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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설공주 Dec 28. 2021

오거스트 윌슨 - 우리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이제 뭘 하지?

오거스트 윌슨은 미국의 극작가이다.

위대한 글쟁이들은 대체로 시로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도 시로 시작해서 극본으로 나아간, 셰익스피어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공연되듯이 그의 작품이 전 세계에서 공연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유명하진 않다 하는데 그 이유가 미국 흑인의 정체성과 관련된 작품들이어서가 아닐까 한다.

 

"오거스트 윌슨 독백 대회"라는 대회가 있다. 뭔 독백을 갖고 대회까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  2018년, 참가하는 학생들은 오거스트 윌슨의 작품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원작의 한 부분을 독백하는 대회이다. 지역 예선을 거쳐서 뉴욕의 브로드웨이, 오거스트 윌슨 극장에서 전국 대회의 대미까지 보여준다.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회인 것 같은데, 처음 참여하는 학생이 대부분 이지만 두 번, 세 번 참여하는 학생들도 상당수 있었다.

형제자매가 사립학교를 다니고, 학교 전체에서 흑인은 오직 자신 만인 학생이 있는가 하면,  근래에 형을 거리에서 잃은 대표적인 슬럼가 출신까지. 개인 트레이너의 지도와 온 가족이 함께 하는 학생도 있고, 태어나서 이제껏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보지 못한 학생도 있다.

그토록 다른 수많은 십 대의 청소년들이 오직 한 가지, 연극 속에서 자신을 찾고, 자신이 발견된 그 순간의 그 묘한 세계를 향해 한 길로 걸어가겠다는 장한 꿈을 안고 눈을 반짝였다. 가족의 반대와 냉소, 스스로의 불안과 망설임, 초조함을 어찌하지 못하면서도, 그 길에 서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모든 극의 배경이 흑인 사회와 정체성을 다루었기에 그렇겠지만 마지막 뉴욕 결선의 참가자들 가운데 백인과 히스패닉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중간중간 오거스트 윌슨의 작품을 통해서 발견된 오늘 미국의 보석들인 몇몇 연기자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충고를 이야기한다. 연기를 하지 말라고, 기억하겠다고, 일으켜 주겠다고, 정상은 없다고, 상을 받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의의가 있다고, 우승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그 상을 쥔 순간 떠 오른 세 유명한 단어가 평생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이제 뭘 하지?'


놀랍게도, 2017년 최고상은 단 한명이었던 히스패닉계의 학생이었다. 수년전에 작고한 조부의 웃도리를 입고서 연기했다. 법정에서는 유죄를 받았지만 자신의 존엄을 위한 행위에 자신은 무죄라고 강변하는 연기였다. 판정하는 분들 대단하다. 개중에 꼭 일등 상을 받았으면 학생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니지만 다음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그는 말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연기를 일러서 '날 것'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이 극복되어야 한다, 고 그 누가 조리되지 않은 음식을 좋아하겠느냐고.

어떤 모습으로 자신의 길을 찾았든지 그 학생들은 선택받은 젊은이들이다. 그럼에도 그 도상에서 그들이 만나는 것은 큰길이 아니다. 열린 문을 바라보고 왔는데 바로 내 앞에서 닫힌 것만 같을 때가 숱할 것이다. 그렇기에 맨처음 그 길을 만났을때 그 놀라움을 간직하라고, 그 순간을 꼭 기억하라고, 인생 조금 더 산 선배로서 말해주고 싶다.


윌슨을 소개하는 상찬들은 다 옮길 수가 없지만, 2010년에 세상을 떠난 이 작가의, 2004년 하워드 대학교 명예박사 수락 연설은 단연 이 기록물의 백미이기에 그대로 옮겨 보겠다.

 

나는 내 조부님를 대신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I' m standing here in my grandfather's shoes. They are large shoes. 조부님만이 아니죠. 모든 세대의 남성을 대신하여 이 자리에 섰습니다. 남부의 말할 수 없는 공포로부터 삶의 터전을 떠나 북부로 와서 일자리를 찾고 존엄성 있게 살 방법을, 마음이 원하는 삶을 살 방법을 찾았습니다. They are the shoes of a whole generation of men who left a life of unspeakable horror in the South and came nouth, searching for jobs, and a way to live life with dignity and whatever dioquence the heart can call upon,


그들은 조지아의 목화밭에서 왔고, 아칸소, 미시시피에서 왔고, 앨라배마의 강제 노역장에서 왔고, 루이지애나의 사탕수수밭에서 왔습니다.

They came from the cotton fields of Georgia and Arkansas and Mississippi, from thes chain gangs of Alabama, from the came fields of Louisiana, and 제 조부님의 경우에는 노스캐롤라이나의 담배밭이었죠 in my grandfather's case, from the tobacco fields of North Carolina.

그들은 성경과 기타를 들고 왔습니다. They came carrying bibles and guitars. 쫓기던 몸이던 그들은 자신에게서 바꿀 수 있는 부분을 변형하고 다듬어 새로운 정체성을 찾고자 했죠. Marked men seeking a way of bludgeoning and shaping the malleable parts of themselves 확고하고 진실한 가치를 가진 자유민으로서 말입니다. into a new iodentity as free men of definite and sincere worth. 그들의 기질과 감성에 부합하는 것이었죠. 그들은 관습과 삶의 방식을 가져왔습니다. They brought with them manners and a way of life that corresponded to their temperanent and sensibilities. . 이러한 사회적 교류와 관습과 관례의 영역이 바로 제 예술의 바탕입니다. And it is this field of manners and rituals of social intercourse, out of which I make my art.

감사합니다. I thank you

저의 조부님도 고마워하실 겁니다. My grandfather thanks you.

저를 예우하는 건 조부님을 예우하는 것이고 곧 여러분 자신을 예우하는 것이죠. By honoring me, you honor him. And by virtue of that, you honor yourselves.


하워드 대학교는 미국 흑인사회가 처음 세운 대학교이다. 백인에게 하버드가 있다면 흑인에게 하워드가 있다고 해야겠다. 하버드는 오거스트 윌슨에게 명예박사를 수여하지 않아서 하버드의 수준이 한 단계 내려 갔다. 이 기록의 모두에서도 울려 퍼졌지만, 연설을 읽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중후 장대의 진지함, 오래고 깊은 사색과 성찰의 무게가 천근만 같다.

그의 빠르지 않은, 낮은 목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몇몇 출연 학생들의 6개월여가 지난 모습을 보여준다. 대체로 대학에 진학을 했고, 연극 연기 전공이 많기는 하지만 다른 길의 선택도 있었다. 한 청년은 계약을 맺고 가수로 데뷔할 준비도 하고 있었다.

그 젊은이들, 그들은 오거스트 윌슨이 잊어서는 안된다고 했던, 흑인의 굴레를 벗어나려 그 어떤 고통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들의 조상, 고조부, 증조부, 조부들이 시작했던 걸음 덕분에 '말로도 표현못할 공포'로부터 벗어난 새 세대들이다. 물론 아직도 인종차별은 여전하다. 이는 또한 인류의 본성이기에 어쩌면 인류의 소멸에까지도 함께할런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윌슨의, 시대를 담아낸 걸작들은 위대한 유산이다. 작가는  글로 말한다. 그는 간암 판정을 받은 후에도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조수와 함께 마지막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윌슨의 사후에 시작된 이 독백 대회에서 자신을 길을 찾는 젊은이들과 작가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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