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트라우마로부터 회복된다는 것은 트라우마 때문에 무엇이 망가졌는지를 깨닫는 과정인 동시에 우리가 그 과정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기억하는 일이다.
- 트라우마 전문가 베서로 반 데어콜크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
언유주입니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네요.
언유주의 육아일기는 2019년 1월~2020년 8월까지 제가 조카인 하레를 엄마처럼 돌보던 시기에 대한 기록들입니다.
저는 두 가지 이유로 육아일기의 연재를 시작하게 됐어요.
먼저 나중에 하레가 크면 고모가 너와 함께 이렇게 많은 걸 배우고 성장했어,라는 것을 정리해 두었다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저처럼 '비뚤어진 모성애'를 가진 엄마를 가진 상처 가득한 유년기를 보낸 분들 중, 결혼과 출산을 원하면서도 '내가 사랑을 하고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가진 분들께 자그마한 위로와 희망을 건네고 싶었습니다.
제가 삶 속에서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것을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서 아이에게 '줌'으로써 오히려 내 안에 상처 받고 성장이 멈춰있던 내면 아이가 함께 성장하며 밝게 피어나는 경험을 했고 그것을 글에 담아 필요한 분께 전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진실한 글'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일상을 매끄럽게 유지하기 위해 쓰고 있던 페르소나를 벗어 던지고 그 어디에도 털어놓은 적 없었던 '에고 없는 글'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시간들 속으로 들어가 현재의 시각으로 이야기들을 재구성하면서 참 많이도 울었던 것 같아요.
당시의 감정과 고통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기도 했고요.
소중한 주말의 꼬박 하루를 옛날 일기나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힘든' 감정 상태로 보내야 하나, 다소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을 정도로요.
하지만 한 편, 한 편 글을 써내려가며 '내가 이렇게 힘들고 슬펐구나'라는 걸 스스로 알아 차리고 또 누군가 그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제 안에서 엄청난 치유가 일어나는 걸 느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이 글들을 쓰면서 진정으로 '제 유년기에 대한 애도'과정을 거쳤던 것 같아요.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어 제 안에 감당할 수 없게 쌓여만 가던 이야기들을 여기에 털어내고 제 마음이 나날이 솜털처럼 가벼워지는 걸 느꼈습니다.
특히나 저는 유년기의 경험에 대한 강력한 방어기제로 '주지화'를 발달시켰던 탓에 감정들, 특히 슬픔, 분노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느끼고 처리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오랜 시간 꾸준히 많은 노력과 연습들을 했구요.
그런데 과거의 일들을 글로 엮어내며 원 없이 울고 슬퍼하고 여러분들의 공감과 위로를 받는 일은 제가 제 감정들을 회복하는 데 아주 커다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원래 예상했던 하레와의 이야기를 1/10도 채 쓰지 못하고 이 연재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올해 5월에 일어난 '개인적 사건'으로 인해서 과거를 바라보는 제 시선이 크게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또 최근에 저는 정말 충분히 시간을 들여 애도한다면 '슬픔에는 끝이 있구나'라는 걸 느꼈습니다.
더 이상 제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요.
과거란 박제된 채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현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성장하느냐에 따라 그 모습을 바꾼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똥'이라고만 여겼던 나의 과거가 '거름'이 되어 나를 성장시키는 발판이 되었다는 것도, 그래서 앞으로 다가오는 제 삶의 모든 일들을 있는 그대로 기꺼이 힘껏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도요.
특히 제가 하레에게 가장 주고 싶었고, 주려고 노력했던 것이 바로 '안정 애착'이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위해 많이 공부하고 노력하면서도 정작 '안정 애착'이라는 게 과연 뭘까...그런 걸 가진 사람의 내면 세계란 어떤 것일까?하는 궁금증이 늘 제 안엔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제 삶은 저에게 '후천적 안정 애착'을 발달시킬 수 있는 다양한 사람과 기회들을 선물해 주었고 저는 '단단한 내면, 나의 중심'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이제는 분명히 알 것 같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제 자신이 늘 '하자있는 인간 damaged goods'같다고 느끼고, 평생이 사춘기인 것 같고, 뿌리도 없이 세상을 둥둥 떠도는 느낌의 '끝'을 경험했습니다.
