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관련 책을 읽으며 중요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들어오는 수입과 지출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중에서 선저축을 실행하여 종잣돈을 모으는 것이 모든 재테크의 시작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걸 누가 모르나. 월급에서 일정 부분을 먼저 저축하고 남은 돈으로 예산을 세워 지출하는 것, 절약하고 절약해서 종잣돈을 모으고 그걸 바탕으로 투자해서 자산을 증식시키는 것. 그것이 재테크의 기본 줄기라는 점을.
요점은 우리 집의 수입과 지출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저축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한 달 지출 중에서 고정지출과 변동지출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야 했다. 그러려면 가계부를 적는 것이 필수였다.
사실 가계부와 나의 역사는 길다.
신혼 초에 알뜰하게 살아보겠다고 매년 새해가 되면 가계부를 펼쳤다. 그리고 10원 단위까지 꼼꼼하게 적기 시작했다. 희한하게도 가계부를 적으면 저축액이 늘고 낭비가 줄어든다는 가계부에 대한 로망이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저축은커녕 마이너스로 가득한 가계부를 아무리 들여다보며 반성을 거듭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알뜰하게 살다가 갑작스러운 충동 구매로 큰돈이 한꺼번에 나가기도 하고 자동차 보험료나 재산세 등등 때마다 돌아오는 공과금이나 세금을 내기도 빠듯했다. 그래서 재미가 없어지면 쓰던 가계부를 내던졌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 다시 반성 모드로 돌아가 마음을 고쳐먹고 가계부를 다시 쓰는 일이 반복되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계부는 내게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은 가계부. 멀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게 큰 유용을 주지 않는 가계부를 계속 쓰는 것은 내게는 스트레스의 연속일 뿐이었다. 주변에 가계부를 써서 종잣돈을 모으고 그걸 기반으로 아파트를 샀다는 성공담을 들으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까지 나에게 가계부는 금전출납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재테크 책을 읽은 후, 가계부 쓰기가 무엇보다 중요한 필수과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도대체 가계부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은퇴 무렵이 되어서야 알고 싶어진 나도 참 나지만 그럼에도 은퇴 후의 빠듯한 가계를 이전처럼 마이너스로 만들지 않고 잘 살아가기 위해선 제대로 된 가계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가계부 쓰기를 검색하자 가계부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수 검색되었고 그중에서 제일 마음에 와닿는 모임이 만든 밴드에 가입했다. 한 달에 일정 금액을 내고 가입하면 줌모임에서 가계부 쓰는 방법과 예산을 세우는 법, 예산 내에서 지출하는 것에 대해 강의를 듣는다. 그리고 이전부터 가계부를 쓰던 사람과 신입회원들을 조별로 묶어 실제 가계부 쓴 내용을 매일 밴드에 올리게 한다. 한 달에 21일 이상 빠지지 않고 가계부를 쓰면 가입할 때 낸 돈에서 21,000원을 환급해주는 시스템이다. 매일 가계부를 쓰는 회원들이 많고 또 잊어버리면 조장이 잊지 말고 쓰라는 쪽지도 보내준다. 밴드에 가서 회원들이 쓴 내용을 보고 나도 용기와 힌트를 얻기도 한다. 리더는 그때그때 내가 쓴 가계부 내용에 대해 피드백을 해준다.
