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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 Jul 08. 2020

외국 살면 안 외롭냐?

낯선 외국에서 일하며 살며

꽤 긴 기간 동안 외국에 나가 있는 나를 보면, 사람들이 많이들 물어본다. 안 심심하냐, 안 외롭냐, 한국 안 그립냐고. 가족들과 친구들과 떨어져 있는데 괜찮냐고. 음- 글쎄. 유달리 한국이 그리운 날이 있다. 날도 더운데 일도 많고 잘 되지도 않아서 피곤에 절어 야근 좀 하다가 퇴근한 날, 근처 친구 불러서 노가리 뜯으며 소맥 한 잔 하고 싶은 기분인데, 술집이 없거나 부를만한 친구가 없다든지. 간만에 길을 좀 걸어다니며 구경도 하고 산책도 하러 나왔는데, 인도와 차도가 잘 분리되지 않고 횡단보도가 없어 위험한 것 까지는 그렇다 쳐도 쳐다보는 시선들이 영 불편하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누가 다가와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콜라보를 쏟아내며 껄떡댄다든지. 갑자기 한국에 있는 누군가가 너무 보고 싶어서 통화 좀 하려고 했더니 시차 때문에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라든지.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그렇게 심심하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고, 향수병에 걸린 적도 없다. 성격 자체가 워낙 환경에 적응도 잘하고, 외로움도 별로 안 타고, 혼자서도 잘 놀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데도 거부감이 없어 친구들도 제법 사귀며 잘 지냈다. 그렇다고 성격이 엄청 사교적이지는 않아서 처음부터 내가 막 적극적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가지는 못하고, 대신 사람이 많은 환경에 나를 자주 노출시키고 다가오는 사람을 막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이게 또 아무나 다가오게 할 수도 없긴 하다. 워낙 미친놈들도 많고, 문화적인 차이로 인한(건지 잘 모르겠지만) '오해'도 많다. 사람 대하는데 편견을 가지고 싶지는 않지만, 굳이 일일이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보지는 않아도 될 테니 누군지 모르는 랜덤가이를 단둘이 만나지는 않는다.

친구를 사귀는 데 첫 단추가 되었던 곳은 플랫쉐어나 직장이었다. 호주와 잠비아에서는 플랫쉐어를 한 적이 있어서, 집에 사람이 있으면 인사라도 시작하게 되고, 오늘은 어떻게 지냈니, 저녁은 먹었니, 하다보면 같이 밥도 먹게 되고, 그 친구의 친구가 놀러 오기라도 하면 소개도 받고 얘기도 하게 되며 관계를 시작했었다. 직장에서는 아무래도 나잇대가 비슷한 사람이랑 사적으로도 친해졌다(직장 어른들은 어려워). 사석에서 만나고 집에도 초대해서 우리집 친구들도 소개해주고 그러다 보면 다 같이 놀게 되고. 특히 잠비아처럼 외국인이 많지 않은 곳은 커뮤니티가 작아서, 새로운 외국인이 입국했다, 하면 금세 쫙 퍼진다. 외국인이 일하는 곳은 몇 군데 안되니 한다리 건너면 다 알고, 루사카 내에서 가는 곳도 비슷비슷해서 몇 번 마주치다 보면 얘가 걔였구나, 하게 된다.


서로 외국인인 처지라면, 공감대 형성이 조금 더 쉽게 이루어지는 것 같다. 이곳의 생활, 여행, 문화, 비자 등 각종 정보도 교환하고, 외국인으로서 느끼는 것들도 공유하고. 더해서 내 주변에는 내가 일하는 분야와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적으로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들도 많이 있었고, 직업 특성상 나와 비슷하게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 특히 자신과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 자연스럽고 익숙한 느낌이었다. 내가 만날 의지만 있다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가 않았다.




아무리 사람을 많이 만나도,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만한 친구 사이로 발전하기는 쉽지가 않다. 어디서나 모두들 자기 마음속에 각각 타인에 대한 벽이 있겠지만, 외국에서 주기적으로 이동하는 삶을 사는 경우 그런 벽이 몇 개 더 생기는 것 같다. 언어적으로 서로 모국어로 소통하지 않는다는 벽, 자라온 문화와 배경이 다르다는 벽, 경제적 배경이 다르다는 벽, 일이년 뒤에는 헤어져서 물리적으로 만나기 어렵다는 벽.


다른 언어와 다른 문화적 배경의 사람을 만날 때는 장단점이 있다. 이미 내가 이 사람과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는 걸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름 자체를 전제조건으로 대화를 하고 이해를 하려는 노력을 더 기울이게 된다. 예를 들어 친구와 영어로 대화를 하다가 내 귀에는 좀 이상하게, 혹은 무례하게 들린 말이면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거나, 내 눈에는 엄청 답답하게 느껴지는 행동도, '얘는 왜 이렇게 답답하게 굴어?' 해버리는 게 아니라 문화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나 알아보게 된다거나. 이해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문화적으로 달라서 그렇겠거니, 하고 넘어가는 여유가 조금은 더 생긴다.

