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만나는 운영자들을 위한 비법서: 챕터 3 - 칭찬 편
스토리스튜디오 혜화랩(Story Studio, 이하 '스스')은 이야기를 읽고 보고 듣고 만드는 일이 궁금한 12-19세 청소년들을 위한 열린 작업실입니다. 누구든지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발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기획하고 만들어 세상에 알릴 수 있습니다.
<청소년을 만나는 운영자들을 위한 비법서>는 만 매니저가 스토리스튜디오의 운영자로 일하며 발견하거나 깨달은 여러 팁과 가이드를 함께 나누기 위해 쓴 글입니다. 청소년 공간의 운영자뿐만 아니라 청소년이 궁금한 사람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더 좋은 비법은 언제나 댓글에 편하게 남겨주세요 :)
스토리스튜디오에 오는 아이들 중에 작업을 마치면 꼭 운영자를 부르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제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는 지를 기다립니다. '응~'이라고 짧게 대답하고 아이에게 걸어가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오고 갑니다. 어떤 성향의 아이인지, 지난번에는 어떤 작업을 했었는지, 그때 나는 어떤 말을 했었는지.
운영자의 말과 표정, 분위기에서 나오는 피드백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공간을 운영하며 느낍니다. 마무리한 작업물에 대한 피드백뿐만 아이가 하는 말과 행동, 시도, 아이디어에 대해 운영자가 보이는 반응 모두를 포함합니다. 당장 다음 작업을 계속 이어나가게 하기도 하고, 장기적으로 아이가 이 공간을 더 이용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에 까지도 영향을 미치죠.
어떻게 해야 할까 매 순간 고민이 듭니다. 다행히 저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 어린이 작업실 <모야>의 운영자들이 온라인으로 모인 자리에 연사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운영원칙을 공간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운영자들이 느끼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습니다. 첫 질문이 바로 칭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칭찬은 하지 말아야 할까요? 감탄도 하면 안 될까요? 칭찬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칭찬이라는 말로 정리되지만 결국 운영자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모야의 운영자들도 이 부분에서 계속 질문이 드는 이유는 하루에도 수차례 이런 상황에 부딪히기 때문입니다. 공간의 분위기나 아이들의 작업이 운영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기에 더 궁금해지는 것이죠.
답변을 준비하며 곰곰이 생각해볼수록 칭찬 앞에는 운영자가 빠지기 쉬운 2가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열의가 넘치는 운영자일수록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운영자로 일하다 보면 내가 던진 말 한마디에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더 멀리 나아가며, 멋진 작업물을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순간을 맞닥뜨리곤 합니다. 슬몃 욕심이 듭니다. 현란한 메시급 드리블로 아이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칭찬과 리액션으로 아이들을 춤추게 할 수도 있죠. 운영자로 일하는 보람과 뿌듯함이 밀려듭니다.
하지만 당신은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그 함정은 바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함정입니다. 이 책이 직장인에게 최고의 생산성을 끌어내기 위해 나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래는 수족관에서 조련사의 구령에 맞춰 춤을 추는 동물이 아닙니다. 드넓은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며 자신만의 춤을 추는 것이 고래입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운영자의 칭찬과 리액션으로 아이들은 분명 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습니다. 화려한 턴과 높은 점프를 보여주기도 하고, 어쩌면 작은 훌라후프를 힘차게 통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이 집중해야 할 것, 즐거움을 느껴야 할 것은 자기 주도적인 너른 작업의 바다, 과정에 몰입하는 춤 자체입니다. 드넓은 바다를 두고 좁은 수족관에 갇혀 운영자가 던져 주는 칭찬 정어리에 연연하게 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2010년 EBS의 '칭찬의 역효과' 다큐 이후 칭찬해서는 안 되고 평가하면 안 된다는 말이 이제는 청소년을 만나는 사람들이라면 상식처럼 하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칭찬 대신 질문을 하라. 객관적인 정보를 말하는 식으로 답변을 대신하라.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면 아이를 칭찬하기보다는 과정이나 노력을 칭찬하라는 식의 대안이 이어집니다.
