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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율 Aug 29. 2020

일자 박기 못하는 사람

  그날 내가 싸워야 할 상대는 어깨가 멜빵 모양인 원피스였다. 이렇게 얘기하면 싸울 것까지 있냐고 친구는 웃었지만, 난 그즈음 전투적으로 미싱 돌리기에 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이 꽤나 정확했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몰두하건 말건 아직 미싱을 돌린 지 두 달도 채 안 된 나는 바늘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일 정도의 느린 속도로 일자 박기를 했다. 원단이 다쳐도 상관없는 기레빠시(자투리 원단)에 연습할 때는 좀 더 속도가 났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속도는 점차 빨라질 것이고 무엇보다 정확하게 잘 박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날 내가 싸워야 할 상대는 멜빵 원피스, 정확히는 멜빵의 어깨끈과 원피스의 허리끈을 만들어야 했다. 길게 잘린 원단을 가로로 끝을 살짝 접어 다림질하고 그걸 반으로 다시 접어 다림질하면 내가 일자 박기를 하기 전의 원단 모양이 된다.


  일자 박기를 할 때 도움을 받는 도구들이 있는데, 노루발과 자석 조기가 대표적이다. 노루발은 미싱 바늘이 오르내릴 때 옷감을 알맞게 눌러 주는 부속품이다. 종류가 다양하고 그에 따라 말아 박기나 일자 박기, 지퍼 달기를 쉽게 할 수 있게 한다. 자석 조기(마그네틱 가이드 라이너)는 말 그대로 일자 박기에 도움을 주는 자석 형태의 도구인데, 일반적으로 노루발 오른편에 붙여놓고 사용했다. 엄마는 어깨끈과 허리끈을 만들려는 나에게 자석 조기를 노루발 옆에 대어주며 그대로 쭉 박으면 된다고 얘기했다. 엄마의 쉬운 설명을 알아듣고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며 나는 나의 승리를 쉽게 예감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반으로 접힌 원단이 페달을 밟을 때마다 울퉁불퉁 겹치고 끝이 맞지 않은 채 박혀버렸기 때문이다. 어느새 내가 박은 실보다 뜯어낸 실의 길이가 점점 더 길어지고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일자로 걷는 데에 집착했다. (누구나 해봤을 놀이인) 길가에 있는 턱에 수시로 올라 양팔을 벌리고 서서 걷는 연습을 한다던지, 보도블록의 일자 금을 그대로 밟으며 걸으려고 노력했다.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 그렇게 하면 예쁜 모양으로 걸음을 걸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 게 떠오른다. 그것 외에도 나는 미술 시간에 일자 선을 그을 때 꼭 자를 대고 그린다던지, 냉장고 안에 늘어서 있는 반찬 통이나 우유갑도 각을 잡아 일자로 만든다던지, 글씨를 쓸 땐 ‘ㅇ’와 ‘ㅎ’를 제외한 자음과 모음을 일자 반듯하게 적어내야만 직성이 풀렸다. 어린 내 일상 속 마구마구 그어지는 일자 앞에서 나는 흡족했고 무심한 남동생과 친구들, 엄마의 손에 의해 그 선이 무너지지 않게 눈에 불을 켜고 조심했다.


  강박이 있냐는 말을 처음 들어본 건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통해서였다. 네? 그때의 나는 강박이 있냐는 말이 기분 좋게 들리지 않았다. 정서적으로 한창 예민했을 때였고, 학기 초라 내 나름대로 담임선생님을 탐색하고 있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강박이 있느냐 마느냐 소리를 하는 건지 싶어서, 또 당황한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나는 ‘아니요.’라고 짧게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을 피해 복도로 나섰다. 좀 더 지내보고 나서야 인정했지만, 담임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보다 나를 꿰뚫는 능력이 좋았다. 나는 일자처럼 정확하게 맞물리지 않는 것들을 과하게 싫어했다. 16년, 일자 외길 인생. 반듯하지 않은 것은 어설프고 엉망이라고 생각했다. 각이 나가고 둥글게 그어지는 게 가끔은 나의 진짜 마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담임선생님은 다행히 내가 좋아하는 과목을 담당하는 선생님이라서 내가 미워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난 그 선생님을 마음 다해 저주했을 거다.




  그러나 나의 일자 사랑에도, 여러 부속품의 도움을 받아도 일자 박기는 너무너무 어려웠다. 분명 기레빠시로 연습했는데, 조기에 대고 박기만 하면 되는데, 나는 스스로 당황해서 느린 속도가 자꾸자꾸 더 느려짐을 느꼈다. 그냥 그대로 박으면 된다니까. 엄마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왜 내가 잘 못하는 줄 알아?”

  “왜?”

  “엄마는 미싱 한 지 삼십 년이 훌쩍 넘었고 난 아직 두 달밖에 안 됐기 때문이야.”


  나는 간단한 공식을 이야기하듯 엄마한테 이야기했다. 왜 못하냐고 타박하지 말라고 말이다. 이번엔 엄마의 ‘그냥’ 소리도 먹히지 않았다.


  오늘의 전적. 완벽한 전패. 순간 그 생각이 퍼뜩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페달을 확 밟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옷감이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되는대로 마구 박아버리고 싶은 비뚤어진 마음이 확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그래 버리고 말았다. 내 못된 성질머리가 한껏 치솟는 걸 느끼며 페달을 있는 힘껏 밟아버린 것이다.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 뜨니 그대로 쭉 밀리며 박힌 원단이 울고 있었고 그걸 보면서 나도 울고 싶었다. 내 옆에 앉아있는 엄마는 여전히 바쁜 손놀림으로 옷감을 박고 있었다.


  “나도 가끔 비뚤게 박을 때가 있어.”


  어느새 엄마는 심통을 부리며 실을 뜯는 나를 지켜보며 말했다. 삼십 년이 훌쩍 넘어도 실수라는 걸 하는 걸까. 사실 오늘 나의 태도는 실수라고 하기엔 거짓이 있다. 나는 말없이 일부러 비뚤게 박은 실을 뜯어냈다. 엄마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다가 나에게 다른 일감을 주었다. 에리(옷깃)를 뒤집는 일이었다.


  나는 이제 그만 미싱에서 일어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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