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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nim Sep 06. 2021

우주로1216 콘텐츠 개선: 슥슥존과 스토리스튜디오

[스스 확산기] 첫번째 이야기. 기획자, 운영자의 의도와 고민

스토리스튜디오 혜화랩(스스, Story Studio)은 이야기를 읽고 보고 듣고 만드는 일이 궁금한 12-19세 청소년들이 각자의 이야기로 마음껏 만들어볼 수 있는 작업실입니다.  누구든지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발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기획하고 만들어 세상에 알릴 수 있습니다.

[스스 확산기]에서는 스토리스튜디오가 공공도서관에 확산되는 과정 속에서 어떤 고민과 노력, 의도와 시도가 있었는지 이야기를 전합니다. 도서관 속 청소년 공간에 표현, 창작, 작업의 경험을 촉진하고 싶은 분들께 구체적인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매 순간 바뀌는 스토리스튜디오 혜화랩의 모습


스토리스튜디오 너무 좋네요. 저희 도서관에 좀 가져와주시면 안 되나요?


스토리스튜디오 혜화랩(스토리스튜디오)을 연 이후, 방문했던 기관 관계자분들께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운영 1년 차에는 엄두도 내지 못할 생각이라 웃어넘기곤 했습니다. 씨프로그램에서 스토리스튜디오를 직접 만든 이유가 12-19세 청소년들을 위한 콘텐츠를 실험하고, 협업하는 도서관에 확산하기 위한 것임은 변한 적이 없지만, 이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거든요. 오픈 첫 해에는 한 명이라도 더 와서 한 시간이라도 더 머무르도록 모든 신경을 집중하기에 바빴습니다. 초기 기획 의도에 따라 다양하게 가설을 세워 실험하면서 스토리스튜디오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공간 자체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에도 24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약 1년이 지나자 마음속에서 확산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했습니다.


진짜 가능할까? 


무슨일이든 물음표만 가지고는 움직일 수 없기에, 가설을 세우고 일단 실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이는 스토리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배운 태도와 근육(혹은 맷집)이기도 합니다. 일단 할 수 있는 가설에서 시작해서 치열하게 실험하고 반응 값을 회고하면 예상치 못한 결과이더라도 그 자체로 다음 단계를 찾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주거든요.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실험을 함께할 든든한 파트너를 찾고, 그들과 명확한 기준(가설)을 가지고 실험을 기획하는 것입니다. 실험을 시작하고 난 후부터는 어떤 반응이 나왔는지를 긴밀히 관찰, 기록하면서 데이터로 쌓고 기획 의도를 중심에 두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최적화된 방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과정을 꾸준히 함께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고, 공공도서관이란 환경 속에서 '지속 가능한' 실험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우주로1216 운영팀의 숙원사업, 

슥슥존과 스토리스튜디오의 만남


공공도서관 파트너를 떠올렸을 때 이곳 말고는 떠오르는 곳이 없었습니다. 바로 전주시립도서관의 '우주로1216'입니다. 우주로1216은 씨프로그램에서 도서문화재단 씨앗과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약 1년에 걸쳐 공들여 만든 12-16세 트윈세대 공간입니다. 2019년 12월 문을 연 이후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거나 인원을 제한해가며 문을 열었지만, 그럼에도 전주 트윈세대 친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무럭무럭 커가고 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수상하며 도서관 속 청소년 공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인 공간이기도 하지요. 공간 오픈 후에도 운영의 여러 측면에서 씨프로그램과 긴밀하게 협업하던 파트너입니다. 


여러 존을 오가며 다채롭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


우주로1216에는 총 4가지 존이 있습니다. 소통하기 좋은 '톡톡존', 에너지를 뿜어내는 '쿵쿵존'부터 무엇이든 작업하는 '슥슥존', 사색하기 좋은 '곰곰존'인데요. 이용자들은 4개 존을 넘나들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중에서 운영자들이 콘텐츠를 기획할 때 가장 어려움을 느꼈던 공간이 바로 슥슥존입니다. 도서관에서 자주 보기 어려운 만큼, 운영자들에게도 낯선 공간이니까요. 


실험을 논의하던 첫 대화에서, 우주로1216 운영팀에서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도서관 속 새로운 공간이 생긴만큼, 찾아오는 친구들이 새롭고 낯선 경험을 시도해봤으면 좋겠어요. 쉬거나 친구들과 수다 떨거나 책을 읽는 것 외에 다양한 경험을 주고 싶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슥슥존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스토리스튜디오에서의 재료들이 좀 충격적이었어요. 잘 만들어진 재료들로 만들어 보는 작업도 필요하겠지만 정형화된 재료보다, 날 것 그대로의 재료도 있다면 더 자유롭고 다양한 표현을 해볼 수 있다는 걸 눈으로 느꼈거든요. 꼭 해보고 싶어요!"


"슥슥존은 저의 숙원사업이에요."


