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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진 Aug 16. 2019

인생을 바꾼 학사경고

2003년 상명대학교 한국어문학과에 입학했다.

학기 내내 부과대, 부학회장을 지냈고 광고 동아리 부회장도 하며 누구보다 바쁘게 대학생활을 보냈다.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지라 학자금 대출도 받았고 장학금을 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03학번 동기들은 그 어느 학번보다 학구열이 높았다. 그래서 장학금을 타려면 평점 4.3 이상은 돼야 후보권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나도 돈 한 푼이 귀했던 터라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노력했다.  그렇게 장학금도 받고 대외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4년을 보냈다. 


2007년 2월, 그러나 나는 졸업하지 못했다.

1학년 때부터 열심히 학점을 채워둔 덕에 마지막 학기 8학점은 사이버강의로 신청했었다. 출석만 하면 문제없을 거라 생각해서 이주일에 한 번씩 몰아서 강의를 들었다. 그랬더니 결석이 쌓여 F학점이 떴고 학사경고까지 받게 되는 사단이 생겼다. 다른 것도 아니고 출석을 잘못해서 학사경고를 받았다니 너무 창피하고 스스로가 한심했다. 결국 졸업식날 학교를 가지 않았고 동기들의 졸업 또한 축하해줄 수 없었다. 그렇게 03학번 동기들 중 나 혼자 가을학기를 다니게 되었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사이버강의 대신 학교를 다니며 강의를 들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학교에 나가면서 교양수업을 들었고 오고 가며 전공 선생님들을 만났다. (우리 학과는 교수님들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하루는 학과장 선생님이 나에게 면담을 요청하셨다. 4년 내내 한 번도 없던 면담이라 잔뜩 긴장한 채 선생님을 만났다. 


"혼자 학교 다니기 힘들지 않니?"

    "괜찮아요. 아무도 없으니까 차라리 좀 편해요. 신경 쓸 사람도 없고요."

"졸업하고 나서 진로는 정했니?"

    "집에서는 국어교사를 했으면 하시는데... 전 별로 생각이 없어요."

"너는 뭘 하고 싶은데?"

    "카피라이터나 방송작가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사실 너무 막막해요." 

"여기저기 좀 알아봐야겠구나"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못난 제자라서 죄송하고요" 


대충 이런 내용의 면담이 오갔다. 학과장 선생님은 내 어깨를 두드리시며 옅게 웃어주셨다. 그 웃음이 꽤나 든든했다. 대학시절 내내 집에서는 안정적인 직업인 교사를 원했으나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는데 소질이 없다는 것을 진즉에 알았다. 광고 동아리를 하면서 광고나 방송계에 막연한 동경만 갖고 있던 차였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는 광고 전공도 없었고 방송 전공도 없었다. 그저 관련 교양수업들을 들으면서 흥미만 있던 때였다. 그렇게 한 학기를 보내고 2007년 8월 졸업을 했다. (물론 이 때도 졸업식은 가지 않았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내 인생이 새롭게 펼쳐질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집에서는 이미 남들보다 뒤처졌다고 여기던 때였고 늘 눈칫밥에 시달렸다. 억지로 하는 취업준비는 정말 고역이었다. 아침마다 강남역의 토익학원에 다니고 토익 수업이 끝나면 토익학원 아래층에 있는 컴퓨터 DOS 자격증 수업을 들었다. 관심도 없는 은행, 관공서에 이력서를 넣었었고 보기 좋게 탈락하던 걸 반복한 5개월. 그러던 중 학과장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다른 학과 교수님 지인이 방송 프로덕션을 하는데 사람을 구한다는데 지원해볼래?"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막막했던 취업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결과가 어떻든 지원하고 싶었다. 바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서 학과장 선생님께 전달했다. 며칠 후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아직 합격한 것도 아니건만 나는 내가 당장에라도 방송작가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2008년 1월의 마지막 날, 방송 프로덕션으로 첫 면접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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