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멀리 가지 않기로 했다 #4
동네 새로운 카페를 발견했을 때, 나는 출입구를 살짝 열고 먼저 주인장에게 묻는다.
"혹시 반려견 동반 가능한가요?"
커피 맛도, 인테리어도, 가격도 그다음이다. 내 기준은 명확하다. 우리 포메라니안 '탄'이 5살, 그 녀석과 함께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다.
"죄송한데요, 저희는 반려견 동반이 어려워요."
익숙한 대답이다. 실망스럽지만 이해한다. 모든 손님을 만족시킬 순 없으니까. 하지만, 가끔은 아쉽다. 저녁 산책길에, 주말 나들이에 잠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을 뿐이다.
프랜차이즈 카페는 정책이 명확하다. 반려견 출입금지. 깨끗하고, 빠르고, 어디서나 같은 맛. 하지만, 탄이는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동네 카페를 찾는다. 숨겨진, 작은, 사장님이 직접 운영하는 그런 곳. 네이버 지도를 켜고, 인스타를 뒤지고, 때로는 그냥 걷다가 발견한다.
"반려견 동반 가능"
이 일곱 글자가 주는 반가움과 기쁨이란 말로 할 수 없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사장님이 먼저 탄이를 본다.
"어머, 귀여워라. 이름이 뭐예요?"
"탄이요. 5살이에요"
"탄이 ~안녕!"
이 짧은 대화가 중요하다. 탄이를 환영해 주는 곳, 귀찮아하지 않고,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반겨주는 곳. 그런 카페는 다시 가게 된다.
자리에 앉는다. 탄이는 내 무릎에서 혹은 발 밑에서 얌전히 앉고, 나는 메뉴판을 펼친다. 아메리카노 하나, 그리고... 오늘은 뭐가 있을까요?
"마들렌 있어요?"
"네 오늘 아침에 구운 거예요."
마들렌. 작지만 정성이 담긴 프랑스 과자.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버터 향이 가득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찾을 수 없는 수제 베이커리다.
"잠봉뵈르도 있어요. 드셔보실래요?"
"오, 그것도 주세요!"
잠봉뵈르(Jambon Beurre) : 크루아상 잠봉뵈르에는 일반적으로 프랑스산 고급 버터가 사용된다. 특히 버터의 풍미를 강조하는 샌드위치이므로, 품질 좋은 버터를 넉넉히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버터계의 에르메스"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에쉬레 (Échiré)가 사용되며 깊고 풍부한 풍미가 강하다. 바게트 잠봉뵈르보다는 크루아상 잠봉뵈르가 부드럽고 버터의 맛과 더 잘 어울린다. 동네 카페에서 이 정도의 고급진 맛을 추구한다면 그 카페는 당연한 나의 단골이 될 준비가 됐다.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사장님이 물었다.
"탄이 데리고 오셨네요. 아메리카노 드시죠?"
세 번째 방문했을 때는 이랬다.
"탄이 ~ 왔어? 오늘은 마들렌 드실 거예요?"
나는 놀랐다. 내 취향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탄이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이건 단순한 거래가 아니었다. 관계였다.
네 번째부터는 문을 열 때마다 편안했다. 인사를 나누고, 단골 자리에 앉고, 메뉴를 고르는 시간조차 즐거웠다. 탄이는 이미 사장님을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탄이 간식 좀 줘도 돼요?"
"아,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이 자신도 키우는 애견을 위해 직접 만든 강아지 쿠키. 탄이는 맛있게 먹고,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창밖을 보면 동네 풍경이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 자전거 타는 아이들, 산책하는 할아버지.
이 순간, 나는 안다. 여기가 내 카페라는 것을.
물론 여전히 불편하다. 새로운 카페를 찾아갈 때마다 확인해야 한다는 것.
"반려견 동반 되나요?
전화로 물어보고, 인스타 프로필 확인하고, 리뷰를 뒤진다. 가끔은 "가능하다"는 정보를 보고 갔는데 막상 가보니 "작은 강아지만 가능해요" "가방에서 꺼내시면 안 돼요" 이런 경우도 있다. 강아지가 물건도 아닌데, 가방에 넣어두고 있어야 한다면 그건 애견동반이 아니다. 애견자리가 따로 있거나, 야외, 루프탑 같은 공유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은 생각보다 많다. 조금만 찾아보면, 조금만 걸어보며, 숨은 보석 같은 카페들이 있다.
반려견 출입 환영 스티커가 붙은 카페. 테라스 좌석이 있는 카페. 아예 "반려견 동반 카페"를 표방하는 곳.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지도에 저장하고, 나만의 카페 리스트가 늘어간다.
동네 카페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
커피 맛? 물론 중요하다. 베이커리? 그것도 좋다. 하지만 가장 큰 건 '관계'다.
프랜차이즈는 빠르고 편하다. 어디를 가도 비슷한 맛, 같은 서비스. 하지만, 거기선 나는 '손님 1번'일뿐이다.
이름도, 취향도, 반려견도 기억되지 않는다.
동네 카페는 다르다. 사장님이 내 얼굴을 기억한다. 탄이를 반긴다. 내가 마들렌을 좋아한다는 걸 안다.
오늘 새로 나온 메뉴를 추천해 준다.
"언니, 오늘 바닐라 크림 라테 나왔어요. 맛있어요!"
이 한마디가 주는 따뜻함. 나는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언니'가 된다. 탄이는 '귀여운 강아지'가 아니라, '탄'이가 된다.
그렇게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시작된 관계는, 어느새 동네 생활의 일부가 된다.
주말오후, 나는 탄이와 산책을 나선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다. 우리 단골 카페.
문을 열면 사장님이 웃으며 맞이한다. 탄이는 꼬리를 흔들고, 나는 편안하게 자리에 앉는다. 아메리카노와 잠봉뵈르를 주문하고,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카페에 은은히 흐르는 재즈음악. 창 밖으로 보이는 동네 풍경. 발밑에서 스르륵 잠드는 탄이. 손에 든 따뜻한 커피 한잔.
이 순간을 위해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유명한 카페를 찾아갈 필요도 없다. 동네 카페. 걸어서 10분 거리. 그것으로 충분하다.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면, 사장님과 마주친다. 서로 미소 짓는다. 말은 없어도 통한다. '오늘도 좋은 하루네요."
언젠가는 이 질문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반려견 동반 가능한가요?"
모든 카페가 탄이를 환영하는 날. 아니, 최소한 선택지가 더 많아지는 날. 번거롭게 확인하지 않아도, 안심하고 들어갈 수 있는 날.
하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계속 찾을 것이다. 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동네 카페를. 그리고 그곳에서 단골이 될 것이다. 아메리카노 한잔, 마들렌 하나로 시작하는 작은 관계를.
오늘도 나는 탄이와 산책을 나선다. 주머니엔 동네 카페 리스트가 저장된 핸드폰. 마음엔 따뜻한 커피 한잔에 대한 기대. 그리고 탄이 목줄을 잡은 손엔, 우리 동네를 더 깊이 알아가겠다는 다짐.
멀리 가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 동네 카페면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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