실험은 시작하기까지도 물론 에너지가 많이 들지만, 시작한 후에 에너지가 훨씬 더 많이 들어갑니다. 반응을 확인하며 계속 세팅값을 바꾸고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치지 않고 꾸준히 시도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100m 달리기보단 42.195km 마라톤에 가깝죠. (잠시 스포를 하자면) 슥슥존을 바꾸고 6개월이 지난 지금, 우주로1216 운영팀에서는 초기의 호흡을 밀도 있게 유지해가며 그동안 단련해온 근육으로 운영팀만의 실험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숙원사업' 정도의 열정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모습은 절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대로' 말고 '그에 맞게'


슥슥존에 스토리스튜디오를 확산하는 대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올해 1월입니다. KTX를 타고 전주로 내려가 우주로1216에 찾아갔습니다. 현재의 슥슥존을 살펴보고 어떤 방향으로 실험해볼지 이용자를 관찰하고, 운영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입니다. 미팅 후에는 운영팀과 이용자 관찰 기록을 시작해서 모니터링하고 어떤 콘텐츠를 넣을지 약 2달 간의 기획, 조정 과정을 거쳤습니다. (슥슥존을 진단했던 내용을 포함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글에서 소개할게요.)


지난 1월의 이용자 관찰 모니터링 기록과 창작실 재료 리스트
꾸미기 작업 위주였던 1월의 슥슥존 / 서랍 속 재료가 잘 보이지 않아 일일히 열어야했던 모습
슥슥존에 최적화된 재료바를 구성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흔적들


그래서 최종적으로 투입한 콘텐츠는 아래와 같습니다. 각각에 대한 세부적인 소개는 다음 글에서 다루고 어떤 고민과 의도를 담았는지만 먼저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재료바


재료바는 스토리스튜디오의 심장과도 같은 핵심 콘텐츠입니다. 스토리스튜디오 초기 세팅부터 2020년 한 해 동안 전문가팀 '페이퍼풀즈 (서울연필)'와 함께 조형, 뼈대, 연결 등 다양한 작업 방식을 고려해 공들여 실험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스토리스튜디오의 재료바 실험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매월 운영팀과 함께 스토리스튜디오의 모든 작업물들을 분석, 모니터링하며 작업을 촉진하기 위해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스토리스튜디오의 재료바를 투입하면서 우주로1216에 확산할 때 추가로 고려했던 요소는 지금까지 운영했던 슥슥존 재료바와의 조화 및 공공도서관으로서 지속적으로 수급 가능한 재료인지 여부입니다. 오픈 이후 슥슥존을 이용해온 우주인들의 작업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작업을 제안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도서구입비와 달리, '재료비'라는 항목이 예산상 존재하지 않는 공공도서관의 현실에 맞게 운영되기 위해서 어떤 재료바가 되어야할지 우주로1216팀과 함께 고민했습니다. 재활용 재료의 비중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지, 지역 문방구에서 수급할 수 있으면서 작업을 촉진할 수 있는 재료는 무엇인지, 제한된 예산 하에서 최적화된 조합은 무엇인지 지금도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류함


재료바와 함께 작업을 촉진하는 중요한 콘텐츠입니다. 지류 또한 예산 제약을 고려해 공공도서관에서 직접 수급 가능한 재활용 재료를 포함시켰고, 조형작업용 지류와 채색작업용 지류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균형 있게 배치하고자 신경 썼습니다. 또한 같은 박스지더라도 어떤 박스지인지, 어떻게 재단해두는지에 따라 사용성이 달라지는 지점을 스토리스튜디오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해당 노하우(?!)를 전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길목형 프로그램 


작업, 창작,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들에게도 잘 쓰이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잘 기획된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전문가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영역이기도 합니다. 스토리스튜디오에서는 작업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작업의 물꼬를 터주는, '시작을 돕는' 콘텐츠인 길목형 프로그램을 파트너 '페이퍼풀즈(서울연필)'와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있습니다. 이번 우주로1216의 길목형 프로그램도 페이퍼풀즈에 요청하여 스토리스튜디오에서 약 6개월 이상 파일럿으로 운영한 페이퍼풀즈의 길목형 프로그램('무국적 건축')을 공공도서관에 맞게 리디자인하여 투입했습니다. 페이퍼풀즈가 기획한 첫 번째 길목형 프로그램의 이름은 '이야기를 짓는 건축가'입니다. 각종 공간에 대한 상을 불러일으키는 책 속 텍스트를 이야기 카드로 발견하고, 다양한 종이 조각 재료와 도구로 직접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으로 설치되자마자 이용자들의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스토리스튜디오를 확산한다는 것은 '그대로 이식'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스토리스튜디오의 콘텐츠를 우주로1216에 확산할 때 가장 많이 염두에 둔 생각입니다. 스토리스튜디오의 콘텐츠는 '작업, 창작, 표현'이라는 낯선 경험을 촉진하는 콘텐츠이기 때문에 각 공간의 이용자와 운영자에게 맞는 방향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주로1216의 이용자(우주인)들은 스토리스튜디오 이용자 (스스러)들과 다르고, 운영팀도 각자의 성향, 강점이 다르고 공공도서관이라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최적화'된 세팅을 찾는 것이 중요한 거죠. 예를 들면 스토리스튜디오의 재료바를 확산할 때도, 1-30번까지 스토리스튜디오의 재료를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들이 꾸준히 잘 반응할만한 재료, 도구면서 공공도서관으로서 운영팀에서 지속적으로 수급 가능한 콘텐츠여야 합니다. 그래서 스토리스튜디오의 실험값을 기반으로 하되, 우주로1216에게 맞는 슥슥존 콘텐츠를 도출해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슥슥존이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투명하게 재료가 다 보이는 슥슥존 재료바 / 서랍채로 가져가 작업하는 이용자들
지류함이 생기고 조형 작업을 위해 박스지를 가져다가 직접 재단하며 쓰는 모습
길목형 프로그램 '이야기를 짓는 건축가'의 폭발적인 인기


각각의 콘텐츠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따로 소개하겠습니다.