다 맞는 답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막상 실천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만 매니저도 초반에 이런 어려움을 겪었죠. 내 말 한마디가 괜히 아이를 칭찬 중독에 더 빠지게 하는 것 같고, 튀어나오는 감탄 또한 조심스러웠습니다. 칭찬 대신 질문을 해야 하는데 매번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을 대할 때 생각이 많아지고 주저하며 움츠러드는 제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여기가 바로 함정입니다.
첫 번째 함정이 '잘하는 운영자'가 되고 싶다는 함정이었다면 두 번째는 '좋은 운영자'가 되고 싶다는 함정입니다. EBS 다큐나 칭찬에 관한 모든 책은 부모와 교사들을 위한 것입니다. 한 지붕 아래서 20년도 넘게 한 아이와 관계를 맺는 부모나,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고 피드백해야 하는 숙명에 선 교사가 '좋은' 부모,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자세에 관한 책들이죠.
운영자가 아이와 맺는 관계는 다릅니다. 매 순간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관계의 깊이는 얕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도 아이의 인생을 놓고 보면 미미합니다. 운영자가 별거 아닌 존재라서가 아닙니다. 운영자는 부모도 교사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운영자가 아이들을 만나는 방식과 이유는 부모나 교사의 그것과는 분명 다릅니다. 물론 자녀를 키우는 운영자도 있고, 교육 영역에서 온 운영자도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시각을 견지할 수는 있지만, '좋은'의 기준을 부모나 교육자에게서 가져와 스스로를 옥죌 필요가 있을까요?
함정에 빠질 거 같을 때 '비비디 바비디 부'처럼 되뇌는 주문이 있습니다. '운영자는 조련사도 아니고, 부모님도 선생님도 아니다. 운영자는 나다'
운영자는 조련사가 아니기 때문에 멋들어진 결과물을 만들게 하기 위해 전면에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좋은' 운영자가 되어야 하는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죠. 대신 다른 영역에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바로 운영자가 나라는 것 즉, 나만의 운영 스타일을 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운영자는 뛰어난 조련사나 좋은 부모, 좋은 선생이 되기 위함이 아니라 더 나은 운영자가 되기 위한 노력의 방향 전환이 필요한 것이죠.
1. 운영 스타일 잡기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카페가 있습니다. 내로라하는 원두와 로스팅 비법을 자랑하는 카페에서부터 교외에 수백 평 규모를 갖춘 카페, 작고 아담한 빈티지 카페, 힙터지는 골목길 카페, 무인 카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카페가 있습니다. 그리고 카페의 수만큼 다양한 운영 스타일이 있죠.
청소년을 만나는 공간도 얼마나 종류가 다양할까요? 각자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가 있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운영 스타일도 제각각이죠. 예를 들어, 제가 일하는 스토리스튜디오 혜화랩은 작업실입니다. 운영자는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작업에 더 집중하고 계속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동시에 실험실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행동이나 대화를 관찰하고 의미를 해석하고 더 나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동시에 해야 합니다. 공간에 온 아이들이 일정한 수준의 만족감을 느끼게 하기 위한 일상적인 공간 운영도 빠질 수 없죠.
이러한 큰 세 가지 운영 목표 아래 운영자가 취할 수 있는 스타일 범위가 어느 정도 생깁니다. 그 범위 안에서 운영자마다 자신만의 스타일이나 캐릭터의 위치를 잡는 것이죠. '이 모습만이 최고다'라고 할 법한 하나의 정답만 있는 영역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난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내 멋대로 한다가 답도 아닙니다. 개인사업자나 프리랜서가 아니니 조직 운영의 목표를 달성하는 범위 내라는 한정이 있는 것이죠.
2. 일관성 유지하기
어느 정도 스타일이 잡혔다면 더 깊이 고민해야 할 지점은 바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칭찬과 같은 리액션이 많은지 적은 지, 평소 톤이 높은지 낮은지, 대화가 많은지 적은 지는 운영자마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가져갈 수 있는 여지가 됩니다. 아이들도 그냥 그런 사람인가 보다 하고 각자의 차이를 이해해주죠. 대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이용하는 아이들의 만족도와 직결됩니다.
