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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은퇴를 앞두고 조바심이 났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노후 파산의 문제를 다루며 노후 재테크에 몰두해야 한다고 부추겼다. 은퇴가 5년 정도 남은 시점에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뤄놓은 것이 별로 없는데 막상 직장을 그만 두면 어찌 할 것인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은퇴하고 나면 가진 것을 다 까먹고 거리에 나앉는 은퇴 파산자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 모습을 지우기 위해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가진 거라고는 신도시에 대출이 끼어있는 아파트 한 채밖에 없는데 평균수명이 늘어나 100세 시대를 맞이하면 꼼짝없이 빈털터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조급함이 몰려왔다. 경제라면 고등학교 때 배운 수요 공급의 곡선 정도밖에 모르는 내가 경제 서적을 펼친 것은 순전히 은퇴를 앞둔 고육지책이었다. 경제 서적을 읽고 생전 처음 예산과 결산을 마치는 가계부 쓰기에 돌입하면서 나처럼 은퇴를 앞두고 고민이 많은 사람들이 더러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과 나의 경험을 나누며 앞으로 은퇴를 앞둔 사람들이 나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이 글을 시작하게 됐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만큼, 은퇴는 예전처럼 꽃노래 부르다가 하늘로 돌아가는 풍류와 낭만의 시간만은 아닌 게 되었다. 준비에 따라서 여가를 즐기며 일하는 동안 누리지 못했던 것을 즐기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과거를 후회하며 회한에 가슴을 치는 고된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은퇴 준비는 은퇴가 임박해서 하면 늦다. 미리미리 준비해야 하는데 요즘은 30대부터 은퇴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직장 생활을 보장하는 안전판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법에서 정한 나이에 은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구조조정을 당하기도 하고 직장이 사라져 강제 퇴직을 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비교적 공무원이라는 안전판을 가지고 가늘고 길게 월급을 받으며 살아왔고 퇴직후에도 그나마 수령액이 높다는 공무원 연금의 수혜자이다. 자의에 의해서 직장을 다니고 정년퇴직을 하였다. 남이 보면 최대한의 특혜를 누린 케이스라 할 수 있고 은퇴 후에도 연금이 있으니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현직에 있을 때도 재테크와는 거리가 멀고 월급이 들어오면 카드값으로 ‘텅장’이 되는 경험이 잦았던 나로서는 보너스나 다른 상여금이 없는 연금만으로 사는 것에 대해 걱정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연금이 따박따박 나오는 나도 걱정이 많은데 아예 연금이 없는 직종의 은퇴 생활은 어떨까. 미리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어떤 준비를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막상 은퇴를 해보니 예상했던 것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사소한 것이 더 중요해지는 지금, 그런 내용을 알리는 마음으로 나는 이 글을 시작하고 싶다.


현대 생활은 돈과의 전쟁이라 해도 무방하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 돈이 없으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나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돈에 대해 초연한 편이었다.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격이 떨어지는 것이라 생각해서 돈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돈에 대해 얘기하고 돈을 더 벌고, 모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신경을 아예 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을 얘기하며 사는 삶은 바람직하지 않은 걸로 치부했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돈도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구절을 보았다. 사람도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더 좋아하기 마련인데 돈도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물론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돈을 좋아한다는 건 진심으로 돈을 대우해준다는 의미가 있다. 돈을 아끼고 소중하게 대우해야 돈도 그사람에게 오래 머물러있다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은퇴를 앞두고서야 그런 깨달음을 얻다니. 그렇다고 내가 돈을 싫어한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하기야 요즘은 초등학교 아이들도 건물주가 꿈이다. 주변을 보면 다 돈이야기만 한다. 신문도 방송도 심지어 서적도 ‘돈’이 최대의 화두다. 그러나 다들 돈을 이용하고 쓰려고 하지 돈을 아끼고 대우하는 말은 듣기 힘들다. 자, 이제 시작이다. 마약과의 전쟁이 아니라 돈과의 전쟁이다.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적을 잘 알아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이제껏 돈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돈에 대한 생각을 가급적 피하고 가능하면 머리에서 지웠다. 이제부터는 돈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은퇴 후에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적어 보려고 한다.

그것도 은퇴를 한 이 마당에서. 미친 짓이 아닐까? 그래도 한번 해보는 거다.

어차피 이 글은 초보 은퇴자의 좌충우돌 은퇴 체험기가 컨셉 아닌가. 그러니 가감 없이 적어보는 거다.

은퇴를 향한 여정,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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