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관점의 물동이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시의 일부-
경험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하면 경험에 대한 세계가 열린다. 운동을 정말 싫어하던 친구가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귀찮다고 말하던 친구였다. 어떤 움직임에도 흥미를 가지지 않았는데 스쿼시를 해보고 나서는 운동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친구는 운동과는 먼 사람이었지만 스쿼시를 경험해 보면서 '운동을 하는 하루'이라는 세계가 열렸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사람들 말 한마디에 그 사람의 관점을 경험한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의식하지 못할 뿐 우리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관점을 공유한다. 만약 아이공부에 관심이 많은 엄마와 친해졌다고 가정해 보자. 이 엄마와 2주만 매일 붙어 다녀도 요즘 교육의 트렌드, 다양한 자격증, 행사, 선생님정보 등을 금방 다 알 수 있다. 이 엄마와 2주를 지내고 난 후에 나에게는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우리는 정보에 따라 세상을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교육에 관심 있는 엄마와 함께 다니면 '자녀교육'에 대한 세계가 열린다.
가장 쉽게 원하는 세계를 만나는 방법
원하는 세계를 만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원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특히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귀로 듣고 눈으로 볼 수 있어서 많은 배움이 되었다. 나는 남편에게서 많은 걸 배웠는데 남편과 나는 MBTI도 하나 빼고 반대일 만큼 서로 다르다. (남편은 ISTP , 나는 INFJ) 닭도 남편은 다리, 나는 날개, 김치도 남편은 줄기, 나는 이파리다. 밥도 나는 한식에 국물류, 남편은 양식에 국물을 좋아하지 않는 것까지 다르다. 입맛까지 다른 우리는 서로에게 배워가며 각자가 부족한 부분을 조금씩 채웠다. 내가 남편에게 배우고 싶은 부분은 '무관심'이었다. 남편은 주변에 관심이 없는 반면, 나는 주변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친한 사람과 갈등이 있으면 일상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었다. 이런 내가 불편해서 남편에게 '무관심'을 배우기로 했다. 그래서 혼자 진행한 것이 [남편처럼 생각하기]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어떤 일로 마음이 복잡할 때 남편에게 묻는 것이다. "내가 이런 상황이었고, 상대방은 이렇게 행동했어. 그럴 때 오빠는 어떤 생각이 떠올라?" 주관적인 생각이나 의견, 감정은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러면 남편은 자신이 바로 떠오르는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다. 예를 들면 남편이 "그게 왜? 나랑은 상관없잖아!"라고 말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나는 남편의 관점으로 그 상황을 다시 바라보았다. 남편의 관점으로 상황을 다시 보니 '그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생각을 그냥 받아들였다. 그리고 남편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걸 한동안 유지했다. 갈등이 다시 떠오를 때마다 "그게 왜? 나랑은 상관없잖아!"라고 남편처럼 나에게 말해보았다. 마음이 복잡해질 때마다 남편에게 물어보고 흉내 내는 것을 1년 정도 반복하니 남편의 해석이 내면화되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진짜라는 것을 알았다. 더 이상 사람문제로 이전만큼 복잡하지는 않다. 가끔 예전처럼 복잡해지는 순간이 오지만 이전보다 금세 제자리를 찾는다. 만약 남편이 나처럼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면 내 관점은 강화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맞지? 맞지?' 하는 공감 속에서 위로받기도 하지만 자신의 관점을 강화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남편과 달라서 배울 수 있었다. 오히려 공감을 해주지 않아서 나의 강점을 강화하지 않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멋진 해석을 하는 사람
나는 자신만의 관점이 있는 사람이 좋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던 관점을 바꾸어주는 사람, 내가 사는 세계가 넓어지게 한 사람을 존경한다. 내 주변에 멋진 분들 중 한 분이 방세영교수님이다. 방세영 교수님은 유아교육과에서 만난 인연이다. 수업시간에 부산 사투리로 "아이에게 기꺼이 해주세요. 마지못해 하지 말고 이왕 해줄 거 기분 좋게 기꺼이 해주세요"라는 비슷한 말씀을 많이 하셔서 내가 방기꺼이 교수님이라고 별칭을 지었다. 방세영 교수님의 관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관점은 이것이다.
