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교육을 받고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일단 한 달 치 식비를 정하고 그것을 5주로 나눈 다음 한 주의 예산을 체크카드가 있는 통장으로 자동이체하고 한 주 예산 내에서 하루 치 정해진 식비와 생필품 비를 지출하는 것이다. 가족이 함께 먹은 외식은 식비에 포함되지만 내가 혼자 먹은 간식비나 외식비는 각자의 용돈에서 지출하는 구조다.
한 달 가계부를 쓰기 위해 우선 고정지출과 변동지출을 나눠야 한다. 모든 가계부가 그렇듯 내가 쓰는 가계부도 수입과 지출 항목이 나뉘어 있다. 수입은 근로소득과 기타소득(정기와 비정기)으로 구분되어 있다.
수입을 기본으로 일단 고정지출과 변동지출을 나눠야 한다. 월급의 15~20%는 무조건 먼저 저축해야 하니 수입에서 그만큼의 돈을 제하고 나머지 금액으로 고정지출과 변동지출을 정한다. 선저축을 엄격하게 하지 않은 나로서는 굳은 마음을 먹고 가계부를 쓰기로 했기에 ‘지킬 건 지키자’라는 각오로 시작했다. 은퇴 후엔 소득이 줄어들 것이고 그전부터 가계부를 쓰다 보면 소득이 줄어드는 시점이 와도 당황하지 않고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나름의 계산을 했다.
고정지출은 주거비와 공과금, 가족의 용돈, 보험료, 의료비, 경조사, 꾸밈비(이·미용). 양육/교육비, 교통비, 교제비, 문화생활/여가비, 꿈을 위한 지출, 각종 후원비, 예비비 항목으로 나뉘어 있다. 고정지출 항목별로 예산을 세워야 하는데 수입 안에서 예산을 나누다 보니 빠듯했다. 특히 의료비, 보험료, 경조사비는 예산보다 자주 초과하는 경향이 많았다. 다만 교육비가 더는 들어가지 않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고정지출을 나누다 정기적으로 들어가는 렌탈비가 월 단위, 연 단위로 보면 큰 금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각종 렌탈이나 구독 서비스를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곤 과감하게 끊어야 했다. 고정지출은 가능한 슬림하게 만들어야 하는 게 나의 목표였다. 일단 정리된 고정지출은 매달 정해진 그 범위를 넘지 않기에 그 안에서 절약을 하면 할수록 푼돈이 더 남는 구조였다.
변동지출은 식비와 외식비, 생필품 비다. 처음 가계부를 시작할 때 우리 밴드의 고수들은 하루에 10,000원 또는 5,000원으로 지출하는 분들이 많았다. 나는 도저히 그 금액으로는 하루 식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 처음엔 하루 15,000원으로 시작했다. 그래도 쓰던 가락이 있어서(한꺼번에 장을 보는 습관-1회에 20만 원이 넘는 것이 보통이었음) 그 금액도 사실 충분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밴드의 나보다 젊은 분들이 아끼고 현명하게 지출하는 것을 보면서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고 한꺼번에 많이 사지 않고 그때그때 장보고 직접 밥을 해 먹는 습관을 들여 외식비와 많이 사서 결국 음식쓰레기로 버려지는 것들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하루 15,000원 이내에서 쓰려고 머리를 굴리고 식단을 생각하고(적은 금액으로 영양가 있는 음식을 해야 한다.) 고단백을 좋아하는 가족의 식성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쉽지 않은 날이 이어졌다.
2022년 4월부터 가계부를 썼다. 그때는 변동지출만 신경 썼다. 고정지출은 어차피 나가는 돈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줄이기로 하고 우선 방만한 변동지출을 잡는 게 목표였다. 하루에 15,000원으로 빠듯했던 식비가 무지출이 늘면서 조금씩 여유가 생기고 가끔 푼돈이 적립되는 주가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미미하게 천원 단위였다가 어느 주는 만원 단위로 푼돈이 적립되기 시작했다. 6개월을 한 주에 105,000원으로 살다가 7개월 차에 과감하게 하루 10,000원으로 수정했다. 한 주에 105,000원에서 70,000원으로 무려 35,000원을 뺀 금액이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하루 10,000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아직 나는 5,000원의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다만 이걸로 식비가 가능하다고? 라는 의문이 생길 때마다 나보다 적은 금액으로도 풍성하게 제철 채소를 활용해 식자재비를 아끼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활용하는 밴드 회원들의 노하우를 참고했다. 그렇게 벤치마킹을 하니 무지출이 늘고 푼돈도 적립이 도이었다.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던 하루 10,000원으로 말이다.
예전에 <10,000원의 행복>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정해진 돈으로 알뜰하게 범위 내에서 소비하는 프로그램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10,000원으로도 저런 행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가계부를 쓴 지 이제 3년 차가 된다. 그동안 쓰다말다 한 기간을 포함하면 내게 가계부는 애증의 한 페이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루도 빼지 않고 기록을 하면서 돈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큰 수확이라고 본다. 적지 않은 돈을 벌면서도 돈의 가치를 모르고 마구 썼던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늦게나마 나에게 들어오는 돈의 의미에 대해 깨닫고 그것을 소중하게 다루는 자세를 갖게 된 점. 그것이 가계부 기록의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