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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 Oct 08. 2020

외국에서 아프면 그게 다 큰돈이다

낯선 외국에서 일하며 살며

2020년, 코로나 19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나라들이 뉴 노멀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파키스탄은 그냥 노멀로 돌아갔다. 정부 공식 발표상 하루 확진자가 5~6,000명을 오가던 피크는 지나갔다고 해도 여전히 하루에 5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코로나 19 관련 이동제한은 모두 해제되었고, 마스크 착용/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지침은 있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만약 여기서 지금 내가 열이 나고 기침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병원을 가기가 상당히 망설여진다. 코로나 19 여부를 막론하고라도 병원 시설과 위생을 믿을 수 없고, 만일 코로나 19 확진이 되어서 격리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슬라마바드 코로나 19 지정병원의 격리병동 수가 많지도 않고, 1인실도 없다. 사설 international hospital에는 인공 산소공급시설이 있는 입원실이 있는데, 정말 비싸다. 하루 입원비가 3~50만원 꼴이다. 회사에서 들어준 보험으로 한도 내에서는 처리를 할 수 있겠지만, 보험이 없다면 정말 아픈 게 다 돈이다.


나는 한국, 캄보디아, 호주, 동티모르, 잠비아에서 병원을 가봤다. 한국은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항목은 병원비가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 약값도 마찬가지다. 나는 의료보험이 계속 적용되어 왔기 때문에 한국 병원비에 대해서는 딱히 말할 게 없고. 외국에서 외국인으로서, 국가 의료보험이 없고, 현지어를 거의 못하고, 의료시스템이나 시설이 우리나라와는 현저히 다른 곳에서 아파서 병원에 가면, 여러모로 훨씬 긴장된다.



2009년에 고열과 설사, 극심한 두통과 근육통 등의 증상으로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의사를 보러 갔다. 보통 우리나라에서 좋은 병원을 찾는다고 하면 큰 병원, 국립병원, 대학병원 등을 주로 떠올리지만, 사회적 인프라가 낙후된 국가에서는 오히려 국립병원은 시설과 신뢰도가 많이 떨어진다. 당시에 나를 병원에 데려가 주신 분도 외국인들이 많이 가는 사설 클리닉으로 갔다.


말이 잘 안 통하는 곳에서 아파서 병원을 간다는 건 심리적으로 매우 긴장되는 일이다. 내가 어떻게 아픈지 잘 설명할 자신도 없고, 전달도 잘 안될 것 같고, 의사가 물어보는 질문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내 병이 어떤 거다, 처방은 어떻다,라고 설명해줘도 잘 못 알아들을 것 같고. 더해서 위생에 의심이 가고 2차 감염이 걱정된다. 내 편도를 확인하기 위해 혀를 누르는 막대기가 새 것인지, 겨드랑이에 끼고 있는 체온계가 깨끗한지, 내 팔에 꽂혀있는 주삿바늘이 재사용된 것은 아닌지.


긴장은 됐지만 통역의 도움을 받아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설명하고 설명도 들었다. 친절한 의사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대부분 또박또박 영어로 말해주셨고, 말라리아가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는데, 딱 3일 동안 앓고 나서 다 나았다.  




2013년 동티모르에서는 내가 아팠던 건 아니고 당시 같이 여행하던 동행인이 고열과 근육통 등의 증상을 보여서 의사를 보러 갔다. 말라리아가 아닐까 의심하여 우선 수도 딜리의 현지 클리닉에 갔다. 시멘트 벽이 그대로 노출된 1층짜리 건물의, 유리가 끼워져있지 않은 창살이 쳐진 창구를 통해 접수를 한 후, 그 옆의 책상에서 말라리아 검사를 받았다. 시골 버스정류장 같은 대기실에 앉아서 약 30분 정도를 기다리니 결과가 나왔다. 음성. 검사받은 책상의 바로 옆 책상에서 해열제 등의 약을 처방받아 숙소로 돌아왔다. 현지에 오래 계셨던 지인 분은 검사 결과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일단 약을 먹고 안정을 취해보라고 하셨다.


