트레스와 심리적 피로, 우울감 등을 감소시키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서울대학교병원 조경담당자로서 저는 원내 조경공간이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편백나무와 잣나무 등 침엽수에서 방출되는 피톤치드는 스트레스 유발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는 효과가 있고, NK세포*와 T세포**를 활성화시켜 수술 환자의 빠른 회복을 돕는다는 것을 증명한 연구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니 조경공간은 치유를 넘어 치료에도 힘을 보태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인 셈이죠. 환자와 보호자는 물론 병원 관계자들께서도 원내 조경공간에서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NK세포(Natural Killer cell): 선천 면역을 담당하는 중요한 세포
**T세포(T cell): 세포성 면역을 담당하는 림프구의 일종으로, B세포와 함께 적응성 면역의 주축을 이룬다.
오현아 서울대학교병원 건축과 조경담당
식물 치유의 힘을 믿는 조경 전문가. 대학에서 조경학을 전공하며 병원 조경에 관심을 갖게 됐다. 서울대학교병원 건축과 입사 후 나무와 꽃 등 식물은 손길이 자주 갈수록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확신으로, 거의 매일 2만 보를 걸으며 병원 곳곳을 누비고 있다. 자신이 관리하는 서울대학교병원 조경공간이 많은 이들에게 행복과 위로가 되기를, 그로 인해 자신 역시 미국 사상가 에머슨이 말한 ‘진정한 성공이란 자신으로 인해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에 가까워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