우리 첫째 아이가 1학년 1학기 때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시기가 왔었다. 1학년의 자기주장은 유아의 주장과는 확실히 달랐다. 아이와 함께 화를 내며, 1학년 수준의 말싸움이 시작되려던 찰나에 또 공부가 시작되었다. 1학년과 함께 싸우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도 읽고 유튜브도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내가 존경하는 방기꺼이 교수님의 '방보르기니'유튜브를 틀었다. 거기서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아이와의 싸움에서 멈출 수 있다는 거 그건 우리가 힘 있는 자!라는 거예요. 극단적인 상황에서 멈출 수 있는 건 힘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거거든요!" (작은 개와 싸우지 않는 덩치 큰 개의 비유)
"'건방지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 부모 이겨 봐야죠! 부모부터 이겨봐야지 더 큰 세상으로 나가서 세상과 맞서서 싸워 이기죠. 집안에서 부모도 이겨보지 못한 아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향해서 도전하고 나아갈 수 있을까요?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십 대가 되어서 자신의 의견과 생각과 주장을 펼치는 우리 아이가 그저 기특한 마음도 드실 겁니다"
"우리 아이가 가끔씩은 부모를 이겨보게 하는 그런 경험도 주자" 이런 생각으로 아이를 지켜봐 주시는 거예요. 그럼 아이와의 관계가 조금은 더 편안해지실 겁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이 한 번에 바뀌었다. 아이의 주장에 화를 내던 엄마에서 한 번에 성숙한 엄마의 시선으로 옮겨졌다. "우리 아이가 지금 잘 자라고 있구나, 자기주장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나가고 있구나, 아이가 자신만의 생각을 올바르게 뻗어나가게 하도록 도와줘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멋진 관점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한 번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아이가 잘 자랄 수 있게 도와주는 성숙한 엄마의 세계. 이전에 내 관점 안에서는 할 수 없었던 생각이지만 한마디 말을 통해 간주점프 하듯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내 주변의 관점은 알게 모르게 앞으로 내가 살아갈 세계의 문을 결정한다. 아 물론, 어떤 관점도 받아들이지 않는 다면 부정적인 영향도, 긍정적인 영향도 받지 않기도 한다.
다양한 관점의 물동이
방문객
전현종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시 中 일부...
이십 대 때는 이 시의 초반부가 마음에 와닿았다. 요즘에는 방문객 '시'의 뒷부분이 마음에 와닿는다. 주변 사람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던 내가, 따뜻한 시선의 물동이, 다양한 관점의 물동이들을 채우고 나니 이제 부서지기 쉬운,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 마음을 더듬고 싶지만 그 마음이 짐작되어 쉬이 더듬기도 어려울 때가 있다. 거울처럼 내 모습이 비쳐서 더듬어주고 싶을 때도 있고, 마음이 가서 더듬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내 시선에서 본마음이다. 바람은 그저 더듬는다. 내 안에서 상대를 판단하지 않고 그 갈피를 그저 더듬어본다. 그래서 바람은 옆에서 불기만 한다. 상처를 들추거나, 함부로 상처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되어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방문객 속 '바람'이 이렇게 느껴진다. 앞으로도 나의 사람들과 대화하며 '더 멋진 바람'의 역할이 생각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내가 느껴지는 바람은 이런 바람이니, 내가 느껴지는 대로 다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 물론 지금도 '바람'처럼 되는 건 참 어렵다.
엄마에게 다양한 관점의 물동이가 채워지면 좋은 이유
만약 엄마의 '다양한 관점의 물동이'가 가득 채워져 있으면 아이가 힘들어질 때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다양한 문을 열어 줄 수 있다. "이게 정답이야!" 라며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게 된다. 대신 다양한 관점들을 보여주며 "너는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을 해줄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말한 걸 네가 하지 않아서 내가 불행하다'라고 생각하는 엄마는 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다양한 관점 자체가 스스로에게도 많은 선택의 기회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주변사람들과 대화하며 아이의 단점과 잘못된 점을 되뇌는 관점을 강화할지, 아이의 미래와 엄마들이 해줄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해 보는 시간으로 보낼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멋진 생각, 존경할 수 있는 생각을 하는 엄마들이 서로 만나서 '다양한 관점의 물동이' 채워나갔으면 좋겠다. 말은 은연중에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나아갈 세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