동행인은 약을 먹고 나니 우선 좀 나아진 것처럼 보였다. 그날 저녁밥도 약간 먹었다. 그리고 그날 밤, 다시 고열이 올라 이번에는 다른 클리닉을 찾아갔다. 포르투갈 의사가 운영하는, 타일이 잘 발라진, 유리창과 유리문이 있는 클리닉이었다. 두 개의 병상이 있는 입원실 혹은 주사실의 한 침대에 누워 팔에 링거를 3개나 꽂고 누워 몇 개의 검사를 마친 동행인은 뎅기가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백혈구 수치가 계속 떨어지면 동티모르의 병원 시설로는 감당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 최악의 상황의 경우 엠뷸런스 비행기를 불러 싱가폴 병원으로 후송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설명이었다. 우리가 든 여행자보험은 그것까지는 커버해주지 않았다. 예상되는 후송비용만 한국 돈으로 이천만원가량. 제발 백혈구 수치가 안정되길 바라며 클리닉에 입원하여 밤을 지새웠다.

다행히 열도 떨어지고 수치도 안정되었다. 하지만 하룻밤 병원비가 천불이 넘게, 한국돈으로 백만원이 넘게 나왔다. 비행기를 타도 된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끊은 터라 돈이 없어 지인에게 그 큰돈을 빌려 병원비를 지불하고, 보험처리를 위해 서류를 싹 다 챙겼다. 의사는 싱가폴까지의 비행을 허락하는 소견서를 써줬지만 우리는 싱가폴을 경유하여 한국까지 날아갔다. 동행인은 공항에 미리 대기시켜놓은 앰뷸런스를 타고 국제진료센터가 있는 순천향대병원에 일주일 가량 입원했고, 다행히도 완전히 회복했다. 병원비는 여행자보험으로 다 처리하고. 보험, 정말 들길 잘했다.



2013년 호주에서는 밤에 잠들기 전에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갔다가 통증과 함께 변기 물이 붉게 물드는 걸 보고 정말 진지하게 한국에 당장 돌아가야 하나, 고민을 했다. 피가, 어디 상처에서 피가 난 것도 아니고 거기에서 피가! 일단 겁이 났다, 죽을병 걸린 건 아닐까 싶고. 무엇보다도 병원비가 가장 걱정됐다. 호주도 의료보험이 안되면 병원비가 굉장히 비싸다는 소리를 들은 데다가 동티모르에서 하룻밤 입원하고 백만원 청구서를 받아봤으니..... 하지만 의료시설이나 위생이 걱정되지는 않았다.


계속 소변이 마려운 느낌에 밤새 화장실을 왔다갔다 하며 밤을 지새우고 다음날 아침, 차를 몰아 병원에 갔다. 호주는 넓다. 멜번이나 시드니, 브리즈번 같은 도시에 사는 게 아닌 한 엔간한 곳은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우리나라 도시처럼 바로 집 근처에 병원이 있고 그렇지가 않다. 차를 한 15분 달려서 클리닉에 도착했다.

우리나라는 배 아프면 내과 가고 목 아프면 이비인후과 가고 나처럼 소변에서 피가 나면 비뇨기과나 산부인과를 가지만, 호주에서는 어디가 아프든 일단 일반의(generalist)를 보러 가야 한다. 일반의 수준에서 해결이 안 되면, 소견서를 받아서 전문의(specialist)의 예약을 잡고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비해서 매우 느리다. 나는 일반의를 만나서 문진을 받고, 소변검사, 임신테스트 등 검사를 받고, 일단 약은 처방받았는데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3~4일 걸린다고 그 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그 정도 검사는 바로 나오지 않나?


비싸고, 비효율적이었다. 의사 한 10분 보고 처방전 받은 것만 8~9만원 정도가 나왔다. 검사비는 따로 청구가 되는데, 우편으로 따로 날아온다고 했다(심지어 얼만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게 무슨 비효율적이고 느려 터진, 신뢰에 기반한 행정이지? 왜 검사비 청구서만 따로 집으로 우편으로 추후에 날아오는 시스템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되고  내가 만약에 당장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가면 검사비는 안내도 되는 건지 의문스러웠다. 약값은 또 약값대로 한 만원 나왔다.


3~4일 뒤에 병원에 가서 10분쯤 의사랑 얘기하고 검사 결과를 들었다. 이번엔 좀 쌌다, 5만원 정도. 결과는 방광염이었다. 약 처방을 받아 들고 약국 가서 약을 또 만원쯤 주고 샀다. 검사비 청구서는 잊을만할 때쯤 집으로 날아왔다. 6만원쯤. 다해서 20만이 넘게 나왔다. 방광염 한 번 걸려서 20만원.....




