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외국에서 일하며 살며
성인이 된 이후 1/3 이상을 외국에서 보내고 있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내가 나고 자란 곳이니만큼 자연스럽게 살아왔고, 외국에서는 이곳의 문화와 생활방식이 다른만큼 지나가는 외국인 1 정도로 살아오고 있다. 어디 있느냐에 따라 내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주변에서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외국에서 정신건강 챙기기 편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유달리 외국인에 시선을 많이 주는 나라들이 있다. 시선이라는 게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상당한 스트레스라 지속되어 쌓이다 보면 과민하게 의식하게 되는데, 사람들이 주변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람이나 연예인을 보고 '연예인병'에 걸렸다고 하듯이, '외국인병'에 걸리기 쉽다.
인도나 골목을 걸어가다가 누군가를 스쳐 지나갈 때 그 사람이 나에게 'hello'라고 하면, 나한테 인사를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내가 외국인이라고 인사한 건가' 싶다. 낯선 사람이 나를 부르면, 나한테 말을 걸었다는 생각이 안 들고 '내가 외국인이라 부르나' 한다. 마트에서 거스름돈을 받았는데 돈이 모자라면, '지금 내가 외국인이라고 거스름돈 적게 주나' 싶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분부터 나쁘다. 알고보니 길에서 인사하는 문화가 있는 곳이라거나, 내가 뭘 떨어뜨려서 주워주려고 불렀다거나, 우리나라처럼 거스름돈을 칼같이 주지 않고 반올림해서 더 주거나 덜 주는 게 이나라 관습이었다거나 하는 경우인 적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 모든 경우가 오해는 아니다. 외국인이라고 좋게 배려를 해주든 나쁜 쪽으로 차별을 하든 다르게 대할 때가 실제로 많으니까. 처음에는 편견 없이 반응했지만 안 좋은 경험이 쌓이다 보니 그러기가 쉽지 않다.
피해의식이기도 하고 노이로제이기도 하다. 잠비아에서는 사무실과 집을 자주 걸어 다녔는데, 말을 거는 사람도 많고 심지어 따라오는 사람도 종종 있어서 의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이라' 실제로 눈에 띄어서 내 집이 어디인지 노출되기도 쉽다 보니 누가 내 뒤에 걸어오면 '나 쫓아서 우리집 털러 오나' 싶어서 불안한 적도 많았고. 내가 일하는 기관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자주 입고 다녔는데, 문득 누가 이거 보고 내 사무실 알아내서 쫓아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한 적도 있었다. 지나치게 신경이 쓰이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그냥 차를 타고 다녔다.
잠비아에서 만난 한 친구도 비슷한 맥락의 고충을 토로해서 같이 공감했던 적이 있었다. 잠비아에 오래 살고 있는 외국인 친구였는데, 자기는 잠비아에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지고 이곳의 삶이 자신의 일상이 된 지 오래라고 해도 잠비아에서의 자신은 평생 외국인이라 계속 시선을 받는다며, 가끔씩은 자기가 걸어 다녀도 아무런 시선도 안 받는 곳에서의 휴식이 필요하다고. 오래 살아 그 나라에 익숙하다고 해도, 현지어를 구사한다고 해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의 외국인은 평생 그냥 외국인이다. 기껏해야 '아이구 잠비아 사람 다 됐네' 소리 정도 듣겠지.
외국인과 현지인이 같을 수 없고 같아야 할 이유도 필요도 논리도 없지만, 어쨌거나 같은 사람인데 지나치게 신기해하거나, 호기심을 가지거나, 불편해하거나, 불쾌해하거나, 경계하거나, 배재할 이유도 필요도 논리도 없지 않을까?
이렇게 외국에서 몇 년 제대로 '외국인' 취급을 받다가 한국에 오면, 이보다 자유로울 수가 없다. 누가 나를 쳐다보기는커녕 신경도 안 쓰다니! 너무 좋다..... 좋은데, 한국은 참 빨리 변한다, 일이년 만에도. 한국이 변한건지 내가 변한건지. 한국에서는 같은 맥락이지만 다른 방향으로 '외국인병'에 걸린다.
잠시 떠나있던 한국의 유행과 변화한 문화를 못 따라간다. 내가 없던 사이 새롭게 생긴 것들이 많아 새롭기도 하고, 특히 서울에서는, 약간 서울 온 시골쥐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지하철도 있어, 버스도 있어, 편의점/배달음식 24시간에, 밤새 열려있는 술집에 카페에, 가게들이 촘촘히 주욱 늘어서 있는 거리에, 모든 것이 빠르고 편리하고. 그러다 보니, 약간 사람이 좀 촌스러워지거나 좀 으르신 같거나 혹은 너무 저세상 감성인 나머지..... 힙해지기도 한다. 좀 어리바리해지기도 하고 느긋해지기도 하고 신기해하기도 하고. 마치 외국 온 것처럼.
평생 쓰던 한국말이라도 갓 돌아온 직후에는,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다. 각자 다른 나라로 파견 나갔던 직장동료들과 1년 뒤 재교육에서 다시 만났는데, 다들 서로 한국말을 유창하게 못 알아들어서 서로 자꾸 계속 네? 네? 이러고 있었다. 한국말을 너무 오랜만에 들어서 그런지, 귀에 들리는 소리를 뇌에서 뜻으로 바꾸는데 버퍼링이 걸렸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영어가 더 잘 들린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뭐 하나만이라도 좀 잘 들렸으면.....
여기에 더해서 한국어로 단어가 갑자기 생각이 안 나서 음- 하거나 영어단어로 말한다, 이러면 슬슬 '아 재수없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영어 발음을 굴리고 굴린 줄도 모르면, 괜히 욕도 먹는다. 한 번은 친구랑 가다가 편의점 CU를 보고 씨유 가자,라고 했는데 친구가 외국인인 줄, 이라며 놀렸는데, 의식한 게 아니라서 이게 어떻게 한국 발음이랑 달랐나 싶어 몇 번 씨유, 씨유, 해봤다. 물론 내 영어 발음은 여기저기 다 섞여 아주 국제적이다. 이렇게 0개 국어로 수렴.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어렸던 시절에는 여름방학, 겨울방학 때마다 부산 외갓집에 갔다. 부산에 딱 내려가면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숙모, 사촌들이 '서울깍쟁이 왔네~' 하며 강렬한 부산 사투리로 호탕하게 맞아주었다. 부산은 아이들을 조금 더 강하게(?) 키우는 느낌이었다. 내가 뭔가 조금 불편해하거나 머뭇거리면, '서울 아가씨라 그렇다'며 배려도 해주고. 그렇게 즐겁게 한두달 지내다가 적응될 때쯤 다시 서울에 돌아와 학교에 가서 방학 동안 못 본 친구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면, 친구들도 반갑게 맞아주면서 말했다. '너 사투리 쓴다!'
지금의 나는 서울도 부산도 모두 섞여있다. 서울사람 눈에는 내 고향이 부산인 줄 알 정도로 '부산사람'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부산 가면 나는 여전히 '서울깍쟁이'다. 계속해서, 여기저기에 살면서 내가 머물렀던 모든 곳의 모든 경험이 다 섞여서 나를 키워가고 만들어간다. 그래서 '아이구 여기 사람 다 됐네' 소리가 기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내가 이곳에 이만큼이나 속해있구나, 하지만 여기까지구나, 싶어서. 그래도, 그만큼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더욱 확장되고 넓어지고 있다는 점만큼은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