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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 Aug 27. 2020

한국에서는 안/못했을 것들

낯선 외국에서 일하며 살며

외국에서 사는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경험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았을 것들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종종, 새삼 발견하게 된다.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싶다가도, 외국에서 이렇게 저렇게 살다가 한국에 돌아가면, 사는 모습이 다르긴 다르구나 싶은 것들이 있다.




특히 여름에 사소하지만 크게 다가오는 건, 땀 흘리는데 덜 민감해진다는 점이다. 나는 보이는 모습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이 아니라 옷도 대충 입고 다니고 화장도 거의 안 하고 머리 손질도 잘 안 하고 다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옷도 잘 차려입고 외모를 가꾸고 신경도 많이 쓰고, 무엇보다도 땀 흘리는걸 정말 극도로 싫어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나도 그렇다. 한국은, 최소 서울은, 여름에 땀 흘리는 걸 최소화하려면 할 수 있는 환경이다. 건물들은 물론 대중교통도 에어컨 빵빵 나오고, 대중교통망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어 이동할 때 목적지까지 걷는 걸 최소화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땀 흘리는 게 익숙하지도 않고 땀을 흘리면 너무 찝찝하고 빨리 집에 가서 씻고 싶고 옷 갈아입고 싶고 옷에 땀이 배어 나오는 게 신경 쓰이고 그렇다.

외국에서의 나는 땀 흘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다. 에어컨이 잘 되어 있는 곳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고,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지 않은 나라는 걷거나 운전을 해야 하는데 운전하기 애매해서 걸으면 그게 또 꽤 걷게 되고, 그러면 땀나고, 나처럼 걷고 있는 사람들은 다 땀 흘리고 있고, 그렇게 걸어서 어디 들어가도 에어컨 없는 곳 많아서 계속 땀나게 되고. 그래도 이상하게 신경이 덜 쓰이거나 아예 안 쓰인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는 기분으로, 그냥 흘리고 말지 뭘, 하게 된다. 옷에 땀이 배어 나오든 말든. 다들 그러고 다니기도 하고. 그게 꽤 자유롭다.




한국에서 살면서 별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안 했던 것도 있다. 그중 하나는 운전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서울에 살았는데, 서울은 대중교통이 워낙 잘 되어 있기도 하고 교통체증과 주차난이 심해서 운전을 하는 게 도리어 불편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도 서울 같은 도시만 벗어나면 차가 필요하겠지만. 개발도상국은 아무리 수도나 도시라도 대중교통이 불편한 곳이 많아서, 차가 없으면 택시를 타거나 걸어 다니게 되는 경우가 많다. 걸어 다니기엔 사람들이 자꾸 길에서 말을 시키기도 하고, 치안이 불안하기도 하고, 택시는 가격이 싸지도 않고 제시간에 오는 것도 아니고 길도 일일이 설명해 줘야 해서 차가 없으면 참 불편하다.


누가 운전을 해 준다고 하더라도 내가 직접 운전하지 않으면 기동성과 자율성, 심지어 주체성까지 떨어진다. 호주에서는 차가 있었지만 내가 운전하지 않았고, 잠비아에서는 애인이 자신의 차로 어디든 태워 주었지만 늘 어딘가를 갈 때 '나 혼자 스스로 직접'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 너무 답답했다. 해 질 녘에 입이 궁금한데 주전부리라도 좀 사 올까, 싶으면, 서울처럼 집 앞에 편의점이 있어서 걸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운전해서 쇼핑몰 가야 되는데, 혼자 가려면 택시 불러야 되고 왕복 택시비는 주전부리보다 더 비싸고. 애인이 차도 있고 운전도 해서 다행이긴 한데 애인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과자 못 먹는다. 아 주체성 떨어져.

면허는 20대 초반부터 있었다. 1종 보통. 심지어 갱신도 했다. 단지 장롱, 아니 지갑면허였을 뿐. 몇 번 운전을 시도하다가 겁도 나고 차를 구매하는 게 귀찮아서 그만뒀었는데, 이번 파키스탄에 파견 올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운전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며 한국에서 도로연수까지 받고 왔다. 파키스탄은 차 렌트비가 싼 편이라 차를 구매하는 대신 렌트를 해서, 지금은 운전을 하고 있다. 운전을 하니까, 정말, 너무 좋다. 주말 아침에, 무료하게 누워있다가, 시장이나 가볼까, 하며 운전해서 시장에 갔다가 오는 길에 갑자기, 저기 빵집에 들러볼까, 하는 생각이 들면 바로 운전대를 돌릴 수 있는 것. 내가 직접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것. 내가 원하면 즉시 방향을 틀 수 있다는 것. 없는 날개가 생긴 기분이다.



