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생일상
일 년에 하루,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 축하받는, 내가 주인공이 되는 날.
생일은 누구에게나 설레고 소중한 날이다.
생일 아침이면 부엌에선 고소한 미역국 냄새가 퍼진다. 식탁 위엔 잡채나 갈비 같은 평소와 다른 음식이 올라오기도 하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케이크에 촛불을 불며 외식을 하기도 한다.
생일을 핑계로 친구들과 파티를 하기도 하고, 내내 갖고 싶었던 값비싼 선물을 당당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 생일을 한두 번쯤은 겪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또렷이 기억하는 생일은 열두 번째 생일.
엄마 장례식이 끝난 열흘 뒤였다.
빕스나 베니건스, 아웃백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이 유행하던 시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피자, 치킨, 파스타가 종류별로 늘어져있고, 엄마들의 수다를 책임질 디저트와 커피가 구비된 샐러드바는 생일파티 단골 명소였다. 그러나 초대할 호스트가 없었다.
아이들 생일파티를 가본 적 없던 아빠는 갑작스레 다가온 딸의 생일에 어쩔 줄 몰라했다.
요리도 식당도 모르는 40대 남자가 선택한 건 중화요리 전문점.
딸아이의 친구 몇을 불러다 놓고, 그는 평소에 먹어보지도 못한 요리류를 전부 시켰다.
거실에 명절에나 꺼낼 커다란 식탁을 꺼내놓고 그 위를 중화요리로 빼곡하게 채웠다.
식탁이 채워질수록 엄마의 빈자리는 더욱 선명해졌다. 미역국 대신 짬뽕을, 갈비 대신 탕수육을 먹었던 나의 생일은 아무도 웃지 않는 생일이었다.
집안 가득 배어버린 중국 음식 냄새는 며칠을 울렸다.
그날 이후, 내 생일은 점점 더 조용해졌다.
내 생일은 미역국도, 외식도, 선물도 없이 평범하게 흘려보냈다.
아니 그 어떤 날보다 평범하려고 더 노력했다.
가족의 죽음이라는 게 이런 걸까.
어느 저녁 서늘한 바람에 가을을 맞이하고 횡단보도 앞 쨍한 햇볕에 눈을 가릴 때면 여름을 느끼듯이,
사계절을 잘 보내다가도 엄마 기일이 다가오는 계절이면 괜스레 추운 날을 지낸다.
말수대신 눈물이 늘어나는 며칠을 보내고 나면 생일이 된다.
생일밤이 지나야 비로소 엄마의 계절이 끝난다. 그 뒤로 다시 사계절을 버틴다.
십 수년이 지나도 여전히 내 생일은 기쁘지 않다.
괜찮은 척해도 어딘가 쓸쓸하고 괜히 우울해지는 날.
매년 기쁘지 않은 생일을 조용히 통과하며,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나는, 괜찮은 걸까?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질문에 정확히 답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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