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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율 Aug 26. 2020

가위, 쪽가위, 바늘 못 만지는 사람

  미싱사가 재단용 가위와 쪽가위, 바늘 만지기를 무서워한다면?


  “망한 거지.”


  안타깝지만 이 말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다. 처음엔 나도 이럴 줄 몰랐다. 어느 날, 설거지를 하다가 가위 날에 손가락을 베였는데 피가 살짝 보일 정도였다. 설거지가 오늘이 처음도 아니고 행동이 어설프지도 않았는데, 가만 앉아 생각해봐도 좀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어쩐지 나는 날카로운 쇠붙이를 만지기가 싫어졌다. 공포심이 생긴 것이다. 처음엔 그것을 공포라고 느끼지 못했다. 그냥 만지기 꺼려지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런데 어느 날엔 부엌에 있는 가위나 칼 같은 것들이 날 향해 달려들 것만 같았다. 만지면 내 손을 베거나 살을 뚫고 꽂힐 것 같았다. 점점 짙어지는 공포심에 나는 담당 교수님께 이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최근에 불안이 더 커졌다고 말이다. 교수님은 담담한 얼굴로 그럴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불안할 때 먹는 약을 추가로 주겠다고 했다.



  공장에서 꼭 쓰여야 하는 물건인 가위, 쪽가위, 바늘은 그것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날 긴장시켰다. 재단용 가위는 날이 너무 잘 들어서 내 손가락도 거뜬히 잘라낼 수 있을 것 같고, 미싱 바늘은 페달을 한 번이라도 잘못 밟았다간 내 손톱을 그대로 관통할 것 같다. 특히 쪽가위, 얘는 내가 수시로 쓰는 도구인데 날이 잘 들면 드는대로, 날이 잘 들지 않으면 않는대로 나를 괴롭혔다. 특히 날이 잘 들지 않은 쪽가위는 최악이다. 잔 실이 잘 잘리지 않아서 여러 번 가위질할 때면 그 무딘 날이 내 손가락을 찝기도 하고 스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고 그럴 때마다 약을 먹을 수도 없고 말이다.


  하루는 시다 작업을 하다가 엄마에게 이런 내 상황을 털어놓은 적 있다.


  “엄마, 나 사실은 가위 같은 거 잘 못 만지겠어.”

  “그런 애가 이 일을 어떻게 해?”


  엄마는 박음질을 하고 있는 옷감에 시선을 꽂은 채 나에게 물었다.


  “나도 잘 몰라…….”


  엄마는 내 투정에 과거 자신의 손톱을 뚫고 들어간 바늘 이야기를 해줬다. 그날은 그렇게 될 일이었던 것처럼 뭘 해도 풀리지 않는 날이었다고 했다. 바늘이 손톱에 그대로 박혀버린 순간, 엄마는 급하게 손가락을 부여잡고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고 했다. 바늘을 뽑고 치료를 받고 파상풍 주사를 맞았다고.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듣던 이모들은 곧 자신들의 경험담도 풀어놓기 시작했는데, 와! 정말 고문이었다! 엄마와 이모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마친 뒤, 바늘에 손 한 번씩은 찢겨봐야 진정한 미싱사가 된 거라고 말하며 깔깔 웃었다. 그런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난 이들이 ‘찐’ 기술자임을 느꼈다.




  몇 년 전 상담치료를 받았을 때, 나는 불안지수가 남들보다 더 높은 편에 속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 전 이제 어떡해요, 선생님?”

  “조금 더 높은 것뿐이에요. 겁먹을 필요는 없어요.”


  선생님은 나를 다독이며 불안을 줄여나가는 연습을 해보자고 했다. 연습을 통해서 충분히 불안을 통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수시로 치솟는 불안의 여진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 그 말의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았다. 불안을 완벽하게 이기는 방법. 나에겐 그것이 필요했다.


  그냥 얌전히 미싱만 돌리다가 귀가하고 싶은 나의 마음과는 달리 나는 위험하게도 가위와 쪽가위를 자주 바닥에 떨어뜨렸고 바늘을 부러뜨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페달을 밟고 이렇게 뒤늦게 노루발을 들어야지, 안 그러면 바늘 다 부러져! 엄마는 미싱 바늘을 바꿔 끼우지 못하는 나 대신 번거롭게 매번 하던 일을 멈추고 바늘을 바꿔줘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도 ‘찐’으로 당황했던 그날이 찾아오고 말았다.


  그날은 오전 내내 미싱 앞에 앉아 카우스(소매)를 만들고 있었다. 엄마처럼 운 나쁜 일이 이어지진 않았다. 평범하게 출근해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작업을 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왔고, 사모님이 음식을 차려와 식탁에 내려놓기에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옷에 묻은 실밥을 훌훌 털어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순간적으로 오른손의 약지가 바늘에 스쳐 살이 찢겨나갔다. 잠깐 따끔했지만 난 피가 손바닥으로 철철 흐르기 전까지 내가 다쳤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뒤늦게 내 피를 본 엄마가 나의 둔함을 타박하며 휴지를 몇 장 뽑아 나에게 줬을 뿐이다. 얼떨떨한 얼굴로 찢긴 자리에 약을 바르고 손가락에 밴드를 붙여 지혈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이 일을 관두지 않는 이상 나는 앞으로도 크고 작게 날카로운 것에 의해서 다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 이 불안과 내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모들이 나에게 드디어 너도 진짜 미싱사가 다 되었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나는 속상해하는 엄마에게 앞으로 더 조심하겠다고 약속하고 밥을 먹었다. 왜인지 바위 같았던 불안이 작은 돌멩이처럼 작고 약해졌음을 느꼈다.


  불안을 완벽하게 이기는 방법이 존재할까? 나는 아직도 가위, 쪽가위, 바늘이 무섭다. 그 때문에 악몽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완벽하게 불안을 제거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로봇이 아니므로, 이 일을 쉽게 그만두지 않을 것이므로. 나는 나의 불안을 더이상 밀쳐내기만 하지 않기로 한다. 불안을 껴안고 그것과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다시 적고 싶다.


  미싱사가 재단용 가위와 쪽가위, 바늘 만지기를 무서워한다면?


  “계속 무서워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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