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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에서 발견한 것들

가격표 뒤에 숨은 이야기들

by 운채


요즘 나는 당근마켓에 빠져있다. 순식간에 당근온도가 50도가 넘었다. 정확히 '빠져있다'기 보다는 '헤엄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필요없는 물건은 팔고, 필요한 물건을 사는 이 순환 속에서 나는 단순한 거래 이상의 무언가를 발견하고 있다.


가격표 뒤에 숨은 이야기들

당근마켓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가격'이다. 하지만, 그 가격에는 늘 이야기가 담겨있다. 시중가 보다 월등히 저렴한 가격의 물건을 보면, 먼저 그 사람의 상황을 떠 올린다. 급하게 돈이 필요하거나 혹은 이사를 앞두고 있다거나, 아니면 공간이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수 많은 물건들이 올라오는 온라인 마켓에서 유독 가구는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작은 공간에서 큰 공간으로, 큰 공간에서 작은 공간으로 혹은 공간의 용도가 바뀌면서... 상상을 해 본다. 어떤 물건은 시장가를 꼼꼼히 확인한 티가 난다. "네이버 최저가 15만원, 당근에서 12만원에 드려요" 라는 식의 설명은 판매자가 얼마나 공을들여 물건을 올렸는지 보여진다. 이런 게시글을 볼때, 너무 깎으면 실례가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괜히 미안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당하는 입장이 되면 사실, 그런 미안함은 분노로 바뀌기도 한다. 가장 흥미로운 건 '무료나눔'이다. 멀쩡한 냉장고, 소파, 세탁기가 공짜로 올라온다. "지금 당장 가져가실분만 연락 주세요. 오셔서 직접 가져가셔야 합니다" 처음엔 이해가 안됬다. 팔면 돈이 될텐데 왜 공짜로 주는걸까? 하지만, 곧 알게됐다. 덩치 큰 가전제품의 배송비가 물건 값을 초과하는 순간, 차라리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게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직거래라는 이름의 작은 모험

당근마켓의 장점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직거래의 온기'를 말하고 싶다. 첫째, 물건을 직접보고 살 수 있다. 사진과 실물의 괴리를 즉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안심이다. 스크래치가 얼마나 깊은지, 작동은 제대로 되는지, 냄새는 없는지, 이 모든 걸 내 눈으로 확인하고 결정할 수 있다. 둘째, 가격 협상의 여지가 있다. "혹시 8만원 가능할까요?" 라는 메시지 하나로 거래가 성사 되기도 하고, "죄송한데, 이미 다른 분이 먼저 연락 주셔서요"라는 답장에 아쉬워하기도 한다. 이 과정 자체가 일종의 게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세째, 동네 사람들과의 연결이다. 같은 동네에 사는 누군가의 물건을 받고, 내 물건을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 그 과정에서 "여기 맛집 있더라고요." "아이 키우시나 봐요, 저희도 다섯 살이에요"라는 짧은 대화가 오간다. 이 작은 교류가 메마른 도시 생활에 의외의 촉촉함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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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

"물론 단점도 분명하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다. 택배처럼 클릭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메시지를 주고 받아야 하고, 일정을 조율해야 하고, 약속 장소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기다려야 한다. 때로는 상대방이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 "죄송해요, 급한일이 생겨서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심한경우에는 아무런 연락이 없을때도 있다. 그럴때면, 허탈함이 밀려온다. 또 다른 문제는 '불 확실성' 이다. 아무리 좋은 사진과 설명이 있어도, 직접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중고제품이니 그 편차는 더욱 심하다. 판매자가 '거의 새것'이라고 한 물건이 생각보다 낡았을 수도 있다. 이 어색한 순간들을 견뎌내는 게 쉽지 않다. 그리고 때로는 '안전'의 문제가 불쑥 고개를 든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 대부분은 괜찮지만, 가끔 뉴스에서 사기사건이나 범죄소식을 접하면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특히 고가의 물건을 거래할 때는 더욱 조심스러워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근마켓을 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들은 '이 플렛폼은 단순한 중고거래 플랫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곳은 물건이 담긴 이야기가 교환되는 곳이고, 동네의 온도를 느낄 수 있는 곳이며, 소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다.


누군가에게는 필요없는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 된다. 그 순환 속에서 나는 내가 조금 더 현명한 소비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인내심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오늘도 나는 당근마켓을 켠다. 누군가의 안 쓰는 책장이 내 방의 완벽한 수납공간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내 옷장 깊숙이 잠들어 있던 운동기구가 누군가의 새해 결심을 응원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당근마켓, 이 작은 동네 장터에서 나는 오늘도 물건 이상의 그 무엇을 사고팔고 있다. '혹시 유명 연예인이라도 만나게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며 피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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