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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기사님의 하루 : 쿠팡 로켓배송의 뒷 이야기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by 운채

새벽 배송이 일상이 된 삶.

전날 밤 11시에 주문한 생수가 아침에 7시에 문 앞에 놓여있는 마법같은 경험. 나는 이 편리함에 익숙해졌다. 쿠팡의 파란 프레시백을을 열고, 주문한 물건을 꺼내고, 빈 가방을 문 앞에 내 놓는 것. 이 모든 게 너무나 당연해 졌다.


그런데, 이사를 하면서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프레시백이 말하는 동네의 이야기

비교적 신도시에서만 살았던 나는 늘 깨끗한 프레시백을 받았다. 새것처럼 반짝이는 파란색, 찍찍이 벨크로도 짱짱했고, 안쪽 은박도 깨끗한 상태였다. 배송 시간도 일정했다. 새벽 5시에서 6시 사이. 거의 정확했다.


그런데, 이사 온 동네는 달랐다.


프레시백이 낡았다. 어떤 건 벨크로가 반쯤 열려있기도 하고, 얼룩도 심하다. 이건 폐기처분 해야 하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낡은 가방도 있다. 배송 시간도 불규칙해졌다. 어떤 날은 새벽 4시, 어떤 날은 아침 8시. 같은 '새벽 배송'인데도....


처음엔 불만이었다. '이게 뭐야, 이거 왜 이래?'


하지만 곧 깨달았다. 이건 단순히 가방 상태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동네마다 건물마다, 고객마다, 다른환경에 놓인 환경적인 영향이라는 것을. 프레시 백을 아무렇게나 던져놓는 사람, 안에 쓰레기를 넣어두는 사람, 아예 회수하지 않는 사람. 그 모든 걸 감당하는 건 결국 쿠팡맨들 이었다.


새벽 배송이 오지 않은 날

어느 날, 새벽배송이 오지 않았다.


전날 저녁에 주문했다. '내일 새벽 도착 예정'이라는 초록색 표시를 확인했었다. 아침에 문을 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앱을 확인했다. '배송중' 에서 '배송지연'으로 바뀌어 있었다.


화가 났다. '새벽 배송이라면서? 왜 안와?"


하지만 곧 생각했다. 지금 몇 시지? 아침 7시 나는 이제 막 일어났는데, 누군가는 새벽부터 이미 몇 시간째 일하고 있다는 것. 수백 개의 택배를, 수십 개의 층을,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까지 오르내리며...


분노가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천천히 오세요.'


엘리베이터 사용 시간 제한

온라인 게시판에서 서울 어느 아파트에서 쿠팡맨의 엘리베이터 사용 시간을 새벽 5시 이후로 제한 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이른 새벽 배송으로 인한 소음으로 주민들의 불편이 크다는 민원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멍 하니 그 글을 읽었다.

새벽 5시 이후? 그럼 새벽4시에 도착한 택배는? 계단으로? 10층, 20층을? 무거운 생수와 쌀을 들고?

댓글 창에 찬반 의견이 팽팽하다고 했다.


"맞아요. 새벽에 엘리베이터 소음 때문에 잠 깨요."

"그 사람들도 일하는 건데,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돈 받고 하는 일인데 뭐가 문제예요?"


나는 내가 21세기에 살고 있는 게 맞나 싶었다. 우리를 위해 새벽잠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엘리베이터 사용 시간까지 제한하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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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쿠팡 맨

강아지와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엘리베이터에서 쿠팡맨을 만났다.


파란 유니폼을 입은 젊은 남자. 짐 수레에는 크고 작은 택배 박스가 잔뜩 실려져 있다. 어깨에까지 커다란 택배상자를 들고 있었다. 힘들어 보였던 그 남자가 우리 '탄' 이를 보자 미소지으며 만져도 되냐고 물어본다.


"강아지가 귀엽네요."

나도 웃으며 답했다. "고생 많으세요. 추운데..."

"괜찮아요. 익숙해요."


짧은 대화였지만, 그의 표정이 조금 밝아진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나는 생각했다.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따뜻한 인사말 한마디. 그들의 노고를 이해하는 마음.


캔 커피 하나, 핫팩 하나

요즘 나는 겨울마다 작은 실천을 한다.


새벽 배송 된 프레시 백을 밖에 내 놓을 때, 옆에 따뜻한 캔 커피 하나를 두는 것, 추운 날엔 핫팩도 함께. 작은 메모도 남긴다.

"감사합니다. 따뜻하게 드세요."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들도 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뭘 그렇게까지 해줘요?" 라고 말한다.

맞다. 그들은 돈을 받는다. 직업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노고가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새벽2~3시, 모두가 잠든 시간에 어둠을 달리는 사람들.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


그들이 없다면 나는 새벽 배송을 받을 수 없다. 아니 그들이 없다면 나의 '편안한 하루'는 존재하지 않는다.


편리함 뒤에 있는 사람들

쿠팡 로켓배송. 새벽배송. 당일 배송.


우리는 이 편리함을 당연하게 여긴다. 클릭 한 번으로 내일 아침 문 앞에 도착하는 마법. 하지만 그 마법 뒤에는 마법사가 있다. 밤을 새우는 사람, 추위와 더위를 견디는 사람, 수 많은 계단을 오르는 사람.


프레시백의 상태가 동네마다 다른이유. 배송 시간이 불규칙한 이유. 가끔 배송이 지연되는 이유. 그 모든 이유 뒤에는 사람이 있다.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라, 최선을 다 하는 사람.


나는 이제 배송이 늦어져도 화내지 않는다. 프레시백이 낡아도 불평하지 않는다. 대신 엘리베이터에서 쿠팡맨을 만나면 인사한다. " 고생 많으세요" 그리고 가끔 문 앞에 따뜻한 캔 커피를 놓는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답례다. 나의 편안한 하루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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