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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 Oct 01. 2020

한국사람은 유달리 일을 잘해

낯선 외국에서 일하며 살며

외국에서 살다 보면 우리나라 사람의 집단으로서의 특징이랄까, 모습이랄까, 우리나라 안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게 될 때가 종종 있다. 그중 요즘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일'을 중시한다는 거다. 여러 곳에 살아보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삶의 중심에 일을 놓는 집단을 찾아보기는 힘들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물론 세계 어디나 그렇듯이 우리나라에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고, 대충 하는 사람도 있고, 일을 제때 처리하는 사람도 있고, 꼭 미루다 늦는 사람도 있고, 일찍 출근해서 늦게까지 야근하는 사람도 있고, 늦게 오고 칼퇴하는 사람도 있고 다양한 개인이 있지만, 한 발 떨어져 보면, 한국사람들은 못해도 기본적으로 평균 이상으로 일을 성실하게 열심히 효율적으로 정확하게 한다. 빠르게 한다고 해서 대충 하지도 않는다. 맡은 일에 책임감도 높은 편이라, 기한이 있는 일은 제시간에 어느 정도 수준(애초에 수준이 높은 편이다) 이상으로 완성시킨다.

외국에서 보면 한국사람이 유달리 부각될 수밖에 없는 게, 이렇게까지 일을 효율적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면서도 아주 열심히 하는 특색을 나타내는 집단으로서의 국적군이 별로 없어서 그렇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초에 일머리가 좋게 태어났나 싶을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일을 잘하게 된 데에는 한국의 인프라와 시스템이 그만큼 잘 받쳐주는 게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특히 정보통신 인프라와 전산화 시스템.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방식이 선진국/개도국을 막론하고 세계 여러 나라에는 정말 너무나도 많다. 예를 들면,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가 왔다갔다 하는 일. 우리나라는 대부분 전산화가 되어있어 인터넷으로 손쉽게 증명서 등을 열람/출력할 수 있고, 정부나 사내 결재시스템도 전산화가 되어서 전자서명을 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는 아직도 실물 종이 기반으로 우편이 왔다갔다 하거나 사람이 왔다갔다 하고 정부기관 내에서는 실물 결재판에 실물 사인과 도장이 찍혀야 하며 그 원본이 전국을 왔다갔다 한다. 그 와중에 결재판이 사라지기라도 하면 그 건은 다시 시작되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고..... 그렇게 다시 시작했는데 사라진 결재판이 뿅 하고 나타나기라도 하면 혼란의 도가니.


정보를 얻기도 쉽지가 않다. 우리나라처럼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서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나라도 참 드물다. 여전히 많은 나라들은, 공식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면 직접 그 공공기관을 방문하거나 전화를 해서 내가 알고 싶은 정보를 그 기관 도장이 딱 찍힌 편지로 받는 방식을 이용하는데, 그 '공식적이고 정확한 정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절차나 체계가 미비하거나 부재한 경우가 많아서 사람마다/담당자마다 각각 아는 정보와 처리하는 방식이 다른 데다가 실물 종이 기반으로 정보가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어디서 변동이 생겼다고 해도 공유가 제때 원활하게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권을 발급받는다고 치면, 우리나라에서는 포털사이트에 '여권발급' 치면 외교부 여권 안내 페이지가 나오고 거기에 공식적으로, 믿을 수 있게, 친절하게 절차가 안내되어 있어 실제로 그렇게 하면 된다. 그대로 안되면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할 거다. 반면에 여전히 많은 나라들에서는 공식 웹사이트가 아예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업데이트가 안되어 있거나, 절차가 안내가 되어있더라도, 그대로 했는데 안되면 안 되나 보다, 그런가 보다, 하고 마는 경우가 아주아주 흔하고 많다. 기관 도장이 찍힌 공문을 들고 가도 담당자가 바뀌어있으면, '이거 내가 쓴 거 아닌데? 난 몰라' 하는 경우가 판치는 마당에..... 그래도 공문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들이밀며 따질 근거라도 되기는 하지만.


이런 정확하고 빠르고 효율적인 시스템이 구축된 사회에서 살면서 일하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체득해서 어디서든 일할 때 자연스럽게 응용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이런 시스템이 잡힌 게 길어야 몇십 년일 텐데, 이런 시스템을 잘 구축하고 잘 활용한다는 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신속/정확/효율을 추구하는 특성을 타고나기도 했을 거고.




인프라와 시스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의 일에 대한 가치관도 크게 한몫을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이 안되면 큰일이고, 큰일나며, 이게 내 인생 자체에서 아주 큰일이라고 느낀다. 일에 대한 애착도 크고. 일을 되게 열심히 하고, 열심히 안하는게 이상한거다. 하고 있는 일이 잘 안되는데 태평하게 '안되면 안 되는 거지', 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대한민국 직장인은 거의 없을 거다. 최소 하는 척이라도 하겠지.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 안될 것 같았는데 된 나라, '안되면 되게 하라' 정신의 나라니까.

