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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 Aug 20. 2020

외국에서 정신건강 챙기기

낯선 외국에서 일하며 살며

외국에서 정신건강 챙기기는, 어렵다. 자기가 자라고 난 익숙한 곳에서도 정신건강 챙기기가 쉽지 않은 이 시대에, 처음 와보는 낯선 곳에서 정신건강을 챙기기가 쉬울 리가 없지. 쉽지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편해지긴 한다. 이게 정신건강 챙기기 1단계.




자국과 다르게 외국에서 유달리 정신건강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여러가지인데, 내 경우에는 외국인으로서 받는 '시선'이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이다. 길을 걸어가는데 따라오는 노골적이고 집요한 시선, 사람이 북적이는 쇼핑몰에서 나를 쳐다보는 여러 명의 시선, 공원을 가든 식당을 가든 예사롭지 않게 쳐다보는 시선. 그깟 쳐다보는 게 뭐라고, 무시하면 그만이고 무시하는 수 밖에는 없어서(가서 왜 쳐다보냐고 따질 것도 아니고) 무시하지만, 이게 계속 쌓인다. 다민족 국가이고 이민자와 외국인 노동자가 흔한 호주에서도 차별은 존재하지만 최소한 거리를 돌아다닐 때 시선을 받지는 않았다. 외국인 여자가 혼자 돌아다녀도 시선이 의식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결 편하고 스트레스가 덜하다.

시선도 다 같은 시선이 아니다. 차별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모를 수 있는, 차별받아 본 사람만 감지할 수 있는 그런 느낌들이 있다. 잠비아에서 듣는 비웃음과 적대감이 섞인 '니하오'와, 파키스탄에서 듣는 친근감을 담은 '니하오'는 피부에 닿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그래서 파키스탄에서는 '니하오'를 들으면 웃을 수 있지만, 잠비아에서는 인상을 쓰게 된다. 잠비아의 남자들이 외국인 여자인 나를 쳐다보는 시선과, 파키스탄 남자들의 시선은 비슷하면서도 분명 다르다. 한쪽은 기분만 좀 더러웠다면 다른 한쪽은 조금 더 위협적이다. 외국에서 산다, 는 것보다는 '외국인으로서 산다'는 것 자체가 일상생활에 긴장을 한 겹 깔아 놓는다.

이 뒤에는 그 나라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 있다. 개인의 경험은 단편적이고 섬세하고 미묘하지만, 이런 상황을 야기하는 인식은 매우 정치적이고 구조적이고 거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황은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더 무력감이 오고 좌절감이 들기도 한다. 이럴 때, 정신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내가 쓰는 방법은, 걸어다니거나 쇼핑할 때, 연예인 된 기분을 느끼거나(이놈의 유명세, 어딜 가도 다들 알아보고 쳐다보는구만!), 머릿속으로 복싱 스파링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거나(한 놈만 걸려, 아주 다 뒤졌어), 가장 효과적인 건, 걸어다닐 때 친구나 애인이나 동생과 통화하며 수다 떨기. 시선을 덜 의식하게 되고, 기분 나쁜 일이 발생하면 바로 말로 풀 수 있고, 쓸데없는 소리를 안 들을 수 있다.



외국에 있는 게 힘겹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내 경우에는, 늘 부담감을 느끼고 스스로에게 압박을 준다. 여기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그동안 이 나라를 최대한 많이 보고 느끼고 알고 싶고,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나보고 싶고,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잘하고 싶고, 이곳의 소중한 시간을 단 한 순간도 낭비하거나 아깝게 보내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늘 지나치게 있었다. 그래서 일의 결과가 성에 차지 않거나 휴일에 뒹굴거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여기까지 와서 나는 왜 이러고 있지?' 하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마음이 늘 있었다. 특히 요즘은, 안 그래도 파키스탄은 여자 혼자 돌아다니기에 제약이 많은 곳인데 코로나19 때문에 안전상 제약이 늘어 움직이거나 사람들을 만나기가 더 힘들어졌다. 내가 파키스탄에 있는 건지 한국에 있는 건지... 둘 다 아니다. 나는 그냥 집-사무실에 있다.


이 부담감은 정말 떨쳐버리기 힘들다. 특히 이곳을 떠나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는 생각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지금도 그렇다. 지금 살고 있는 이슬라마바드와 라왈핀디 외 가보지 못한 파키스탄의 다른 도시들..... 그렇게나 아름답다는 Hunza Valley와 파키스탄의 역사와 문화의 진수를 볼 수 있다는 Lahore는 꼭 가보고 싶은데, 파키스탄을 떠나기 전에 가볼 수나 있을까. 파키스탄을 떠나면 나에게 남는 건 무엇일까. 여기에서의 1년, 혹은 2년이 나에게 의미 없는 시간이 되지는 않을까. 이건 비단 내가 지금 코로나19 시대를 살고 있어서 라기보다는,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 생겨먹었다. 나는 캄보디아에서도, 호주에서도, 잠비아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랬다.

그래서 늘 글을 쓴다. 내 삶을 국가를 옮길 때마다 끝나는 프로젝트처럼 쪼개서 보지 않으려고, 하루하루가 모여 내가 죽을 때까지 쭉 이어지는 것임을 인식하려고, 짧게라도 기록을 남겨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남겨놓는다(노트에도 쓰고 다이어리에도 쓰고 워드로도 쓰고 가계부도 쓰고 사진이나 영상도 찍고 이렇게 브런치도 쓰고). 뭐라도 남겨놓으면 내가 아무것도 안 한 날이 있을지라도 무언가를 한 날도 있다는 게 눈에 보여 부담감이 덜어지기도 하고, '어디에 있든 나는 나'라는, 중심을 잡고 있는, 땅에 발을 딛고 있는 감각이 조금 더 선명해진다. 물론 할 수 있다면, 욕심나는 대로 여기저기 가보기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경험도 하고.




또 다른, 외국에서의 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 것 중 하나는 '익숙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생활습관이든, 음식이든, 책이든 뭐든. 나는 기타를 가지고 다니고, 매일 애인과 동생과 연락을 하고, 매일 짧게라도 하루를 기록한다. 그리고 가끔 가톨릭 성당에 미사를 보러 간다(아직 여기서는 가보지 못했지만). 미사는 어느 나라에서 어떤 언어로 진행되든지 간에 구조와 순서가 같아서, 어렸을 때 열심히 성당에 다녔던 나로서는 어느 나라에서나 찾을 수 있는 익숙한 것 중 하나인 셈이라, 성당에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이런 익숙한 것들을 마중물 삼으면, 낯설던 외국도 금세 익숙한 곳이 되어 긴장이 덜해진다.

파키스탄에서의 생활도 벌써 6개월째에 접어들었다. 몸은 이미 적응했고, 생활에도 많이 적응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래 살아도 적응되지 않을, 쌓이기만 하는 종류의 스트레스도 늘 있다. 이런 스트레스에 가장 좋은 건 타국 휴가다. 다른 나라로의 일시적 도피! 피할 수 있다면 잠시라도 피해야지. 휴가가 기다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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