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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 Jul 16. 2020

경찰이 '삥' 뜯어도 돼?

낯선 외국에서 일하며 살며

잠비아는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매년 조사하는 부패인식지수(Curruption Perception Index)에서 2019년 180개 국가 중 113위로, 설문에 참여한 사람의 18%가 최근 12개월 동안 공공서비스 사용자들이 뇌물을 제공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고백하자면, 나도 경찰에게 뇌물을 줬다..... 기 보다, '삥'을 뜯겼다. 것도 꽤 자주. 부패한 경찰은 말도 안 되는 걸로 사람을 잡아 세우고 '벌금'이나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요구했다. 체감상으로는 내가 외국인이라, 특히 현지에서는 현금이 많고 돈을 잘 쓴다는 선입견적인 이미지로 대표되는 중국인처럼 보이는 외국인이라 더더욱 자주 경찰에게 잡혔던 것 같다.




잠비아에서 사업 차량을 구매하기 전, 택시로 출장을 다니던 기간이 있었다. 왕복 다섯 시간이 걸리는 거리라 나름 합리적인 가격에 택시를 종일 렌트하여 앞자리에 앉았다. 편도 두 시간 반 동안 수도를 벗어나 출장지로 가는 동안 내가 탄 택시는 3번이나 경찰에게 잡혔다. 이유는 다양했다, 속도위반, 앞유리 금, 또 뭐더라. 물론 내가 운전한 것도 아니고 내 차도 아니라 나한테 돈을 내놓으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불쌍한 택시기사는 그날 받기로 한 돈의 절반을 뇌물로 날렸다. 택시기사는 내가 'white'여서 그렇다며, 그 뒤로 나에게 눈에 덜 띄게 뒷좌석에 타라고 했다.

중국계 말레이시안, 리투아니안, 독일, 잠비안,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이서 캠핑을 가는 길이었다. 우리 차는 경찰에 두 번 잡혔다. 첫 번째 잡혔을 때는 경찰이 운전자인 중국계 말레이시안 친구에게 면허와 차량 검진기간 등등 각종 서류를 요구하더니 그냥 보내줬고, 두 번째 잡혔을 때는 경찰이 차를 아주 샅샅이 뒤진 뒤에 차량용 소화기의 유효기한이 지난 것을 발견했다. 경찰은 운전자 친구를 검문소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고, 아주 긴 면담에 들어갔다. 우리는 모두 차에서 내려 기지개도 피고 옥수수도 사 먹고 음료도 좀 마시고 휴게시간을 즐겼다. 한참이 지나서야 돌아온 친구는, 결국 과태료를 내는 데 실패하고 뇌물을 주고 왔다. 유통기한이 지난 소화기에 대한 과태료는 200콰차(당시 한화로 약 2만 원)라길래 친구가 내겠다고 했더니, 과태료 용지가 없다 어쩐다 저쩐다 한참 핑계를 대더니 마침 자기가 오늘 점심을 못싸왔는데 점심값으로 50콰차(약 5천 원)만 주면 눈감아주겠다고 했다는 거다. 뇌물을 줄 때까지 뻗댈 기세였다고. 실제로 30분도 넘게 잡혀있었다.


애인이랑 둘이서 시내 주행 중이었다. 교차로에서 경찰이 잡더니, 타이어가 많이 마모되었다며 벌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벌금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말은 안 하고, 일단 교차로라 차가 멈춰있으면 통행에 방해가 되니 근처 자기 소속 경찰서로 가잔다. 그리고는 우리 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아마 점심시간쯤이었던 것 같다. 경찰서 앞쪽으로 차를 몰자 그 경찰은 굳이 경찰서 뒷문 쪽으로 가자고 하더니, 흥정을 시작했다. 과태료를 받아야 하지만 100콰차(약 1만 원)만 주면 봐주겠다며. 열 받아서 논쟁을 벌여볼까 했지만 9년이나 잠비아에 살면서 한두 번 당해본 게 아닌 애인은, 그냥 100콰차를 주고 말았다. 부패 경찰의 택시가 되어주고 점심 밥값도 주고.

