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하늘은 순수하다. 가을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에 있는 조그만 얼룩도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 화창한 일요일 오후, 한양도성 순성길에 오르며 가을하늘이 주는 맑고 깨끗함을 제대로 선물 받은 느낌이다.
한양도성은 조선 시대 한양의 도심을 둘러싼 도성으로 북악산, 낙산, 목멱산(남산), 인왕산 능선을 따라 축조되어 길이가 약 18.6km에 이른다. 이번 코스는 목멱산 구간이다. 장충체육관에서 출발해서 백범광장까지 약 4.2km 구간이다. 이 구간을 도보로 걸으면 약 3시간이 소요된다.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5번 출구로 나가서 장충체육관을 조금만 지나면 목멱산 순성길의 출발지점에 닿을 수 있다. 약간 가파른 오르막길을 시작으로 순성을 시작한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오른쪽에는 성곽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서울 구도심의 정취가 난다. 약 200m 걸었으려나... 조그만 문을 통과하니 아프팔트 포장길 대신 자연과 더욱 가까워진 길이 나왔다. 그 길을 따라 가을 하늘과 함께 걷다 보니 신라호텔, 반얀트리 클럽, 한국자유총연맹을 지나 장충단로와 만난다.
국립극장에 잠깐 들러 목을 축이면서 1차 목적지인 남산 N서울타워를 올려 보았다. 가을 하늘이 만들어낸 구름과 어울린 타워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제 본격적으로 목멱산으로 들어간다. 지정된 차량만 지날 수 있는 남산공원길을 조금 올라가다 보면 정상까지 가는 지름길이 나온다. 지금까지 걸었던 것보다 더 가파른 오르막길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계단으로 길이 잘 다듬어져 있고 서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점이 곳곳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인지 기대감으로 힘들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역시 기대한 것처럼 서울은 정말 훌륭한 광경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가을이 주는 황홀함으로 순식간에 남산 N서울타워에 도착했다. 잠시 도로변에 걸터앉아 지나가는 사람들과 하늘을 번갈아 보았다. 내가 사는 서울에 이런 훌륭한 곳이 있었다는 것을 잊고 살았던 게 약간은 후회가 됐다.
이제 하산길. 버스를 타고 내려가려다 그냥 걷기로 했다. 남산을 거의 다 내려갈 즈음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백범광장으로 발길을 향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부근에 한양도성 유적 전시관이 있었지만, 폐장 무렵이어서 아쉬움만 남긴 채 기념관을 둘러보는 것에만 만족해야 했다. 기념관을 지나서 있는 백범광장에는 몇몇 사람들이 캠핑 의자에 가을을 만끽하고 있었다. 나도 잠시 머물며 주변의 경치를 한 번 더 느끼기로 했다.
숭례문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에 강아지풀과 어우러진 도심의 풍경이 순성길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순성길을 돌아보니 남산 N서울타워 주변에서 봤던 사진 3장이 생각난다. 사진의 주제는 《속도를 늦추면 보이는 것들》이다. 사진은 시속 60km/h, 40km/h, 20km/h에서 보이는 모습이다. 사실, 국립극장에서 남산 N서울타워는 출장 갈 때마다 차로 휑하고 올라가면서 제대로 남산을 느끼지 못했었다. 오늘에서야 걸으면서, 속도를 늦추니 자연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훌륭한 곳이 있었다니’. 정말 감탄스럽다.
집에 오면서 남산N서울타워를 다시 보니 조명 빛깔이 파란색이다. 오늘 초미세먼지 농도는 '좋음'이었구나.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