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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현 Dec 16. 2024

감정은 복잡하(지 않)다

감정을 단순하게 만드는 법

 


저도 제 감정을 잘 모르겠어요
  

감정코칭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어찌 보면 저 말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우리는 감정에 대해 배우거나 공부해 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행동주의 철학이 익숙한 우리 부모세대들은 그 윗세대로부터 부정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나약하거나 나쁜 것이라는 신념을 물려받았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문제 행동 수정에 더 집중을 했기에 감정은 고려사항에서 아예 제외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신념이 또 그들의 자녀인 지금 우리 세대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되었다. 나 또한 내 감정을 정확히 파악해 나가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1년 동안 매일 감정일기를 썼고, 이후 2년 동안 틈틈이 수련하는 과정을 거쳤기에 복잡한 감정들을 점점 심플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가 감정이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 감정이 그냥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부정경험에서 발생한 어떠한 감정이 부모나 믿는 어른으로부터 제대로 해소되지 못한 채 억눌리면 그것은 나의 신념으로 자리 잡는다. 기억에 감정이 결합되어 '~할 땐 이렇게 해야만 해', '~라면 당연히 ~해야지'라는 당위적 신념으로 굳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신념에 반대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묵혀두었던 '감정'의 버튼이 눌려지는 것이다. 도대체 이 감정이 어디에서부터 오게 된 것인지도 모른 채.

   

그렇다면 감정은 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존재일까? 나의 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라는 것이다. 이 무슨 말장난 인가 싶겠지만, 감정은 내가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훈련하느냐에 따라 단순하게 만들어 갈 수도 있고 계속 복잡한 채로 외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몸의 근육을 키우는 데에 시간이 걸리듯이,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데에도 어느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 나는 이 기간을 최소 3개월로 잡는데, 그동안 다양한 챌린지를 운영해 본 결과 3개월까지 유지한 사람들이 삶의 어느 부분에서든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매일 반복하는 작은 훈련이 3개월 정도 쌓이면 누구나 감정을 조율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 그렇다면 이처럼 감정을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일상에서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훈련은 뭐가 있을까? 바로 '감정을 정확한 단어로 인지하는 것'이다. 평소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감정단어는 10개가 채 안될 정도로 큰 카테고리로 묶여 있다. 예를 들어 "우울해, 속상해"라는 감정 뒤에는 '서글픔, 외로움, 초라함' 등의 세부 감정이 숨어 있는데 우리는 그냥 "우울하다"라고 표현한다. '분노'라는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분노를 단순히 화가 나는 감정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 그 누군가는 두려움을 분노로 표현하기도 하고, 슬픔이나 걱정을 분노로 표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큰 카테고리의 감정을 점점 세부 감정단어로 옮기는 훈련을 하면 정확히 내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인지할 수 있게 된다.


앨릭스 코브 저자의 <우울할 땐 뇌과학> 책에 따르면 미국에서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는데, 참가자들에게 다양한 표정의 사진을 벽에 붙여 놓고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이때 부정 감정에 반응하는 편도체가 어떻게 활성화되는지 살펴보았다. (*편도체는 대뇌의 변연계에 존재하는 아몬드 모양의 뇌부위이다. 감정을 조절하고 공포 및 불안에 대한 학습 및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참가자들이 벽에 붙은 사진들 중 부정의 표정을 그저 보기만 했는데도 편도체가 활성화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곧이어 두 번째 실험이 진행되었는데, 참가자들에게 각 표정에 이름을 붙여보라고 요청하였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편도체의 활성화가 줄어드는 것이었다. 이 실험은 우리가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그 감정이 유발하는 효과가 감소된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감정을 언어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뇌 회로를 재배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감정을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감정일기'인데, 쓰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날짜 :

1. 느낀 감정 : (첨부된 감정 단어창 참고)

2. 이유 or 내가 바랬던 것 :

3. 다행인 점 : (비록 ~였지만 ~라서 다행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감정은 나의 과거로부터 형성된 신념이 어떠한 외부 자극으로 건드려졌을 때 신체의 반응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현재에 머무르며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힘들었던 과거의 어떠한 경험을 들여다보고 마주하기를 매우 두려워한다. 떠올리면 다시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를 들여다보기 전에 현재 느끼는 감정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감정을 보다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 감정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마음의 공간도 생기는 것이다.


오늘부터 하루에 딱 15분만 시간을 내서 감정일기를 써보는 건 어떨까? 매일이 어렵다면 주 2회라도 써보자. 만약 내가 쓴 감정일기를 다시 들춰보는 것 자체가 힘든 사람들은 찢어서 버릴 수 있는 노트에 적어도 좋다. 솔직하게 휘갈겨 쓰고 휴지통에 버리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내 안에 담아두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훌륭한 장치가 될 수 있다.

이렇게 감정을 정확한 이름으로 인지하여 뇌회로를 재배선 하는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점점 감정이 조율되는 시간도 빨라질 것이다. 그렇게 감정을 인지하고 표현하는 것이 편해지면 그 감정들이 유발되었던 시점을 찾는 여정을 떠날 준비도 될 것이다.

감정, 달면 삼키고 쓰면서 뱉어 보자.


** 다음화 예고) 감정은 욕구와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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