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없어도, 이제는 괜찮다

엄마가 없다는 이유로 눈치 봐야 했던 나날들

by Dear Mi

나는 초등학교 친구가 많지 않다.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 엄마가 돌아가시고, 삶의 패턴이 완전히 바뀐 나는 여느 또래들처럼 어울리지 못했다.

초등학교 입학부터 내내 사총사처럼 붙어 다녔던 친구들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우리들을 따라 엄마들도 매일 만났고, 직장 동료 혹은 동네 친구와 같은 사이가 되었다.

요즘 말로는 '공동육아'의 개념일까.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한 두 번 정도는 친구 엄마들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반찬을 해주신다거나, 속옷을 사다주시는 정도.

그게 몇 번이었든 남을 챙긴다는 것 자체만으로 감사할 따름이지만,

당장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내게 그 정도는 금방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다.


언제 어디서든 나만 보면 눈물을 흘리던 어른들.

어딜 가나 어린 나를 불쌍히 여기는 동정 어린 시선들.

그 시선 속에서 나는 힘들고 화나면 웃어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한 반년쯤 지났을까, 그 친구들이 스키장에 간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걸 왜 나만 몰랐지? 싶던 찰나, 이런 말이 돌아왔다.

"너는 엄마가 없잖아. 그런 데는 보호자가 필요한데, 너는 보호자가 없으니 이번엔 같이 갈 수가 없겠다."

그 말을 듣자마자 떠오른 생각은 두 가지.

야박하지만 틀린 말은 없었고,

수개월을 모든 가족들이 슬픔에만 빠져있어 간과했던 현실이었다.

내 나이가 불과 몇 살인 건 중요치 않다. 내가 이제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엔 '평생' 엄마가 없을 것이다.


그날부터 나는 어른들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게 가족이라도.

그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그때 열두 살짜리 아이에겐 충분히 상처였다.

어른이 된 지금은, 그들을 조금 탓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일 내게 똑같은 자식이 있더라면, 그게 내 자식이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될 테니.


그 이후로 나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어쩔 수 없이 소문이 퍼졌었지만,

중학교 때는 절반 정도, 고등학교 때는 반의 반 정도로 줄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

나는 연인에게 조차도 굳이 얘기하지 않았다.


표정, 말투, 화법, 습관, 성격, 성향, 가치관, 취향, 차림새까지

나의 모든 것이 내가 살아온 환경과 모든 경험을 담고 있다.

30년을 넘게 살아온 나는 이미 '나'라는 사람이 되었음에도,

엄마가 안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모든 이유가 '나'여서가 아니라 '엄마가 없어서'가 되어버린다.

물론 당연히 상관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나는 그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돌봐줄 엄마가 없어서"라는 말을 듣지 않게 살림도, 꾸미기도, 작은 습관도 부지런히 챙겼고,

엄마 몫까지 아빠와 오빠와 더 많은 유대를 쌓았다.

내 잘못이 아니지만 내 치부가 되어버리는 사회 속에서,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 심리를 공부했고

그 마저도 너무 힘들 때면 나에게 편지를 쓰며 버텼다.


덕분에 지금의 나는

"젊은 친구가 연륜이 있네"라는 소리를 종종 들으며,

음식도 잘하고 경제관념도 밝은 살림꾼이며 일도 공부도 외모도 놓치지 않는 '드문 사람'이 되었다.

사람에게 상처가 많은 대신 사람 보는 눈을 키웠고,

엄마 몫을 스스로 해왔기에 뭐든 잘하는 만능이 생겼고,

소문과 선입견의 중심에서 더 당당하고 당돌한 사람이 되었다.


아직도 가끔 서글프고 억울해질 때면 스스로에게 말한다.

"내 잘못이 아니야."

엄마라는 존재가 아직도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버텨온 나에게 기특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꽤 괜찮게 사는 내 인생.

그래서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그래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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