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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때그대 Jan 09. 2021

#14. 안추운데 추우니까

 제주에 한파주의보 문자 알람이 울렸다.

 영상 2도인데 한파를 주의하라니. 나 아주 멀리 와 있는 것 같다. 오늘 서울은 영하 17도라던데 여기는 서울보다 거의 20도 따뜻한 남쪽나라.


 아이들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거실 티비를 켰다. 엄마는 일 해야하니까 자고 있으면 끝나고 이 자리로 온다고 약속했다. 아이들 베개 사이가 좁아 다 펼쳐지지도 않는 내 베개. 바로 그 자리로 가야한다. 침대 두 개를 붙여 놓았는데 왜 한 침대에서 붙어 자야 하는 걸까.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던 밤, 아이들 재우다 함께 잠이 들 것 같아 미국 엄마처럼 굿나잇 키스를 하고 빠져나온 날이 있다. 엄마 오늘 바빠, 하고 슬픈 표정을 지으니 '엄마, 화이팅!' 해서 살짝 감동했었다. 둘이 속닥거리더니 금새 조용히 잠 들더라. 세상에.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빨리 커라, 주문 할 때는 안 크더니 나 모르게 훌쩍 커서 이렇게 놀래킨다.

 그 후부터 미안하지만 일은 없어도 밤 시간 고요를 혼자 즐기고 싶은 날, 엄마 바빠, 한다.

 오늘 밤에 바쁜 일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일이 있지.


 티비 볼륨을 낮게 하고 보리차를 끓여 쇼파에 앉았다. 여행지 골목에서 버스킹으로 위로를 전하는 프로그램을 틀어 두었다. 혼자가 아니면 볼 수 없는 나의 최애 프로그램. 3초에 한번씩 엄마를 불러대는 아이들은 음악이 아니라 엄마가 위로이고, 남편은 나와 낭만 코드가 다르다. 남편은 내일 오고 아이들은 잠 든 시간 너무 소중하다.

 신청곡 아닌 신청곡을 배경으로 눈은 핸드폰을 보고 있다. 발가락이 즐겁게 까딱 거리고 손가락은 신중하게 움직인다.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무도 관심없겠지.


 어째 돈 버는 일 보다 돈을 쓰는 일에 더 집중하게 되는가. 냉동 조리식품을 고르고 주문하는 일 말이다. 한 여름 제주에 들어와 주문한 냉동생지는 도로 반죽이 된 채 받았고 손질된 생선은 압축포장이 살짝 떴나 싶더니 내가 아는 그 맛이 아니었다.

 나는 제주가 추워지기를 기다렸다. 오늘부터 4일 동안 낮은 기온이 예보되어 있다. 기본 배송이 3-4일 걸리고, 늦으면 일주일도 각오해야 하는 동네지만 나는 기쁘게 기다릴 수 있다.

 나만의 노하우라면 국물 요리를 넉넉히 주문하는 것이다. 아이스팩이 적당히 채워져 오지만 곰탕이나 갈비탕을 함께 주문하면 얘네들이 냉매가 되어 다른 친구들의 냉기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친구처럼 기다려진다니까.

 누군가에게는 간단하지만 내가 하면 뭔가 아쉬운 감바스. 일인분으로 포장되어 오는 걸 쟁여두었다가 내가 재료를 더해 덜 맵게 조리하면 아이들과 같이 먹기 좋은 요리가 된다. LA갈비는 넉넉히. 부산 어머니표를 제일 좋아하지만 매번 부탁할 수가 없으니 이럴 때 사두어야 한다. 어린이 식단에 입맛이 슴슴해지면 홀로 끓여 곁들이는 육개장.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떡 간식도 여러가지 골라본다. 오색 꿀떡이랑 미니 인절미. 요즘은 소분 포장을 잘 해주어 두고 먹기에 알맞다. 찰순대도 한 팩 추가. 야식으로 먹거나 곰탕 베이스에 넣어 순대국처럼 끓여주어도 좋아한다. 나의 사랑, 너의 사랑 떡볶이를 빠뜨리면 안되지. 서울에 두고(?) 온 떡볶이 친구가 애들 재우고 혼자라도 먹으라고 보내주었던 키트가 내 입맞에 딱이다. 내 껀 2단계 매운 맛, 아이들껀 짜장 1단계. 마지막으로 동네 마트에서 팔지 않는 주전부리를 담으면 끝이다.


 삼시세끼에 틈틈히 아이들 간식까지 챙기는 일이 나는 여전히 어렵다. 더욱이 아직 서울물(?)이 덜 빠져서 그런가. 있을 건 다 있어도 내가 찾는 것은 없는 동네 마트에 무척 섭섭하다. 요리를 대충 가르쳐 준 아니 해 준 엄마가 야속하고, 내 모자란 요리력을 너무 드러나게 한 코로나19가 제일 나쁘다.

 나쁜 것으로부터 조금 멀리 도망왔지만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온라인 엄마들에게 요리를 배운다. 제철 요리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탓에 재료비의 효율이 가늠이 안되어 지출이 널을 뛴다. 살림을 대충한 줄 알았던 우리 엄마도 실은 메뉴를 정하고 시장에서 식재료를 고르고 밤에 가계부를 쓸 때까지 매일을 이렇게 고민 했겠구나. 내가 엄마의 밥 만으로 큰 게 아니었듯이 아이 밥상에 너무 매달리지 않아도 괜찮을까.


 제주에 온다 하니 나를 보는 시선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용감하다, 대단하다, 잘했다, 타이밍 굿이다, 같은 엄지척과 응원의 말. 다른 하나는 혼자? 언제까지? 과연? ... 멋지다, 잘지내, 비슷하게 응원으로 마무리되지만 남편이랑 안좋아서 별거하나? 애들을 놀린다고? 쿨한 척하네, 하는 비웃음 섞인 뒤끝이 있다. 물론 내 귀로 들은 말은 아니지만 눈빛, 목소리, 억양, 어깨와 손끝의 움직임도 언어다.

 열에 하나가 하는 말에 상처받을 필요있겠냐마는 열흘에 하루쯤 불쑥 생각나 신경질이 난다. 특히 오늘처럼 내 약점을 보는 날이면 더욱 그렇다. 삐딱한 그네들은 제주까지 가서 밀키트 배송해 먹을 거면 왜 갔냐, 할 것 같은 거다.

 제주오기로 하고 사람들과 안부 전하면서 내 편 아닌 사람을 알아 봤다. 돌아보면 나 좋은 일에 늘 안어울리는 농담으로 나를 웃긴 사람이다. 그게 나를 돌려 까는 줄도 모르고 웃었던 그 때의 내가 두고두고 한심하다.


 나쁘고, 바쁘고, 너무 추운(마음까지 차가운) 곳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동안 나를 흔드는 말에도 멀어지면 좋겠다. 누군가 나를 미워해도 큰 일 나는 것도 아닐텐데 자기비하로 흘러 감정을 허비하지는 말아야지.

 내가 뭐 해 먹고 사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을껄.

 마지막 한 봉지 남은 매운 2단계 떡볶이를 끓였다. 많이 맵지 않은 보통맛이라 남편은 시시하겠지만 그래서 나는 오로지 내 것 같아 좋다. 쫄깃한 떡을 씹으면서 장바구니를 살폈다. 다시 한번 찬찬히 잘 담겼는지 체크하고 결제까지 완료.

 떡복이는 참 맛있는데 수다 떨 네가 없어서 아쉽네.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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