어떤 날은 세상 친절하고 에너지가 넘쳐 온갖 것에 관심을 보이다가 어떤 날은 죽상을 하고 우울해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느낄 혼란은 생각보다 큽니다. 평일에는 좀 여유롭다고 마구 들이대다가 주말에는 바쁘다고 쳐다도 안 보는 운영자는 어떨까요? 어린아이들은 혹시 내가 뭔가를 잘못했거나 나를 좋아하지 않아서 운영자가 이렇게 대한다고 불안해 할 수도 있습니다. 운영자의 상태에 아이들이 눈치를 봐야 하거나 연연해하게 되는 것만큼 큰 패착이 있을까요?
청소년을 만나는 공간은 팝업 공간이 아닙니다. 100m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에 가깝죠. 운영자는 어떤 아이가 왔든지, 자신이 어떤 상태이든지 간에 일정한 톤을 계속 유지해주어 아이들에게 안전함, 안정감을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이건 평일, 주말이 따로 없습니다. 당장 오늘 내가 어떤 모드로 일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이 모드를 일주일, 한 달, 일 년 내내 지속 가능하게 가져갈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3. 팀 안에서 조화롭기
마지막으로 공간의 운영자가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면 다른 운영자들과 조화도 신경 써야 할 부분입니다. 운영하는 공간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인식될지는 나 혼자만의 색깔이 아니라 함께 운영하는 사람들 모두의 색이 고루 섞여 총체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기계적으로 너는 ENFJ니까 내가 ISTP할게 같은 걸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화를 이루기 위해 서로 좀 더 맞추고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모든 운영자가 시종일관 방방 뛰기만 한다면 공간의 분위기는 어떨까요? 반대로 모든 운영자가 자기 영역 중심으로 안정적으로만 활동한다면 그건 또 어떤 모습일까요?
'항상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변수들을 계속 조절하여 내부 환경을 안정적이고 상대적으로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특성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 몸이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하는 걸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청소년을 만나는 공간이 항상성을 유지하며 아이들에게 일정한 톤을 제공해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운영자들은 서로 일정 부분 자신을 조절해 나가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죠.
앞서 이야기한 3가지 방향성은 모두 노력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그저 청소년을 만난 경험이 많거나, 성격이 밝고 모나지 않은 사람이 모이면 다 해결되는 관상이나 운의 영역이 아닙니다. 체계적으로 고민하고 운영자들 나름의 훈련을 통해 더 나은 운영자, 더 나은 공간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할 진짜 방향이겠죠. 질문을 해야 해요 말아야 해요 함정에 빠져 운영자의 노력이 멈추어 서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45년 간 아동 중심의 놀이 치료를 발전시킨 개리 랜드래스(Garry L. Landreth) 교수가 은퇴를 하며 남긴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서 배운 가장 위대한 개인적인 발견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노학자는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일하면서 아이들이 나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이들은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좋아해 주었습니다. 아이들도 있는 모습 그대로 충분해요. 내가 나 자신으로 충분한 것처럼 말이죠. 아이들이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으로부터 나는 이 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제가 너무 빙빙 돌렸죠? '운영 목표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라면 운영자 스타일에 맞춰 알아서 하세요. 단, 일관되게요'가 아마 제가 드릴 수 있는 답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답도 괜찮은 이유는 아이들이 우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 때문입니다. 운영자의 나다운 스타일을 유지해도 아이들의 삶에 큰 문제가 생기거나 아이들에게 미움을 받거나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냥 우리를 받아줄 겁니다. 부디 자신감을 가지세요. 운영자는 다른 누구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니까 말입니다.
자 그럼 <청소년을 만나는 운영자들을 위한 비법서>의 세 번째 챕터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감사합니다.
만 매니저 드림.
[청소년을 만나는 운영자들을 위한 비법서: 챕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