잠비아를 떠날 때, 잠비아에서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는 증명서(Police clearance certificate)를 떼러 경찰서에 갔다. 경찰서에 비치되어 있는 신청 양식을 작성하고 열 손가락 지문도 찍고 신청 양식에 접수원의 확인 도장을 받아 증명서 발급 수수료를 내러 가야 하는데, 접수원은 양식이랑 지문 찍은 잉크 값으로 50콰차(약 5천 원)를 요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정당한 수수료 같지가 않아서, 영수증을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영수증은 줄 수 없단다. 어이가 없어서, 이 종이랑 잉크를 너 돈으로 사 오는 거냐며 따졌더니, 그러면 가서 새 양식을 뽑아오고 오고 잉크를 사 오란다. 안 그러면 내가 작성한 양식을 내주지 않을 기세였다. 한숨을 쉬며 그냥 돈을 줬다. 처리과정이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더니 한 2주 걸리는데, 양식을 경찰청까지 배달할 차비를 주면 더 빨리 처리해 주겠단다. 그냥 내가 직접 경찰청에 제출하겠다고 양식을 받아 나왔다.


잠비아의 부패 경찰들이 특히 극성을 부리는 시즌이 있다. 부활절과 성탄절 연휴 전이다. 명절을 준비하느라 바쁘신 부패 경찰들로 인해 도로 곳곳에서 불심검문이 강화된다. 나와 애인은 크리스마스에 휴가를 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공항에 가는 길이었는데, 택시기사는 검문에 걸릴 것을 아주 당연히(!) 예상하고 일부러 공항까지 쭉 뚫린 큰길을 돌아 마을을 가로질러 갔다. 그리고 공항 쪽으로 빠질 수 있는 마지막 교차로에서 큰길로 나왔는데, 피하려고 애를 썼건만 경찰이 서 있었다. 경찰은 아주 당연하게 우리가 타고 있는 택시를 세우고, 택시기사에게 면허증을 요구해서 가져가 버렸다. 택시기사는 차에서 내려서 경찰과 한참 이야기 한 뒤에, 우리에게 다시 와서는 50콰차(약 5천 원)을 달라고 요청했다. 비행시간은 다가오고 있었고, 우리는 왜 줘야 되는지도 모르는 돈을 줬다. 이쯤 되면 통행세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되는 방법은, 과태료를 정당한 방법으로 낼 테니 딱지를 달라고 하는 거다. 경찰이 잡을 이유가 있어서 잡았다면, 내가 위반한 사항에 대한 근거로 그 나라 관련법 조항을 알려주고, 과태료 딱지를 주면 그만이다. 잠비아를 포함한 많은 나라는 부패방지를 위해 과태료를 현장에서 받지 않고 딱지를 가지고 은행에 가서 납부하거나 온라인으로 낸다. 과태료 딱지를 주지 못한다면 경찰이 말도 안 되는 걸로 트집을 잡아서 돈을 뜯고 있는 거라고 보면 된다. 근데 이렇게 말해도 부패 경찰들은 뻗댄다. 뇌물을 받을 때까지 안 보낼 작정인 경찰들이 많다.

경찰이 계속 돈을 뜯으려고 버티는데 이걸 주면 내가 열 받아서 밤에 잠이 안 올 것 같다, 하면, 나 같은 경우는 당시 잠비아 교육부 산하기관에 파견되어 있었기 때문에 신분증을 들이밀며, '나는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내 상사에게 보고해야 하니 과태료 딱지나 영수증, 그리고 네 이름을 달라'라고 반쯤 협박했다. 사실 보고할 필요도 없고 해도 아무 소용없겠지만, 내가 너 이름 가지고 뭐라도 한다는 뉘앙스를 잔뜩 담아서. 그럼 아주아주 너그럽게, 이번 한 번만 봐준다는 식으로 그냥 보내주기도 한다. 택시 타고 출장 다닐 때 이 방법을 자주 썼었다. 이후 정부 차량을 타고 출장을 다닐 수 있게 된 이후로는 잡힌 적이 없다.


한 친구는 경찰이 차를 세우라는 사인을 보내도 그냥 지나가 버린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를 세울 이유가 없고 세워야 할 의무도 없는 것 같다면서. 차 세워봤자 이유도 없이 돈이나 뜯기지 뭘.



경찰에게 돈을 뜯긴 사례를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억울하고 화나고 기분이 더럽다. 부패와 부조리와 불합리와 인종차별, 욕심과 가난까지 그 나라 공권력에서 한 번에 본다. 결국 돈을 주게 될 때는 뭔가에 굴복한 기분마저 든다. 나에게는 돈이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들에게는 돈이 문제였겠지. 잠비아 경찰공무원의 급여는 평균 한 달에 6,000콰차가 좀 안된다고 한다(2020년). 우리나라 돈으로 60만 원쯤 되는 돈이다. 그 돈으로 가족도 부양하고 먹고살고 하려면 힘들 수 있겠지. 그래. 그래..... 그래 내 돈 뜯어가라 대신에 더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 돈은 뜯어가지 마라. 그렇게 뜯어간 돈 어디 좋은데 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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