2017년 잠비아에서는 두 번 병원에 갔다. 잠비아에 도착한 지 한 달이 좀 넘었을 무렵, 따듯한 봄날이었다. 출근을 했는데 몸이 으슬으슬하여 바람막이를 걸쳐 입고 일을 하다가 퇴근하여 집에 왔다. 그리고 밤에 열이 끓었다. 순간, 말라리아일까봐 겁이 났다. 아프리카의 말라리아는 아시아의 삼일열 말라리아와 달라서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고 들었다. 우선 해열제를 먹고 잠에 들었는데, 열이 계속 올라 잠을 설치다가 새벽 5시 반쯤 결국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Assistant Card에 가입이 되어있어서 전화를 했더니, 잠비아의 병원은 아는 바가 없다며 가고 싶은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추후 청구를 하라고 했다. 가고 싶은 병원이 있을리가.....


그 이른 시간에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 고민하다가, 다행히 새벽 4시에 일어나는, 당시 잠비아에 8년째 살고 있던 지금 내 애인에게 연락을 했다. 국립병원은 절대 가지 말라며, Cfb 클리닉이라는 곳을 추천해줬다. 차도 없으니 아는 택시기사 몇 명에게 전화를 걸어 연락이 된 한 명을 불러다가 집을 나섰다. 타일이 발린, 꽤 크고 위생적으로도 깔끔해 보이는 2층짜리 병원은 아침 일찍이라 그런지 환자도 거의 없이 한산했다. 의사 검진비 7만원가량을 먼저 내고 접수를 한 뒤에 새하얀 밝은 복도에 앉아서 잠시 기다리니 의사를 볼 수 있었다. 열이 38.7도. 1층 응급실에 누워 링거를 팔에 꽂고 이런저런 처치를 받고 검사를 받았다. 사무실에 연락하여 오늘 출근 못한다고 알리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사이 틈틈이 의사, 간호사가 와서 상태를 체크했다.


아침 9시쯤, 간호사가 와서 배고프지 않냐며 식사를 준비해 줄까 물었다. 배는 별로 안 고팠지만 잠비아의 병원식이 궁금하기도 하고 약 먹으려면 뭔가를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준비해 달라고 했다. 잠시 뒤, 쟁반에 담겨 나온 식사는 우리나라의 병원식 개념과는 전혀 달라 보였다. 홍차와 크림과 설탕, 토스트와 버터, 시리얼과 우유. 내 병명은 급성위장염이었다. 우리나라였으면 밀가루, 유제품, 뭐뭐 먹지 말라, 라는 소리를 했을 텐데 여기서는 그런 주의사항이 전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유달리 밀가루 음식을 먹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여기서는 내 상태가 먹을 수 있는 상태면 뭘 먹든 상관이 없고, 그냥 와서 주사만 잘 맞고 약만 잘 먹으면 되는 것 같았다.

잠비아도 호주처럼 일반의와 전문의가 따로 있고 웬만한 건 일반의의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다. 잠비아는 일반의의 소견이 없이도 전문의를 보려면 볼 수는 있는데, 대부분 진료가 많이 밀려있어서 예약을 먼저 하고 기다려야 한다.


병원비는 미리 낸 의사 진료 비용에 링거액, 주사약 포함해서 약값이 한 5만원 정도. 총 12만원쯤 들었는데 회사에서 들어준 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이후 5일 동안 내가 미리 구입한 주사약을 직접 들고 매일 병원에 와서 주사를 맞아야 했는데, 위생적으로 안심이 됐다. 주사기도 내 눈앞에서 새 거 까서 쓰고. 한 번은 주사기 바늘을 까다가 떨어뜨렸는데 버리고 새로 가져와서 까서 주사를 놔줬다. 사실 이런 게 정말 신경 쓰이는 부분인데 안심됐다. 그렇게 주사를 잘 맞고 급성위장염이 나으면서 그 염증이 방광으로 내려왔다. 의사 보는데 또 7만원, 약값 한 3만원.....




최근 과로로 입술에 포진이 생겼는데, 한국 같으면 병원에 간다는 걸 꽤 유효한 선택지로 둘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굳이 이 정도로는..... 특히 코로나19 시국이라 좀 더 불안하고. 외국에서 병원에 가는 건 어디서 가든 매번 도전이다. 병원비가 비싸든지, 시설과 위생이 열악하든지, 말이 잘 안 통하든지. 보험은 꼭 들어야지, 짧게 여행을 가더라도. 병원 갈 일이 안 생기면 다행이지만 일이 생기는 건 정말 한순간이니까.


아무튼 안 아픈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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