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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라 Oct 17. 2024

내가 뭐가 되고 싶었더라

찰떡 직업을 찾는 모험 ep.8

첫 번째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고 백수가 되었을 때 니트 컴퍼니에 참여했었다.

무업 청년들을 위한 가상 회사로, 일이 없을 때에도 사회에 계속 나와 있을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들을 도와주는 곳이다.

여기서 니트 인베스트먼트라는 프리랜서를 도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는데, 프로그램 초반에 지금까지의 자기의 직업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다.



1. 가수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가 되고 싶었던, 혹은 선택했던 직업을 정리해 봤다.

아주 어렸을 때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서 TV에 나오는 가수들을 동경했던 것 같다.

하지만 커가면서 나는 너무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이 내 노래를 좋아해주는 건 좋은데 내 얼굴을 알리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는 노래를 취미로서 좋아하는 거지 일이 될 만큼 사랑하지는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성인이 된 후 아직도 노래 모임 등에 참여하면서 버스킹과 공연을 하고 있는데, 예전에 노래에 대한 의욕이 넘치는 멤버들을 만나 실제 앨범을 내보자는 논의를 한 적이 있었다.

직업이 된다고 생각하니 노래를 하다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보이면 너무 신경이 쓰였고, 나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의기소침해졌다.

노래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나의 소중한 취미로 남기기로 했다.



2. 의사

조금 더 크고 나서는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뭔가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이때쯤에는 학교에서 꿈을 물어볼 때 부모가 원하는 직업을 말하는 아이들이 생겨났기 때문에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점점 더 자라나면서 수술을 하기가 무서웠고, 무엇보다 의대에 가기 위해 해야 하는 엄청난 양의 공부를 따라갈 자신이 없었다(아쉽게도 나는 좋아하는 과목만 잘하는 그런 학생이었다..흑).



3. 심리상담사

고등학생 때부터는 딱히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이 직업을 하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상상은 했지만, 꼭 하고 싶은 일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 전공을 고를 때 고민을 많이 했는데, 한 선생님과 가볍게 진로에 대해 얘기하다가 선생님이 내 관심사나 성향이 심리학과와 잘 맞을 것 같다고 추천해 주셨다.

그때는 호기심에 심리학 전공을 선택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생님의 촉이 아주 좋으셨던 것 같다.

지금은 상담사로 일하고 있지 않지만,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심리학 공부는 늘 흥미로웠다.


상담사를 그만둔 이유 중 다양한 사람과의 관계를 맺어야 하는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다른 하나가 더 있었다.

내담자분들의 상담 결과가 긍정적일 때 비밀 유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디에 자랑을 할 수 없었다.

보람찬 일이었지만 나도, 다른 사람들도 눈으로 볼 수 있는 결과물이 될 수는 없었기에 부족함을 느꼈던 것 같다.



4. 서비스 기획자

내가 열심히 만든 결과물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직업을 찾고 싶다는 욕망은 나를 IT 산업으로 이끌었다.

물론 디자인은 디자이너, 실제 서비스 제작은 개발자 분들이 하시지만, 최종 설계를 하는 건 기획자였기 때문에 결과물을 볼 때마다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어떤 서비스를 만들지, 어떤 부분을 개선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게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답이 나오면 희열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전에도 얘기했듯이 기획자는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해야 하고, PM까지 맡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 중간에서 새우 등 터지듯 얻어 터지는 경우가 많았다.

적성에 맞았다면 연차가 쌓일수록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계속 했다가는 번 돈을 모두 병원비로 써야 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내가 되고 싶었던, 선택했던 직업들을 정리하다가 공통점을 발견했다.

나는 생각보다 관심 받기를 좋아한다는 걸 눈치챘다.

연예인처럼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는 바라지 않지만, 사람들이 내 작업물을 보고 좋아하고 팬심을 얻는 것을 원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작업물이 누군가의 강요로 만든 게 아닌 내 의지로 만든 작업물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나중에 커서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평화로운 곳에서 글을 쓰며 지내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때는 누구나 원하는 막연한 꿈 같은 일상이겠지 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내가 살고 싶은 삶을 꽤 예리하게 파악했던 것 같다.

엄청난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면 돈 벌어먹고 살기 힘들다는 예술가 유형이 나였다니.

씁쓸하면서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찾은 것 같아 속이 조금 후련하기도 했다.






찰떡 직업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강아지 멍순이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www.instagram.com/illam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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