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병은 서서 생각한다
휴가를 나와 대학 동기 중 한 명이 오랫동안 불우이웃 정기후원을 실천하고 있다는 소식을 어디선가 들었다. 나는 갑자기 고등학교 때 봉사활동 겸 스펙 쌓기의 일환으로, NGO에서 후원자-어린이 편지 번역 활동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오랜만에 그 홈페이지에 접속해봤다. 여전히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이 후원을 필요로 하고 있었고, 후원을 독려하기 위해 아이들의 이름과 사진을 매대에 진열해놓듯 올려놓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렇게 해서 후원금이 모여 그들의 여건이 나아진다면야 나의 불편함 쯤은 고려할 것이 못 된다. 잠깐 동안 후원을 고민했지만 매달 2만 원의 용돈을 받던 고등학생이 그랬듯, 여전히 20만 원의 월급을 받는 지금도 그들의 구원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 휴가 마지막 날이 됐다. 나는 집에서 농땡이를 피우다 기차표를 늦게 예매해서 원하던 시간대보다 일찍 oo역에 도착했다. 점심을 늦게 먹었기 때문에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복귀 전에 싸이버거를 먹어야 한다는 강박에 나는 법칙처럼 맘스터치로 향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모자를 벗고 방금 나온 뜨거운 싸이버거를 먹으려던 참이었다. 처음 와본 역사 근처의 맘스터치였고 특별한 점은 처음이라는 것, 그게 다였다. 예전에는 복귀 날이 세상의 마지막 날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나도 여유가 생겼다. 평소처럼, 안에서 잘 먹지 못하는 음식을 마지막으로 먹고 천천히 지하철을 타고 복귀하면 되는 일상 중의 일상을 앞두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싸이버거를 반쯤 먹었을 때 창밖에는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의, 아니 노년의 남자가 유난히 느린 걸음걸이로 핼쑥한 인상을 풍기며 걸어갔다. 배가 불러서 그다지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 싸이버거를 한입 크게 베어 무는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
그리고 나는 재빨리 눈을 피했다. 찰나였지만 그의 차림새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낀 나는 햄버거가 준비되었음을 알리는 진동벨에 반응하듯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내 그는 길가의 음식물 쓰레기통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을 때, 그는 주변을 살피고는 뚜껑을 열었다. 나는 맛없는 버거를 먹으며 아무래도 남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백주대낮에 길가의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졌다. 나는 이런 상황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싸이버거는 이미 반쯤 먹어 드릴 수 없으니, 손댄 티가 나지 않는 감자튀김을 드려야 하나'
부끄러운 고민이었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어린이 후원을 망설이다 포기했듯 나는 뛰어나가 감자튀김을 드리는 일을 단념했다. 나는 어느 경우에도 행동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두 경험이 공유하는 것이 있다면 오지에서 굶고 있는 어린아이 사진을 보았을 때, 그리고 그 이름 모를 노년의 존엄이 음식 썩은 내와 함께 허공으로 날아가려 할 때, 나는 내가 속한 세계의 경계를 뼈저리게 느꼈다는 점이다. 나의 세계는 배가 고플 때 5,400원 하는 싸이버거 세트를 사 먹을 수 있는 사람들 위주로 채워져 있었다. 홈페이지 속의 아이들을 향한 흐릿한 연민이 나의 가정과 국가의 존재를 느끼게 했다면, 그 이름 모를 노년이 주었던 죄책감은 일상에서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우연한 행운들을 드러냈다.
부대로 복귀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던 적은 없지만, 오늘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