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머 Sep 10. 2022

타임어택 글쓰기

이게 뭐라고 심장 쫄깃하냐

 딱 20분만 쓰기로 마음먹었다. 20분이 지나면 글을 마무리 짓고 자리에 누워 자버릴 거다. 하지만 20분을 채우기 전엔 꼼짝도 하지 않겠어. 녹화를 시작한 지 46초가 지나가고 있다. 시간이 째깍째깍 간다. 앞 문장을 고치다가 벌써 1분이 넘어갔다. 


 글을 써야 한다... 고 매일 생각한다. 하루에 두 번 이상 다짐한다. 글을 쓰겠다고. 써야 한다고 나를 다그치기도 하고 오늘은 꼭 쓰자고 혼자 약속을 하기도 한다. 만약 내가 두 명이었다면,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하는 나와 글을 쓰지 않고 도망 다니는 내가 따로 존재했다면 그 둘은 곧 서로를 떠났을 것이다. 내 가여운 자아는 통합되지 못하고 그만 분열되어 버렸겠지.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만 하는 내가 이제 좀 지겨워서 카메라를 켰다. 타이핑하는 손가락을 녹화하고 있다. 혼자서는 의지를 다질 수 없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함께 뭔갈 하는 건 부담스러운 내게 딱 좋은 방법이다. 사람 대신 카메라를 옆에 놓았다. Full HD 화질로 나를 감시하도록.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커져 노트북 앞에 앉았다가 한없이 늘어져 결국 몇 문단 못 쓰고 덮어버린 지난날의 나여, 보고 있나? 계속 녹화 시간을 확인하며 조급해하는 나를! 어떻게든 20분 안에 그럴듯한 글 한 편을 완성하고자 말이 되든 안 되든 일단 마구 써 내려가는 나를! 진작에 카메라를 켤 걸 그랬어!


 사실 바로 잘 써진 건 아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새 글 창을 두 번 켰는데 도저히 못 쓰겠어서 작가의 서랍에 밀어 넣고 세 번째로 새 창을 열었다. 거창한 거 쓰긴 어려우니까 지금의 나를 쓰기로 했다.


 맨날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만 하고 기어코 쓰지 않는 나. 잘 쓰고 싶은 욕심 때문에 빈 화면과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겨우 단어 몇 개를 썼다가 다 지워버리는 나. 언젠가 책을 내겠다면서 책에 들어갈 만한 글은 한 편도 쓰지 않은 나. 글 쓰려고 브런치 켰다가 남의 글만 킬킬 읽고 하트 찍는 나. 그런 내가 이제 좀 지겨워졌다. 쓰고 싶다. 그런데 쓰기 싫다. 책장에 꽂힌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의 책등을 바라본다. 쓰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님들은 썼잖아요. 글 한 편씩 완성해서 책에까지 실었잖아요. 증말 대단하다. 


 불평 그만하고 쓰자. 벌써 14분 35초다. 앞으로 5분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다리가 달달 떨린다. 오늘 할머니 댁에서 다리를 떨었더니 동생이 자기 발로 내 다리를 퍽 찼던 게 기억난다. 내 바지 훔쳐 입고 와놓고서는 웃겨 정말. 


 아무튼 이거... 꽤 효과 좋은 것 같다. 글을 완성하려면 일단 단어가 있어야 하고 단어가 이어져 문장이 되어야 한다. 쓰지 않으면 글을 완성할 수 없으니까 급한 대로 떠오르는 단어를 일단 쓰고 본다. 쓰고 이상한 것 같으면 바로 지운다. 근데 마음이 급하다 보니 이게 이상한지 아닌지 잘 판단이 안 된다. 거실에서 자고 있는 엄마가 코를 컹 곤다. 안 돼! 저런 소음에 정신을 빼앗기면 안 돼! 겨우 3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아니 2분!


 타협을 하자. 쓰는 건 20분이지만 퇴고할 시간을 더 갖기로 하자. 시간제한을 두니까 글 쓰는 게 괴로운 게 아니라 게임처럼 느껴진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아홉 문단 정도 썼고 조금 다듬으면 '발행'버튼을 눌러도 될 정도는 될 것 같다. 그럼 좋은 거겠지. 좋은 거라 하자. 30초 남았으니 아쉽지만 이제 마무리해야 한다. 20분이 이렇게 짧은 줄 몰랐다. 그래도 해냈다. 해냈어! 이 정도면 됐어! 난 발행 버튼을 누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책장에 행복을 꽂아두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