한국에서는 아직은 흔하지 않은 주거 형태인 플랫쉐어나 큰 주택 등에 살아보기도 했다. 선진국 도시에서는 집값이 비싸서, 개발도상국이나 시골에서는 집이 커서, 혼자 혹은 둘이 사는 사람들은 플랫쉐어나 하우스쉐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인건비가 저렴한 개도국에서는 가사도우미도 많이 쓰는 편이고. 마당이 있는 넓고 큰 집이 많고, 수영장이 있는 주택단지들도 꽤 많다. 내 계약조건으로는 다행히도 개발도상국에서의 렌트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고. 서울에서 같은 조건의 집이라면 감당할 수 없겠지만.

마당이 있고 집이 넓으니 집에서 하는 것들의 내용이 좀 달랐다.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다. 사람들을 초대해서 반으로 자른 드럼통에 숯을 채우고 불을 피워서 굽고 싶은 걸 아무거나 올려 구워 먹으면 된다, 집 마당에서. 규모가 남다르게 홈파티를 하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아주 큰 집에 사는 한 친구는 50명도 넘게 초대하고 DJ도 섭외하여 집을 클럽처럼 만들어 파티를 하기도 했다. 어떤 친구는 가재를 삶았으니 파티를 하자며 한 30명 정도를 초대하여 커다란 식탁에 둘러앉아 가재를 먹기도 하고. 굳이 큰 규모가 아니더라도, 여러 다른 무리의 사람을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등 집에서의 사교활동이 많았다.


그리고 '서양'식으로 지어진 집 부엌에는 대부분 오븐이 있다. 한국에서는 요리를 거의 하지 않는 나인데, 외국 살면서는 가끔 요리를 하고 베이킹도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빵을 사 먹을 줄이나 알지 빵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여기서는 맛있는 빵을 찾기도 힘들고 빵 종류가 별로 없기도 하고, 오븐 본 김에 써볼 겸 빵을 한 번 구워볼까 싶어 유*브를 보며 몇 개 따라 해 보니 빵이 나왔다! 스콘도 굽고 브라우니도 굽고 모닝빵도 굽고 슈크림빵도 만들고. 덕분에 빵 중의 빵은 갓 구운 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브라우니랑 크림류 빵 빼고). 새로운 재미이긴 한데, 한국에서는 베이킹을 지금처럼은 자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 집에 오븐이 없기도 하지만, 빵 중의 두 번째 빵은 남이 해 놓은 빵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한국에 있었다면 내가 여행으로라도 이 나라에 올 일이 있었을까, 싶다. 잠비아도 파키스탄도 오기 전까지는 내 관심사에 있던 지역이 아니었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있기는 하지만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니까. 와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곳이고, 찾아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찌 이렇게 인연이 닿아서 오게 되었고, 이 나라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서 더 알아가고 싶고 여기저기 구석구석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주변의 나라에도 관심이 생기고, 세계지리, 세계사, 국제관계 아무리 배워도 이 지역에 어떤 나라가 어떻게 있었는지 관계가 어땠는지 그렇게 안 외워지더니 한 번 살아보니 그 나라와 주변 지리, 역사, 국제관계 등도 대강 익혀지고.


잠비아에서는 유명한 빅토리아 폭포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숨어있는 폭포들을 찾아 캠핑도 자주 가고, 연휴와 휴가를 이용해 잔지바르, 나미비아, 말라위, 르완다, 남아공 등의 주변의 몇몇 지역들을 여행하기도 했다. 한국이었으면 이동하는 것 자체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겠지만, 잠비아에 있었으니까 가능했던 일이었다. 더해서, 잠비아에서 보낸 시간과 지식과 경험을 통해, 주변 나라를 여행하며 조금은 더 다면적이고 깊게 이해하고 느낄 수 있었다. 어떤 게 비슷하고 어떤 게 다른지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아프리카 대륙, 특히 남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이해가 훨씬 늘었다.


지금 살고 있는 파키스탄에서는 코로나19 때문에 국내나 주변국 여행이 어렵지만, 무슬림 사회와 문화 속에 살며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우루두어에도 흥미가 생겨, 정말 쉽지는 않지만 조금씩 배워보고 있고. 한국이었다면 내가 무슬림 문화와 우루두어에 흥미가 생길 일이 있었을까. 파키스탄에서 일을 하며, 오며 가며 조금씩 보고 듣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확실히 책이나 문서를 통해 배우는 것보다 빠르게 이 나라와 이 지역에 대해서 체감하고 습득하게 되는 것 같다.


외국에 있다고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만, 다른 환경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통해 많이 배우고, 많이 큰다.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용기를 조금 더 주기도 하고. 예전의 나보다 조금 더 넓고, 깊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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