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적 성향으로 영업조직에서 총 6년을 근무했다. 영업 업무 외에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나와는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다. 보통 사용하는 언어가 같으면 단어의 뜻도 같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가 마주했던 경험이나 생각에 따라 단어의 뜻을 조금씩 다르게 채운다. 그 단어들이 모여 삶을 인식하는 관념 자체가 다른 경우가 많다.
거기서 오해는 시작된다
'내가 가진 경험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것' 그리고 '내가 이해한 상황을 팩트 체크하지 않고 확신하는 것' 거기서부터 관계의 피곤함이 시작된다. 대부분 상대의 언어와 내 언어가 동일할 거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해하는 것' 자체가 상대를 비난하기에 편한 구조를 만들기도 한다. 회사라는 공간은 내 탓, 사람 탓 , 회사 탓, 구조 탓, 탓이 난무하는 세계다. 실적이나 나의 무능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그런 탓을 잘해놓을 구조를 짜 놓는 것. 어쩌면언어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알면서도 해버리는 것이 '오해'인지도 모르겠다. 회사는 가끔은 그런 공간이 되기도 한다.
반면 회사는 생산적인 방법으로 나를 발전시키는 공간이기도 하다. 회사의 장점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급여를 받으며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혼자 도전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나를 개발하려면 타인의 시선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아주 기본적인 것으로 예를 들면지각이 그렇다. 혼자 있었으면 어려웠을 기상도 지각하는 것을 지적받기 싫어 일찍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발전하는 사람들을 보며 좋은 자극을 받는다. (자극을 소화할 수 있다면) 그렇게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공간에서 좋은 동료를 만난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큰 행운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회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 두 가지가 '책임과 경쟁'이기 때문이다. 책임과 경쟁은 가끔 눈을 흐려지게 한다. 이 둘의 균형을 잘 잡지 못하는 공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힘든 시간을 보낸다. 이 구도를 소화하는 사람과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책임을 논하고 경쟁하는 공간. 그 공간에서 좋은 동료(같은 직장이나 같은 부문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를 만나는 것은 어쩌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 전 심리적 퇴사를 했다. 심리적 퇴사라 함은 영업조직의 특성상 퇴사를 하고 싶어도 바로 무언가가 정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황을 수습하고 정리하느라 조금 지나 모든 퇴사가 마무리될 것 같다. 즐겁게 일했고 사람들도 좋은 편이었다. 그리고 나는 영업조직에서 지점장이라는 목표를 꿈꿨다. 그러나 퇴사를 함으로써 목표를 포기했다.
나는 포기를 한 걸까?
몇 개월의 시간 동안 고민한 끝에 나는 지켜낸 거라 결론 내렸다. 목표를 잃었지만 나다움을 지켜낸 거라는 결론 내렸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퇴사를 선택하는 것이 후회를 덜 할 것 같았다. 일을 위해 만든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플랜 B를 달성했고 그동안 배운 감사한 것들을 더 잘 활용해보기로 했다. 좋은 사람과 나 답게 살도록 해주는 사람은 다르다. 나는 좋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나 답게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