이 밴드에서는 한 달 식비를 미리 책정하고 그것을 5주로 나눈다. 그런 다음 하루 식비를 정하고 그 범위 내에서 지출한다. 다시 말하면 일주일 예산을 자신에게 맞는 하루 살기 금액으로 정하고 실천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한 달 식비를 700,000이라고 한다면 일주일 예산은 140,000원이고 하루 예산은 20,000원이 된다. 그러면 하루에 20,000원 내에서 식비(간식/외식 포함), 생필품비를 변동지출로 잡고 하루 살기 금액으로 지출한다는 것이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우리 집 한 달 변동지출을 얼마로 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나는 그때까지 정해진 한 달 식비 예산이 따로 없었다. 식비 예산이 따로 없으니 코스트코나 대형마트에서 장을 볼 때면 비용이 한 번에 20만 원을 넘기가 일쑤였다. 직장에 다니느라 매일 장을 볼 수가 없으니 한 번에 많이 사서 쟁여놓아야 했으니 이런 식의 장보기를 반복했다. 하루에 얼마를 써야 할지 나도 액수를 정해야 했는데 그 모임에 예전부터 모여 가계부를 쓰신 분들은 한 주에 예산을 70,000원으로 잡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모임의 리더는 한 주에 35,000원의 식비로 살아가고 있었다. 하루 5,000원인데 그런데도 집밥을 위주로 하고 알뜰하게 살아가면 거기서도 푼돈이 남는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한 주에 70,000원으론 턱도 없었기에 한 달 예산을 최저 525,000원으로 잡았다. 일주일 예산은 105,000원. 하루 15,000원으로 식비와 생필품을 감당해야 했다. 처음에는 그것으로 하루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식비 지출은 5주 생활비 통장을 하나 개설하고, 체크카드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늘 카드로 물건을 샀던 나는 식비 항목이 따로 없었고 나중에 카드값으로 늘 한꺼번에 나갔다. 그런데 여기서는 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현금으로 지출하는 구조다. 월급을 받으면 한 달에 525,000을 식비 항목으로 따로 떼어놓고 개설한 5주 생활비 통장에 매주 105,000원씩 자동이체가 되도록 만든다. 그리고 체크카드로 매일 장을 보는 거다. 그러다 보니 15,000원이 초과하기도 하고 15,000원을 다 쓰지 않은 날도 생기게 되었다.
나는 매일 가계부를 썼고(밴드에 올리는 내용은 변동지출= 식비 항목이었다) 한 달이 지나서 21,000을 환급받았다. 그다음 달에도 계속 가계부를 쓰는 모임에 합류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없이 적은 금액이라고 생각했던 525,000원이 다른 사람에 비해 너무 많은 금액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몇 달을 지속하다 보니 나에게도 푼돈이 모이게 되었고 6개월이 지나면서 나도 한 달 예산을 350,000원으로 낮추고 하루 10,000원 살기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 모임엔 나같이 나이 든 사람은 없고 30대에서 40대의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알뜰하게 가계부를 쓰며 가정경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저 나이에 대체 뭘 한 거지?’라는 반성과 지금이라도 제대로 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긴 시간이기도 했다.
6개월 동안 매일 가계부를 썼더니 습관도 붙고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한 달 예산을 정하고 결산까지는 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월급에서 저축을 빼고 남은 돈으로 한 달 예산을 정하게 되었다. 예산을 정하니 항목마다 한 달 써야 할 돈이 정해지고 어찌 되었든 그 돈으로 살아가야 하니 돈을 쓸 때마다 얼마 남았는지, 더 이상 쓸 돈이 없으면 소비를 줄이거나 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지금 와서 보면 은퇴하기 전에 가계부 쓰기 모임에 들어간 것이 신의 한 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가계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내가 나름대로 매달 예산, 결산하게 된 점이 가장 큰 수확이라 생각한다. 예산이 정해져 있으니 그 테두리 내에서 써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달 결산을 할 때 어디에서 적자가 생겼는지 스스로 따져보는 시간을 갖게 되고 다음 달에는 더욱 단단한 각오를 다지며 생활하는 자세도 갖게 되었다.
나에게 너무 먼 당신이었던 가계부. 나는 오늘도 가계부와 만나며 하루 지출에 대해 고민한다. 냉장고에서 오래 머물러있는 식자재는 없는지, 오늘 지출할 품목 중에 불필요한 것은 없는지 미리 들여다보고 지출한다. 살 것이 없고 있는 재료로 하루를 보낸 날엔 ‘무지출’을 기록한다. 한 주에 무지출이 여럿 있으면 푼돈이 남는다. 그러면 그 주 마지막 날에 비상금 통장으로 남은 돈을 보내 푼돈을 모은다. 처음 시작할 때 하루 15,000원으로 부족했던 내가 이제는 하루 10,000원의 풍요를 누린다.
가계부를 쓰면서 코스트코에 가지 않게 되었다. 대형마트에 가서 카트에 가득 물건을 사는 일도 없다. 하루하루 그날 필요한 식재료를 필요한 만큼만 산다. 냉동실에 물건을 가득 쟁여놓는 습관도 점차 사라졌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하루 10,000원의 행복. 이게 모두 가계부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