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떡 직업을 찾는 모험 ep.7
전공이 심리학이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몸에서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나는 신체화 증상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신체화에 대해 배울 때쯤엔 스트레스받으면 위가 쓰리고 두통이 오는 정도라(이것도 심했을 수 있지만) 같은 전공 동기들과 또 신체화가 왔나 보다고 농담을 던졌던 게 기억난다.
처음에는 위염, 두통으로 찾아오던 스트레스는 몇 년에 걸쳐 쌓인 후에는 이유 모를 몸 곳곳의 통증을 유발했다.
처음 다니던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20년은 넘게 해오신 우리 팀 상사가 이런 빌런은 10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정도의 빌런이라고 일컬은 고객사를 만난 적이 있었다.
내가 프로젝트 매니저였기 때문에 도망칠 수 없어서 어떻게든 고객사에 대응하며 해당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어갈 즘 갑자기 복통이 심해지더니 진통제를 먹어도 낫지 않았다.
병원에 가니 별다른 원인은 없는 것으로 보아 스트레스가 원인일 테니 쉬라는 말밖에 듣지 못했다.
세 달을 넘게 원인 모를 통증에 시달리다가 겨우 나아진 적이 있었다.
그 뒤 이직한 회사에서 만난 상사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비난을 듣다 보니 그때 느꼈던 통증이 다시 느껴졌다.
‘좀 견디면 괜찮아질지도 몰라’라며 나를 달래봤지만, 두 달이 넘게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통증이 지속되니 일상에 집중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병원에 가면 쉬라고 하는데 쉴 수 없는 현실에 화가 치밀었다.
이직을 하고 나서 퇴사를 말하려고 했는데, 그전에 내가 정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아파질 것 같아서 퇴사를 결심했다.
누군가는 그래도 이직을 결정한 뒤에 퇴사를 하는 게 나았을 거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 나에게는 내 커리어보다 나를 살려내는 게 더 중요했다.
이렇게 얘기하면 마치 내가 커리어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처럼 들리지만, 몸이 아픈 걸 견디고 있을 때 여러 고민을 했다.
우선 기획이란 일이 정말 나에게 맞는 일인지 신중하게 고민했다.
기획을 하며 깨달은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면모에 대해 메모해 보니 나의 답은 이러했다.
<기획에 대한 긍정적인 면>
- 창의적인 일에 흥미를 느낀다
- 고객과 소통하며 그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일에 열정을 느낀다
- 뭔가를 더 나은 상태로 개선하는 일을 좋아한다
<기획에 대한 부정적인 면>
- 고객 및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 나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기획보단 고객 혹은 상사가 원하는 기획을 해야 한다
- 내가 기획한 상품이더라도 회사의 것이지 내 것은 아니다
정리하다 보니 내가 생각보다 창의적인 일을 좋아했고, 회사에서 하는 기획 일은 창의적이면서도 수동적인 업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 부분들이 일하기 나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을 것 같았다.
나는 고객 및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는 것으로부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여기까지 정리하고 나니 기획을 하기 전 내가 선택했던 직업도 분석해 보고 싶어졌다.
나는 기획을 하기 전에 심리학을 전공한 후 상담심리사로 일하고 있었다.
상담심리사는 내 적성에 꽤 잘 맞았다.
공감 능력이 높아 내담자들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소통 능력이 좋은 편이라 그분들과 신뢰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되었다.
상담을 하며 내담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신뢰 관계가 맺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꼈다.
그때는 아직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경험이 부족하여 그렇다고 생각했다.
사회 경험이 늘면서 남들처럼 이런 압박감과 스트레스 정도는 이겨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사회 경험이 늘어날수록 나는 점점 더 몸도 마음도 아파졌다.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되었다.
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 잘 안 맞는다는 것을.
공감 능력과 소통 능력이 있다 해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의 취약성도 높았다.
아웃사이더처럼 보이는 게 싫었고, 나도 남들처럼 사회의 한 일원으로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기에 그동안 나도 모르게 외면했던 나의 진짜 모습을 드디어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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