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외국에서 일하며 살며
현지인 틈에서 외국인이 일하는 건, 여행에서나 친구로 현지인을 만나는 것과도 다르고, 외국인 대 외국인으로 일하는 것과도 다르다. 절대다수가 공통의 문화를 공유하고, 같은 말을 쓰는 곳에서 절대 소수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어려움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라서 일하다가도 직장을 옮기면 그 직장의 문화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어려움이 있을 텐데, 외국으로 직장에 옮기면 새 나라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부터, 새로운 사회 시스템,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사고방식까지 한 번에 적응을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남들은 다 알아듣는데 나만 못 알아듣는 상황에서 오는 당혹스러움과 소외감이 생각보다 크다.
똑같은 외국이라도 영어가 공용어이지만 현지어/부족어도 있는 나라와 영어가 유일한 국어인 나라 간에 큰 차이가 있다. 호주처럼 영어가 유일한 국어인 나라에서는 현지인들끼리 의사소통을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언어가 영어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 잠비아사람은 다른 잠비아사람과 대화할 때 영어뿐만 아니라 잠비아의 대표적인 공용어 중 하나인 냔자나 통가로도 대화할 수 있고, 파키스탄사람도 자기들끼리 영어나 우르두어로 대화할 수 있다. 그러니까, 호주사람들은 (영어를 구사하는) 내 앞에서는 자기들끼리 의사소통을 할 때도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영어로 소통할 수밖에 없지만, 잠비아사람이나 파키스탄사람은 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내가 구사하지 못하는 언어로 소통할 수 있고, 이들도 내가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잠비아에서 일할 때는 나만 한국사람이고 다 잠비아사람인 상황이어서 이런 일이 정말 많았다. 중요한 의제를 가지고 다 같이 영어로 논의를 하는 중이었다. 내가 제시한 어떤 사안에 대해서 공무원 두 분이 서로 의견이 안 맞았는지 논쟁을 하다가, 갑자기 현지어인 냔자로 언어를 바꿔서 둘이서 속사포로 열띤 토론을 막 한다. 나머지는 다들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음, 하거나 절레절레하면서 아아, 하고 있고. 한두 마디씩 끼어들기도 하고. 그러다가 오케 굳, 하고 다른 사람들도 다들 박수를 짝짝짝 치면서 굳,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해결된 것 같은 후련한 표정으로 다들 나를 쳐다본다. 그럼 나는 '나 하나도 못 알아들었으니까 다시 한번 설명해 줄래?' 부탁하고. 다들 친절하게 웃으면서 '오, 쏘리 마이 디어' 하고는 영어로 요약해서 설명해 주시기는 하는데, 그래, 그러면 됐지 뭐, 하기에는 아무래도, 내가 못 알아들었을 그 말이 궁금하다. 혹시 '내가 들으면 안 될 말'이 있어서 현지어로 말한 건 아닐까?
하루는 나까지 총 다섯 명이 차를 타고 장거리 출장을 가는데, 나만 한국인이고 운전기사 포함 다 잠비아인 직장 동료들이었다. 출장지가 멀어서 차를 타고 이틀을 꼬박 달려야 도착하는 곳이었다. 차 안에 꼼짝없이 갇혀있으니 심심하기도 하고 할 것도 없으니 대화를 많이 하게 되는데, 영어로 할 때도 있지만 굳이 나를 향한 이야기가 아니면 현지어로 할 때가 많다. 나도 굳이 모든 이야기에 다 끼고 싶어 하는 적극적인 사람은 아니라, 현지어로 이야기할 때는 졸고 영어로 얘기할 때도 졸기도 하며 여유롭게 간다. 그래도, 내가 현지어를 할 줄 알든지 아니면 다들 영어가 공용어인 만큼 내가 이미 할 줄 아는 영어로 대화를 했으면 좀 더 서로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냥 가만히 듣다가 흥미로운 얘기가 나오면 대화에 끼어들 수도 있고. '내가 들을 필요가 있는 말'만 영어로 해주니까, 그 외의 말에서 나는 배제된다.
인원수가 비슷할 때는, 그리고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한 팀일 때는 별 느낌이 안 든다. 한국사람 다섯, 파키스탄 사람 다섯 이서 회의를 하는데, 한참 영어로 회의하다가 막간에 한국사람들끼리 잠시 한국어로 논의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파키스탄사람들도 우르두어로 논의를 하고, 서로 자기들끼리 할 말 다 끝나면 다시 영어로 회의를 이어가는데 자연스럽고 분위기도 좋다.
그런데 만약 나만 한국인이고 나머지는 다 파키스탄인으로 팀이 구성되어서 회의를 갔는데 상대방 사람들은 다 외국인이거나 혹은 한국인이라고 치자. 영어로 하다가 우리 팀 사람들이 우르두로 논의를 한다? 엄청 당황스럽다. 팀원들이 대놓고 나 빼고 논의를 하는 거니까. 나는 그럴 때 '다시 영어로 말해달라'는 정도로만 말하고 마는 편인데,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동료들은 조금 더 강하게, 내 앞에서는 영어만 써달라, 고 요청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였다. 국제대학원이어서 외국인 학생들이 있었고, 기숙사에 살아서 외국인과 생활도 함께 하고 있었다.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고, 공용공간에서는 영어를 쓰도록 되어있었지만 한국인들끼리 있으면 당연히 한국어가 편하니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쓰곤 했는데, 문제는 식당 등 공용공간에서 다수의 한국인(혹은 한국어 구사자)과 소수의 외국인(혹은 한국어 비 구사자)이 섞여 앉아 있어도 한국어를 쓰게 될 때가 많았다. 이로 인해 외국인과 한국인의 거리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하루는 외국인과 한국인이 섞여서 다 같이 아침을 먹는데, 한국인이 다수였고 또 한국사람들끼리 한국어로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대화중 그 자리에 있는 외국인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대화 내용 자체는 별게 아니었다고 해도, 자신이 알아듣지 못하는 내용에 자신의 이름이 들렸던 거다. 정말 예의가 아니고 잘못된 상황이었고, 게다가 이미 이전에도 계속 반복되었던 상황이라 그 이름이 언급된 사람을 포함해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외국인들이 화가 나서 자리를 떴다.
나중에 같은 학교의 다른 외국인 친구와 얘기를 하다가 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친구도 자신을 앞에 놓고 자기들끼리 한국어를 사용하는 상황이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공감했다. 자기도 영어가 유창하다고 해도 모국어가 아니라 아침에 눈뜨자마자 영어 쓰는 게 피곤하고 머리도 안 돌아가지만, 눈 앞의 사람을 소외시키거나 무시하지 않기 위해서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쓰는 거라고.
그 다수가 내 욕하려고 굳이 현지어로 말을 한 게 아니라는 건 안다. 내가 굳이 누구를 욕하려고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한국어를 쓰는 게 아니듯이. (가끔 성희롱이나 인종차별주의자 앞에서는 한국어로 욕이 나올 때가 있기도 하지만.)
한 번은 독일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독일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중 한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독일어로 전화를 받았다. 다른 친구들도 아는 사람에게 걸려온 전화였는지 잠시 독일인들 간의 독일어 대화시간이 있었는데, 신경이 쓰이지도 않을 정도로 잠시였지만 그 친구들은 바로 독일어를 써서 미안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다수가 하는 행동이 소수를 소외시키고 배제하는 행동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어서 나올 수 있는 행동이었고, 그래서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