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1개월마다 받는 급여를 월급이라고 한다. 한 달 동안 일한 노동력의 대가로 기본급과 수당을 합치고 세금과 4대 보험 등을 공제하고 남은 금액으로 매월 지정된 날짜에 근로자의 통장에 들어오는 돈이다.
근로자가 제일 바라는 날이 월급날이다. 통장에 찍히는 숫자를 바라보기 위해 한 달을 일한다고 말할 정도로 월급을 받기 위해 일한다. 학교에 출근한 초기에는 월급이 적어서 그걸로 한 달을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당시의 나는 대학원을 마치고 바로 발령을 받은 상태였다. 결혼했지만 부모님의 지원 아래 대학원을 다니고 용돈도 받아 쓰고 집에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친정에서 많이 도움을 주셨기에 큰 어려움을 모르고 산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도 결혼 전 이야기이고 취직하기 전 이야기지, 일단 결혼하고 취직을 해서 월급을 받는 이상 우리 스스로 살아야 한다고 마음을 먹기는 했다.
초기에는 가계부도 열심히 써보고 들어온 돈과 나가는 돈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을 했으나 늘 우리 집의 살림 규모는 월급을 웃돌았다. 미간을 찡그리며 몇 개월 가계부를 쓰다가(원래 가계부를 쓰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 아닌가 싶다.) 입금과 출금이 맞지 않는 가계부를 집어 던졌다. 당시의 내가 쓴 가계부는 예산과 결산 시스템이 없는 단순한 금전출납부였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안다. 미리 정해놓은 예산이 있어야 지출 규모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냥 나가는 돈과 들어오는 돈을 10원 단위까지 알뜰하게 기록했지만 늘 생각지도 않은 지출이 생겼고 그 구멍은 예상보다 컸다. 실상이 그러니 가계부 쓰는 일은 재미는커녕 하루를 마치는 의무적인 일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학교에서 육아휴직 3년을 빼고 근 34년을 일했으니 월급을 받은 횟수도 400번이 넘는다. 그 400번의 귀중한 월급을 나는 어떻게 사용하였는가. 400번이면 강산이 여러 번 변할 시간인데 나는 그 횟수가 그렇게 중요한 기회인 것을 몰랐다. 그냥 한 달이 지나고 나면 통장에 찍히는 금액의 연속이었고 변함없이 늘 들어오는 금액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것이 끝나는 시간에 대해선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기야 이제 막 직업 전선에 발 디딘 자가 어찌 그런 심오한 것을 알 수 있었겠는가.
당시의 내가 지금처럼 재테크 서적과 경제 관련 서적과 유튜브 영상이 넘쳐나는 시기에 살고 있었다면 그때와 달랐을까? 달랐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적은 월급을 쪼개 저축을 하고 빠듯하지만, 규모 있게 사는 친구도 주변에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월급은 힘들게 일한 한 달을 보상해주는 금액이었기에 나를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아낌없이 소비하는 돈에 불과했다. 이달에 다 써버려도 다음 달에 또 나오는 돈이라고 믿었기에 크게 아쉬움도 없었다. 둘이 살기에 크게 부족하지 않은 작은 아파트도 부모님이 해주셨기에 돈을 악착같이 모으거나 불려야 한다는 목표도 없었다. 그냥 우리만 잘 먹고 살면 되는 거였다. 아이가 없는 신혼이 돈을 모을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이기도 했는데 돈을 모으기보다 그달에 지급해야 할 돈이 일렬로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굳이 차가 필요 없는데 친정에서 사 준 차를 받아 타고 다니자니 기름값과 유지비가 들었고 내가 받는 월급에 비해 높아진 생활 수준을 낮추기가 힘들어 매달 살림은 적자였다. 가뜩이나 젊은 다리로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됐던 그때 불태운 돈으로 인해 현재의 나는 오히려 대중교통 애호자가 되어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그렇다고 절약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나름대로 절약을 한다고 했으나 푼돈은 절약하고 큰돈을 한 번에 쓰는 스타일이었기에 구멍이 나면 메우는데, 시간이 걸렸고 시간이 가도 저축한 돈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가계부를 집어 던지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머리를 쥐어짜고 악착을 떨어도 늘 맞지 않는 금액. 남들은 청약에 당첨되고 집을 옮기고 늘려간다는데 우리는 작은 집에 만족했다. 굳이 청약 저축에 가입할 필요도 없었고 악착을 떨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돈은 없다가도 생기는 것이고 사람이 살면서 필요한 돈은 어떻게든 융통이 된다고 믿었다. 참으로 근거 없는 믿음이었고 경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함 그 자체였다.
얼마 전에 읽은 경제 서적에서 ‘현재 내가 받는 월급은 현재의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내가 같이 사용해야 하는 공금이다’라는 문장을 보았다. 그 순간,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왜, 젊은 날의 나는 저런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일까. 오늘 내가 받는 월급이 오늘의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내가 같이 사용해야 하는 공금이란 것을.
그렇게 생각하면 월급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지금 내가 받는 월급도 미래의 나를 위해 일정 부분을 반드시 떼어놓고 써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같이 사용하는 공금이란 개념을 내가 미리 알았다면 그렇게 허투루 사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내가 크게 낭비만 하고 산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초반부터 계획을 세우고 관리를 했다면 지금과는 분명 다른 상황이었을 것이다. 공무원이니 이직이나 조기 퇴직의 위험성이 적었기에 경제적인 계획을 세우기도 훨씬 쉬웠을 것이다.
400번이 넘는 월급이 통장에 찍히는 동안, 나는 계획 없이 살았던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많은 월급은 결국 내가 내 손으로 다 허공에 흩어버린 꼴이 된 것이다.
공무원이니 나중에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일까?
퇴직 후, 다행히 연금을 받는 나로서는 하늘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언제 구조조정이 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고용 현장에서 일하지 않아도 이 나이에 매달 연금이 통장에 입금되고 있다는 사실이 천운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34년 동안 힘든 기간도 있었고 정말 때려치우고 싶을 만큼의 감정적인 고통도 많았지만, 그 과정을 이겨내고 여기에 도달한 내 머리를 가끔 쓰다듬고 싶을 때가 있다.
만약 내가 다시 초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요즘은 월급을 관리하는 방법에 이어 월급에 맞는 저축액도 수치화한 책이 많이 보인다. 내가 이십 대로 돌아가 그 책들을 읽는다면 나는 내가 받는 월급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가치를 현재에만 두지 않고 미래와 나눠 생각할 것이다.
월급은 이달의 나를 위한 금액이 아니라 미래 노년의 내가 같이 써야 할 공금이기 때문이다. 힘이 없고 늙은 내가 써야 할 공금을 현재의 젊은 내가 낭비한다면 그거야말로 직무유기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