콘텐츠란, 프로그램이 아닌 경험과 환경 


슥슥존 재료바, 지류함, 그리고 길목형 프로그램까지. 결과적으로 슥슥존에 투입된 스토리스튜디오 기반의 콘텐츠는 총 3가지 입니다. 그러나 이를 개수로 세긴 어색합니다. 이번에 확산된 콘텐츠가 '프로그램 단위'의 콘텐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토리스튜디오에서 확산하는 콘텐츠는 이용자가 누구든지, 정해진 시간이나 짜여진 커리큘럼 없이 우주로1216이라는 물리적 환경 속에서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는 '경험의 단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콘텐츠가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획 의도에 맞게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우주인들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함께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지금까지 실시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콘텐츠 실험의 최종 목표는 이용자가 반응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니까요.


환경을 만드는 노력은 공간, 가구 배치일 수도 있고, 새로운 이용수칙일 수도 있고, 운영자들의 업무 프로세스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슥슥존에 콘텐츠가 바뀌면서 가구 배치도 달라졌고 공간 곳곳을 활용하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또한 어디서든 본인의 작업물을 전시할 수 있고 서로의 작업물을 존중해주는 새로운 원칙이 생겼습니다. 운영자들은 매일매일 이용자들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월말에 한자리에 모여 회고하면서 다음 달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그래서 컬렉션을 만들기도 하고, 새로운 워크숍을 기획하기도 합니다. 


가구 배치를 바꿔보기도 하고
마음껏 채색할 수 있는 공간을 새로 만들기도 하고
공간 곳곳에 전시된 작업물 덕분에 다음 작업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작업물, 작업 풍경은 정말 훌륭한 (비언어적) 데이터입니다.


슥슥존에 스토리스튜디오 콘텐츠를 확산하면서 가장 노력했던 것은 아이들의 반응을 관찰, 기록하고 데이터화해서 현재 콘텐츠를 모니터링하고 다음 콘텐츠를 기획, 운영하는 프로세스를 내재화하는 일입니다. 스토리스튜디오의 운영팀이 가장 신경 쓰는 업무이기도 합니다. 작업물, 작업 풍경은 정말 훌륭한 데이터입니다. 특히 언어 기반의(?!) 대화를 거부하기 시작하는 트윈세대 친구들이 비언어적으로 표현하게 만드는 좋은 마중물이 됩니다. 작업물을 자세히 보면, 혹은 작업물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보면 친구들의 관심사, 고민, 생각 등 다양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발견한 이야기로 콘텐츠를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이용자 중심의 큐레이션이란 이렇게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약 6개월간 이용자(우주인)들이 만들었던 작업물들


작업물 연계 컬렉션의 첫 시도. 고양이가 머무는 책


지금까지 6개월을 돌아보며, 

슥슥존의 콘텐츠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슥슥존에 스토리스튜디오 콘텐츠를 확산한 지 딱 6개월이 되어갑니다. 지금까지 500개가 넘는 작업물이 나왔고 슥슥존 이용시간만 3,600시간이 넘게 쌓였습니다. 6번의 월간 리뷰를 거치며 운영팀이 손수 기록한 100장 넘는 문서량의 관찰, 기록을 회고하고 분석해가며 노력한 덕분에 이용자도 운영자도 우주로1216에서 만나는 풍경이, 경험이 매일매일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슥슥존의 재료, 도구로 곰곰존, 쿵쿵존에서도 작업을 하고
슥슥존의 작업물이 톡톡존, 쿵쿵존, 곰곰존까지 전시되어 놀이의 재료가 되고
작업을 위한 영감을 찾다가 책을 집어들기도 하고


슥슥존의 변화는 슥슥존 안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우주로1216가 만들어갈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슥슥존의 콘텐츠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과연 어떤 포물선을 그리며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까요? 응원의 마음을 담아, 함께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6개월의 대장정을 일단락했던 8월의 월간 리뷰 사진으로 마무리합니다. (조이, 써니 화이팅!)



글: 김정민 (도서문화재단 씨앗, 콘텐츠랩 실장)

사진: 우주로1216 운영팀





스토리스튜디오가 궁금하다면?

스토리스튜디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hello_storystudio


우주로1216이 궁금하다면?

우주로1216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_oozooro1216/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 한 페이퍼풀즈(서울연필)가 궁금하다면?

페이퍼풀즈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aperpools_/?hl=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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