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딱 5년 남고 놓고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노후준비는 달랑 연금밖에는 없고 저축이 많은 것도 아니고 집 하나 외에는 있는 게 없으니 마음이 급해지는 건 당연지사.
때는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 노후 공포 마케팅이 절정에 달해 있을 때였다.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은가? 세상이 다 같이 미쳐 돌아갈 때 일반적으로 중심을 잡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세상이 돌아가는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게 일반적이다. 나 또한 내 집만 빼고 오르고 있는 집값의 동향과 앞으로 노후에 밀어닥칠 쓰나미를 걱정해 생각해 낸 것이 독서였다. 사람은 모름지기 알아야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던가.
정년 5년 전부터 나는 책 제목에 ‘돈. 재테크, 노후대비’가 들어간 책들을 주로 빌리기 시작했다. 의외로 학교 도서관에도 관련 책들이 많았고 책에서 소개한 책이 도서관에 없으면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책은 크게 두 종류였다. 전문 지식을 토대로 경제와 경제생활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일단 많았다. 나는 기본적인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금리와 부동산에 대한 기초지식이 있는 책들을 주로 빌려서 읽었다. 돈이 왜 필요하고 화폐 경제에 대한 여러 사람의 언급이 있는 책도 있었고 부동산 매매와 집값의 동향, 집값 예측 관련한 책도 많이 빌렸다.
또 한 부류의 책은 이야기 구성을 토대로 재미있게 경제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들이었다. 홍 과장 이야기를 필두로 예금, 적금, 월급관리, 통장관리, 투자에 관한 내용을 주로 읽었다. 도서관 대출 반납 이력에는 오로지 재테크와 돈, 부동산에 관련한 책이 전부였다. 이는 당시 나의 관심사가 어땠는지를 잘 알려주는 이력이었고 물론 내가 전에 읽지 못한 내용이었지만 이런 책들만 빌린다는 게 솔직히 맘이 편치는 않았다.
말하자면 나는 재테크 서적 전문 대출자였다. 대출 목록만 봐도 내가 얼마나 돈과 재테크에 몰입되어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돈만 밝히는 사람인가?
내 삶이 돈만으로 이루어지는 건가?
돈이 세상의 전부인가?
책을 읽으면서도 맘이 편치 않았던 이유다.
만약 돈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젊은 시절부터 악착같이 돈을 모르고 불리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돈이 전부가 아니고 돈 이외의 다른 것이 세상을 이끌어 간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점차 돈을 밝히고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우스갯소리로 10억을 준다면 감옥에서 몇 년을 살 수도 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건물주를 인생의 목표로 하여 사는 세상을 나는 바람직한 풍토가 아니라고 믿었다. 그랬던 나조차 노후 불안에 떠밀려 재테크 서적 전문 대출자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한편으로 얼마나 씁쓸했는지 모른다.
나도 자본주의 사회의 한 부속물에 불과하고 그 시류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구나 하는 씁쓸함과 그래도 뭔가를 알아야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중심을 잡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 나를 계속 이끌었다.
읽은 책의 내용을 정리해보자면
1, 아낀다. 2. 모은다(종잣돈). 3. 불린다. 4. 계속 투자한다.
로 요약될 수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 내용은 정년을 5년 앞둔 사람이 읽을 게 아니라 이제 막 회사에 취업한 신입사원들이 봐야 할 내용이라는 걸 알았다. 쉽게 말하면 이 책들의 내용은 다 늙은 나이의 사람이 볼 게 아니라 앞으로 긴 시간이 남은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 많았다. 투자나 저축에는 시간의 개념이 들어있었다. 돈을 모으거나 투자를 하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나같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모든 것이 물론 소용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기적으로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풍요로운 연령별 라이프 플랜을 봐도 20대에서 30대는 적극적으로 종잣돈을 모으는 데 주력하고 40~50대에는 그 돈을 바탕으로 투자와 저축을 병행하며 60대 이후에는 모은 돈을 잃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내 나이에는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기보다는 이제껏 모은 것을 잘 관리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관련 책을 너무 늦게 접한 후회도 밀려왔지만 나는 긍정의 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꾸준히 직장 생활을 했고 정년까지 아직도 몇 년이 남아 있기에 잘못을 조금이라도 수정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모으고 불리기는 못할지라도 지금부터 받는 월급관리를 착실히 하고 지출 규모를 퇴직 후 연금 생활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이고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사회라고 하지만, 수입에 맞게 지출을 줄이고 규모 있게 살고 조금씩 저축액을 늘려간다면 나의 노후가 파산에까지 이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나는 책을 많이 빌리기보다 읽은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하고 책의 내용을 나의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독서의 완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테크는 못하더라도 돈 관리는 해야겠다
나의 목표는 이렇게 바뀌었다. 나이가 많고 시간이 없어 재테크가 힘들면 있는 돈이라도 잘 관리하면 나름대로 노후 대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점이 5년 동안 재테크 책을 읽으면서 얻은 소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