여러 나라에서 여러 문화의 사람들과 일하면서 참 많이 듣는 말이 'no problem'이다. 나는 이 말을 이게 정말 일에 '문제'가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일이 잘 안된다고 해도 그게 네 인생의 'problem'까지는 아니라는 뜻 정도로 받아들인다. 우리나라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일이 엉망진창이고 비효율적이고 속도도 너무 느려 계획한 모든 것들이 다 지연되고 있는, 정말 큰일인 상황이어도, 다른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하던 식으로 일한다고 해도, 인프라나 시스템의 차이가 있으니 우리나라처럼 빠르고 정확하고 효율적일 수가 없는 환경인 경우도 많고, 일 문화 자체가 '안되면 안 되는 거고, 될 때가 되면 어련히 되겠지'인 곳도 많고.

예를 들면, 지원서나 보고서 제출기한에 늦게 생겼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을 느끼는 만큼의 심리적 압박감을 잠비아나 파키스탄 사람들이 그만큼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한'에 엄격하고, 1초라도 늦으면 탈락하는 등 실제로 불이익이 발생하니까. 제출시간을 칼같이 지킬 수 있을 만한 환경도 어느 정도 조성되어 있어 그 외의 변수는 '개인의 능력' 범주에 넣을 수도 있고. 하지만 잠비아나 파키스탄 같은 나라에서는 1초가 아니라 1분, 한 시간, 하루가 늦어도 탈락은 너무 가혹할 수 있다. 전기도 자주 나가고, 인터넷도 느린 데다가 자주 끊기고, 비라도 오면 도로가 막힐 때도 있고. 환경에 따른 변수가 너무 많다. 그래서 애초에 그렇게 제한시간을 칼같이 두지를 못한다. 그러니까 좀 늦어도 'no problem'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일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것만큼 인생의 중심이 아니다. 가족이나 종교, 여가생활 등 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을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욱 삶의 중심에 가까운 곳에 놓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일'에 대한 문화와 윤리가 다르니, 외국에서 우리나라 사람과 다른 나라 사람이 같이 일할 때 서로 답답할 때가 많다. 특히 외국에서, 우리나라 회사에 속한, 우리나라 사람과 현지 사람이 같은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면, 마음이 급할 때 '내가 하는 게 더 빠르겠다'싶어서 현지 사람이 맡은 부분을 내가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 혼자 일을 다 하고 있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현지 사람이 한 일이 현지의 시스템과 방식의 한계 등으로 내 기대보다 정확도나 신뢰도가 떨어지니 재차 확인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현지 사람들 입장에서도, 빨리 될 수가 없는 일인데 한국 사람은 현지 시스템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왜 이렇게 비효율적인지 이해가 안되니까) 계속 재촉만 하니 답답하다. 재촉한다고 없던 게 나올 리가 없는데, 없는걸 없는 대로 못 받아들이고,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져와라, 하는 수준으로 재촉하니까. 한국 사람들은 일이 좀 안되면 인생이 무너지는 수준으로 맨날 인상 쓰고 괴로워하고 있고. 될 일은 언젠가는 될 테고 안될 일은 어차피 안되는데. 안 되는 일을 자꾸 되게 만들라고 하고.


그러다 보니 종종 안 되던 일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좋은 방향으로도, 나쁜 방향으로도. 좋은 방향이라면, 여러 번 재차 확인해서 상황을 확인하다 보니 되는 방법을 찾은 경우겠지만, 나쁜 방향이라면, 정말 안 되는 일인데 하도 재촉당하고 쪼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어찌어찌해서 되도록 만든 경우다. 전자의 경우야 한국 사람의 꼼꼼함과 성실함을 들여 모든 가능한 방법을 다 검토해 보고 잘 된 거겠지만, 후자의 경우는 결국 안된다. '안되면 되게' 만든 일은 어디서든 결국 탈이 나게 마련이고, 들인 시간과 노력과 돈이 다 날아가다 못해 독박을 쓰는 경우도 생긴다. 현지에서 되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과 억지로 특별 케이스를 만들어 밀어붙이는 것을 혼동하지 말아야 할 텐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주 혼동하는 것 같다. 이렇게 저렇게 '한국적으로' 하면 효율적으로 잘 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안 하는지 이해가 안 되니까.




한국에 본부가 있고 외국에 파견 나와 일하는 나 같은 경우는 어쩔 수 없이 한국과 파견 나온 국가 사이에 껴있는 모양새가 되는데, 한국에서는 현지 환경을 잘 모르니 한국처럼 될 거라고 생각하며 계속 조으지, 현지에서는 다들 'no problem'이라고만 하지. 나는 현지 상황을 알고 현지에서 일하지만 본부에서 던져주는 '기한'이 있는 일을 해야 하니 미치겠는 상황이 매일같이 발생한다. 한국에 보낼 보고서 쓰느라고 나는 맨날 야근하는데 같이 일하는 현지 사람들은 나를 도와주려야 도와줄 수도 없으니 칼퇴하고.

조율이 쉽지가 않다. 말로 현지 상황을 설명을 해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가 사실 쉽지 않다. 여기 있는 나도 사실 이해를 한다기보다는 그냥, '아, 여긴 이렇구나' 하고 머리로 받아들이는 정도지 뭐.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야근을 한다. 어제도, 그제도. 내일도, 모레도.....


여긴 추석도 없지만, 그래도!

어디에 있든 모두 모두 즐거운 추석 보내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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