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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율 Aug 26. 2020

실 못 찾는 사람

  나는 공장에서 ‘딸내미’로 통했다.


  “딸내미, 이것 좀 엄마 갖다 줘.”

  “딸내미, 고무줄 좀 같이 풀자.”

  “딸내미, 실 좀 찾아봐.”


  공장에서 유일하게 내 이름을 알고 부르는 건 엄마뿐. 사장님은 나를 딱히 부를 일이 없었지만, 사모님과 이모들은 나를 부를 일이 제법 잦았다. 나는 엄마의 손 대신(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잔일을 도맡아 공장 이리저리 불려 다녔다. 미싱과 인터로크를 잘 못 다뤘기 때문에 기계 앞에 앉기보다는 랍빠로 끈 뽑기, 카우스(소매) 만들기, 에리(옷깃) 뒤집기, 옷 검수해서 개어놓기 등의 일을 했다. 사모님을 도와 공장 한쪽에서 먹는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포함이었다. 이렇듯 공장 곳곳엔 내 생각보다 다양한 잔업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실 찾기는 내가 제일 하기 싫어하는 작업이자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매번 실 앞에 서면 좌절하기 바빴다. 옷감에 맞는 실을 잘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장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눈에 가장 먼저 띄었던 것이 곳곳에 쌓여있는 엄청난 양의 실이었다. 비닐봉지에 담겨 기계와 책상 밑에, 종이상자 안에, 여기저기 꾸깃꾸깃 쑤셔 박혀있던 실뭉치들. 그것들을 보며 과연 저렇게 많은 실이 다 필요할까 싶었는데 당연히, 다 필요했다. 주어지는 일감에 따라 옷감의 색이 다양했고 거기에 맞는 실을 찾아 작업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하얀색 실과 검정색 실을 제외(검정색 실도 간혹 진청색 실과 헷갈려서 혼났다)하고는 번번이 실을 제대로 찾지 못해 금세 머쓱해졌다.



  “엄마, 나 도저히 못 찾겠어.”

  “그냥 비슷한 거 가져오면 돼.”

  “그것도 비슷해서 가져온 거야.”

  “…….”     


  이 색이랑 그 색은 같은 색 같다고 우기면, 엄마는 어디선가 내가 찾은 색깔과 다른 실을 던져주곤 미싱을 돌렸다. 미싱에서 돌아가는 실의 개수는 (밑실을 감는 실을 포함해) 2개, 인터로크에서 돌아가는 실의 개수는 5개다. 나는 옷감이 달라질 때마다 총 6, 7개의 실을 찾아 돌아다녀야 했는데, 대부분은 그걸 두고 보지 못한 엄마가 움직여야만 했다. 나는 점점 기가 죽었다. 나는 흰색 원단과 검은색 원단이 재단될 때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다가도 흔하지 않은 노란색 원단이, 연두색, 분홍색 원단이 공장으로 배달될 때면 윽윽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찾아봐도 비슷한 실이 없다고 이야기해도 다른 사람 손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실들. 나는 미싱에 실을 바꿔 다는 손들을 보며 속으로 ‘전혀 안 비슷해!’라고 생각하며 시다를 했다. 그런데 옷이 완성되어 나오면 옷에 정말 딱 맞는 실 색깔이었다! 아, 말도 안 돼. 그 뒤로 나는 내 눈썰미를 믿지 못하고 이 실, 저 실, 비슷해 보이는 실이면 모조리 옷감에 갖다 대보기 시작했다.




  든든한 아군인 엄마가 있었지만 어쩐지 공장에서 먹고 일하는 시간이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누구나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면 적응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을 거치지만 나는 그게 좀 긴 편에 속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봉제 공장으로 출퇴근한다고 말하면 거긴 뭐 하는 곳이냐는 답이 쉽게 돌아왔다. 친구들에게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면 대화를 하다가도 그래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되묻는 경우가 생겼다. 비교적 엄마를 통해서 익숙하긴 하지만 나 역시 접하기 쉽지 않았던, 봉제 공장. 이전처럼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사무를 보는 게 아닌, 차가운 기계를 돌리는 일. 적응이 쉬울 리가 없었다. 나는 아직 실 하나 제대로 찾지 못해 쩔쩔매고, 여전히 이 일을 나의 진짜 직업으로 생각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그래서 ‘딸내미’로 불리면서도 난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고 불편했다. 어딘지 모르게 과하게 귀여운 느낌도 들고. 나 외에 공장의 모든 사람은 이곳에 딱 맞는 실 같고 편안해 보였다.


  “당연하지. 너 말고 전부 30년 차 기술자들인데.”


  내 이야기를 듣고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그리고 지금은 일을 배우는 일에만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다른 사람들도 너랑 일하는 데에 적응하려면 꽤 걸릴 거야.”


  이렇게 덧붙이며 말이다. 맞다. 공장 사람들에게도 나의 등장은 이제껏 사용해보지 않은 새로운 실을 찾아낸 듯한 느낌일 것이다. 공장 사람들 모두 실을 찾지 못하는 나에게 옷감에 완벽하게 맞는 실은 없다고 했다. 이것저것 대보고 맞춰보고, 적응하다 보면 그제야 눈에 띄는 것들이 생긴다고. 그때 낚아내듯 집어내면 된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내 몸에 꼭 맞는 공간이란, 직업, 사람이란 없다는 것을 배운다. 어수룩하기만 한 얼굴은 잠시 지우고 그와 나 사이에 비슷한 점들을 찾아와 악수를 건네는 과정이 있어야만 우리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딸내미'는 그래서 외면할 수 없는 이름이다. 공장 사람들이 나에게 건네는 악수 같은 거니까. 나는 여기선 딸내미로 불리고 저기선 제 이름으로 불리는 봉제 공장의 새로운 사람. 두 이름은 전혀 안 통하는 이름 같지만, 어느새 나를 아껴주는 부름이라는 점에서 모두 결이 맞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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