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카톡이 힘들까

어느 카톡허약이의 이야기

by 이소머

주변에 꼭 한 명쯤은 그런 사람 있지 않나요? 카톡 메시지 보내면 다음 날 답장 오는 사람이요. 네, 그게 바로 접니다. 제가 카톡을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 대표로 사과드리겠습니다. 꾸벅.


출처: 카카오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고요

저는 카톡이 참 힘듭니다(카카오 브런치 눈감아). 아니, 카톡 그 자체보다는 카톡 메시지에 답장하는 행위가 힘들어요. 더 자세히 말하면 자주 만나지 않는 지인과 카톡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편입니다.


제가 카톡을 귀찮아하고 싶어서 귀찮아하는 건 아니에요. 이건 그냥 타고난 성향인 것 같습니다. 업무상 하는 카톡은 빠르게 답장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외의 메시지들은 잠시 묵혀둡니다. 저에게는 카톡에 쓸 수 있는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는데, 업무 카톡만 해도 이미 오버해서 사용해버리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변명을 해봅니다.


밀린 숙제 같은 카톡

어떤 사람들은 카톡을 정말 가볍게 생각하고 아무런 부담을 가지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저는 그게 참 부럽습니다. 저에게는 카톡에 뜬 빨간 1들이 쳐내야 할 숙제처럼 느껴져요.


특히 오랫동안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런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납니다. 오랜만에 온 연락은 참 반가워서 초반에는 열심히 답장하지만 점점 루즈해집니다. 공백이 긴 관계인 경우 카톡으로만 이야기를 나누면 처음부터 다시 친해져야 하는 느낌이에요. 내향적인 사람에게 있어서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과정은 좋든 싫든 에너지가 크게 소요되기 마련입니다. 이건 절친 지인 가리지 않고 발현되는 증상입니다.


그렇지만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습니다. 우선 이미 평소에 자주 만나기 때문에 다시 친해질 필요가 없고요. 만나서 하던 얘기의 가락이 있으니까 그걸 그냥 이어가기만 하면 돼서 덜 피로하기 때문이겠죠?

이러다 친구가 다 없어져도 괜찮을까

친한 친구들은 가끔 이런 저를 서운해합니다. 연락이 빠르지 않아서요. 그래도 제가 이 친구들과 계속 잘 지낼 수 있는 건, 친구들이 제 성향을 이해해준 덕분이에요. 친구들은 제가 카톡을 힘들어하는 걸 옆에서 지켜봐 왔고, 그들을 좋아하지 않아서 카톡을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에너지가 딸리는 불쌍한 사람이라서 답장이 느리다는 걸 잘 알아요. 이 친구들은 제가 연락이 뜸해도 그러려니 해줄 너그러운 사람들입니다.


만약 저를 아는 누군가가 연락 문제 때문에 서운해한다면 저는 이런 제 상태를 설명하려고 노력할 거예요. 그걸 이해해주지 못하고 서운함이 쌓여 지치게 된다면 저는 그냥 떠나가게 둘 것 같아요. 직장이 참 무서운 게, 회사일에 온 정신을 쏙 빠지게 만들어서 회사 이외에 다른 것에 쓸 에너지까지 긁어다 쓰게 만들거든요. 하루 약 10시간을 회사에 바치고 나면 남은 에너지가 별로 없어서 이 연락 불감증이 더 심해졌어요.


답하지 못한 1들이 괴로워

저도 사람이고 여러 관계 안에 살다 보니 답하지 못한 메시지가 남아있으면 미안하기도 하고, 답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럴 거면 그냥 후딱 답을 해주면 되지 않냐"


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요. 아무렇게나 답할 순 없잖아요. 대충 ㅋㅋㅋㅋ나 이모티콘으로 때우는 것도 한두 번이죠. 그렇게 답하는 건 대화를 끝내자는 얘기나 다름없잖아요?! 그러니 이 사람과 어떤 얘길 나눴는지 다시 상기하고, 상대방 기분 상하지 않도록 시간과 정성을 들여 답을 해줘야 하는데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버거워요. 그래요. 버겁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카톡이 힘든 우리들이 취해야 할 자세

그런데 이 버거운 게 과연 제 문제일까요? 이건 문제가 아니라 그저 현상일 뿐이에요. 사과가 빨간색인 것처럼요. 이제는 이 현상을 자책하지 않으려고요. 사과가 빨갛다고 해서 사과 스스로를 미워하지는 않으니까요.


우리의 몸은 한 개이고 시간은 하루에 24시간으로 아주 엄격히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모든 일에 모든 리소스를 투입할 수는 없어요. 어쩔 수 없이 우선순위가 생길 거예요. 그걸 너무 슬퍼하지 않기로 해요.


그런 우리들이 힘든 분이 취해주시면 좋을 자세

그냥 전화하세요.. 서로 힘들지 않고 윈윈이에요. 앗 그런데 전화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변화를 받아들이기

여기까지 카톡을 힘들어하는 제 심리에 대해 적어봤는데요. 쓰고 보니 어쩌면 체력 문제가 가장 큰 이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카톡에 집중하고도 남을 만큼의 에너지가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요? … 조심스러운 생각이지만 그러지 않을 것 같아요.


10대에는 친구와의 관계가 정말 중요했고, 저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연락을 잘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당장 제 생계, 그리고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는)커리어가 더 중요해지다 보니 연락에 집중하기가 참 어려워지고 있어요. 생애주기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이니 받아들여야겠죠! 한층 더 성장한 후에 이런 상태에 대한 대안까지 가지고 올 수 있도록 준비해보겠습니다. 전국의 카톡허약이들과 그 허약이들의 친구들 모두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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