단점은, 아무래도 언어적,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영어를 써도 서로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경우도 많고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의미는 전달되어도 뉘앙스의 차이가 있기도 하고, 문화가 다른 걸 이해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맞춰지는 건 아니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생기기도 한다. 이럴 때 그냥 불편을 감수하고 넘어가거나 아니면 부딪히든지 둘 중 하나인데 둘 다 늘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넘어가면 넘어가는 대로 그 불편했던 감정이 쌓이다가 '아 그냥 보지 말자' 할 때도 있고, 부딪혀서 잘 풀리면 좋겠지만 '안 보는 게 낫겠다' 하게 되기도 하고. 성격차이에서 오는 갈등의 거시적 버전이랄까. 만일 문화가 너무 달라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면 친해지기 힘든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경제적 배경의 차이는 특히 경제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많이 어려운 나라의 친구를 만날 때 느끼게 되고, 여러모로 고려하게 되는 부분이다. 같이 식당을 가서 밥을 먹기로 하면, 이 친구는 보통 식당에서 얼마 정도 내는지, 외식이 부담되는 건 아닌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나라 한 달 평균 월급 얼마인지 빤하고 얘는 현지 NGO에서 일하는데. 이런 경우에 친구에게 식당을 고르라고 하거나, 내가 사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집에 초대를 하거나 하지만, 거리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여러 친구들이랑 함께 캠핑을 가려고 신나서 여기저기 초대를 했는데, 이 친구가 못 가겠다고 할 때 아쉬움과 함께 느껴지는, 부정하고 싶은 경제적 거리감.

길어야 일이년 뒤 헤어지게 되는 건, 인터넷이 이렇게 발달한 시대에 그렇게까지 큰 장벽이 아닐 수는 있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도 사는 곳이 서로 달라진다는 건 서로의 가장 큰 공통된 관심사 한 개가 사라진다는 이야기이다. 서로의 집에 초대도 하고, 같이 맛있는 음식도 먹고, 구경도 다니고, 이 나라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면서 친해진 사이에서 내가 떠나거나 네가 떠나면서 이 모든 게 추억으로만 남게 되기 때문에 점점 연락도 뜸해지고 할 말도 없어지고..... 그렇다고 해서 이 관계가 의미가 없지는 않다. 세상은 정말 좁기 때문에 어디에서든 다시 만날 일이 생기면, 그때 이 관계를 바탕으로 또 좋은 시간을 보낼 테니까. 어딘가에서 떠나와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체득하게 되는 것 같다. 이별과 만남에 익숙하고, 오랜만에 용건 없이 안부만 전하는 연락을 부담스럽지 않게 느끼는 걸 보면.




외국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쌓다가 떠나 한국에 오면, 한국에 남겨졌던(?) 사람들과는 영영 잊거나 잊히거나 멀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 번씩 외국에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연락하고 만나는 사람이 팍팍 줄어든다. 물리적으로 한국에 있으면 더 자주 만나고 서로 공통점도 더 많아서 계속 관계를 이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서로의 삶이 달라지고 시간이 흐르니 멀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성격이 살가운 편도 아니라 부지런히 연락을 하지도 않아(종종 안부는 전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내 옆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아주아주 가까워 매일 단톡방에서 계속 대화를 하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연락해도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는 친구나, 한국에 있다고 해도 자주 만나지는 않겠지만 안부를 꾸준히 묻는 지인들이다. 친한 친구들이야 매일 연락을 하니까 삶이 이어져 있고 한국 가면 매일같이 만나는 게 자연스럽지만, 사실 연락을 자주 안 하던 사람들에게 한국에 들어간다고 불쑥 연락해서 만나자고 하는 게 심적으로 쉽지는 않다. 그래도 한국에 가면 늘 용기를 내서 만나자고 연락을 하는데, 다들 늘 반갑게 만나줘서 참 고맙다. 먼저 연락을 주는 사람들도 정말 고맙고.

이동이 잦고 낯선 곳에서의 인간관계의 어려운 점들을 이야기하긴 했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들, 나와 잘 맞는 사람들과는 더 가까워지고 친해지고 싶어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것 같다. 다행히도 어딜 가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았고, 그 사람들과의 시간은 늘 마음에 남아 문득 생각나고 안부가 궁금해 가끔이라도 연락을 하게 된다. 몇몇은 정말 친해져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친구로까지 발전했다.

 

지금 파키스탄에서는 코로나19 때문에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자체가 매우 제한적이지만, 사무실에서 만나는 직장 동료들과 현 상황에 대한 동지애를 쌓아가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도 코로나19 덕분에(?) 더 자주 안부를 묻게 되기도 하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기는 정말 어려워진 세상이지만 그래도 계속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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