집, 엄마의 품, 안전기지 등 도무지 상상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었던 개념들을 '내 안'에 키워낼 수 있고, 흔들림 없이 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요.
물론 여전히 저에겐 매일 매일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로 가득하고 배워 나가야 할 것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단단한 마음의 상태로 다가오는 모든 문제들을 기꺼이 경험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겠다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최근 저는 이런 안정형 애착, 단단한 자존감(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잠시 흔들거리다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제 안의 관능성(삶의 아름답고 즐거운 것들을 즐기는 능력)이 '회복'되는 매우 긍정적인 경험들을 하며 보냈습니다.
로또에 당첨된 것도,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 것도 아닌데, 가슴에 뚫린 시린 구멍도 없고, 비참함도 슬픔도 허황된 꿈도 계획도, 걱정도 불안도 없이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일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거구나, 라는 걸 느낍니다.
와, '이런 마음'으로 삶을 살수도 있는 거였구나, 지금까지 참 불필요하게 많이 아팠구나, 하고 느꼈어요.
바로 이런 최근의 제 삶, 제 정서의 변화로 더 이상 육아일기의 기저에 흐르고 있는 '슬픔/애도'라는 정서가 맞지 않았고 글을 몰입해서 쓰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댓글 달아주는 분들은 아마도 알게, 모르게 저와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는 분들이겠지요.
누구나 '자존감'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태생에 자부심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 이를테면, 고아, 입양아, 범죄자의 자녀, 혹은 강간으로 태어난 사람들, 물질적으로는 남 부러울 것 없는 환경이지만 부모로부터 애정어린 정서적 돌봄을 전혀 받지 못한 사람들-은 과연 무슨 수로 자신이 '귀한 존재'라는 단단한 자존감과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세상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게 저의 오랜 의문이었고, 이제 그 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제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겪었던 무수한 시행착오들이야말로 어쩌면 '누군가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이제야 더 단단한 마음으로 저의 아프고 슬펐던 과거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그것을 끄집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제가 본격적으로 제 심리적 상처들을 들여다 보기로 마음 먹었던 하레가 태어났던 해인 5년 전(곧 6년 전이 되네요.)으로 되돌려 그간 제가 회복 과정에서 겪었던 모든 시행착오들과 깨달음에 대해서 한 번 정리해 볼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다시 돌아오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긴 시간을 되짚어 보며 스스로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니, 아마도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 오랜 유년기 상처의 치유 과정을 겪으면서 제가 느낀 것은 행복이란 진정한 나 자신, 그리고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행은 '세상에 나 혼자야'라는 '고립'이라는 상태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라는 것도요.
모두들 멀쩡한 얼굴을 하고 살아가고 있어서 그렇지 누구나 말 못할 상처 하나쯤을 안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요?
어머, 너도 그렇게 아팠어? 나도 그런 일이 있었어.라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치유가 일어난다는 것을 이번 연재를 통해서 많이 배우고 느꼈습니다.
제 글을 읽고 공감해주셔서 저와 '연결'되어 주셔서, 저에게 너무나 귀중한 선물을 주신 구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브런치엔 언제 다시 돌아오게 될지 모르겠지만, 현재 다시 개편해서 시작하려고 예정중인 저의 네이버 블로그에는 B군 성격장애 - 특히, 경계선 성격장애와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과의 관계에서 입은 상처들로부터 회복되는 실질적인 팁들에 대해서 다시 연재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 주제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들러 주세요.
http://blog.naver.com/iamawriter
다시 한 번 모든 구독자분들께, 깊은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P.S.
글을 마무리하고 나니, 제일 중요한 하레의 근황을 전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희 하레는 통통하고, 씩씩하고, 똘똘하게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 나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저는 하레를 보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끼고 감동하고 있어요.
아이를 '잘 키우려고' 엄청 애썼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딱히 제가 뭘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하레가 알아서 잘 컸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그런 힘이 있으니까요.
육아로 고민하는 많은 엄마들, 절대 이 사실을 잊지 마시고 모두들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