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구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통근 시간과 거리다. 나는 뼛속까지 집순이로 평소에도 사람들이 많은 것보다는 혼자가 편하고, 밖으로 돌아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다 친구들과 만나러 도심 한가운데까지 나가면 도착하기도 전에 진이 다 빠졌다. 그런 나에게 매일 지옥철로 출퇴근을 하는 일상은 꿈도 꾸기 싫었다. 다행히 지금까지 다닌 직장은 수업 때문에 오후 출근을 한다거나 앉아서 갈 수 있는 통근버스가 있는 식이었다. 때문에 엄마를 따라다니기 시작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은 미싱이 아니라 9 to 6 근무조건에 50분 정도 걸리는 통근거리였다. 예로부터 인생 선배들이 통근시간과 거리에 대해 무엇이라고 했는가. 삶의 질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나는 자꾸 자신이 없어졌는데 그때마다 통장 잔고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1년 5개월 만의 출근이었다. 긴장한 마음에 잠을 설친 나는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사람들이 빨려 들어가는 창동역의 커다란 입구를 바라보자니 드디어 출근이라는 게 실감 났다. 엄마 말에 의하면 역에서 오전 8시 7분에 출발하는 열차가 있다고 했다. 4호선의 종점지인 당고개역이 아닌 창동역에서 출발하는 그 열차는 좌석이 텅 비어있다. 사람들은 도착역까지 앉아서 가기 위해 앞서 도착한 열차들을 모두 보내버리고 길게 줄을 선다고 했다. 우리 역시 그 열차를 타고 갈 거라고 했다. 우리가 내릴 역은 성신여대입구역이다. 출근할 공장은 6호선 보문역에서 가깝지만, 출퇴근 시간에 성신여대입구역에서 우이신설선으로 갈아타는 건 (진짜) 지옥이기 때문에 우린 성신여대입구역에서 내려 20분 정도를 걷기로 했다.
정확하게 8시 7분이 되자 열차가 들어온다는 신호음이 들렸다. 사람들이 일순간 앞사람의 등 뒤에 바짝 몸을 대는 게 느껴졌다. 텅 빈 열차가 들어오고 그 열차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 날렵하게 움직였는데, 대단했다. 내심 놀라서 엄마를 보자 엄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 눈썹을 쓱 올렸다가 내렸다. 우리는 역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쉽게 내리기 위해 자리에 앉지 않고 출입문 옆에 바짝 붙어 서서 갔다.
봉제공장은 성신여대입구역에서 성북천을 따라 15분 정도 걸어서 내려오면 보이는 갈색 벽돌 건물의 3층이었다. 보문동은 워낙 봉제공장이 밀집해있는 곳이라 원단을 나르는 봉고차와 큰 오토바이가 골목골목마다 눈에 띄었다. 얼핏 보기엔 똑같이 생겨서 엄마 없이 찾아오라고 한다면 못 찾을 것 같은 골목이었다. 건물의 계단을 오르며 엄마는 2층과 3층 사이의 화장실을 보여주고 곧장 3층으로 올라가 공장의 문을 열었다. 의정부에서 출퇴근한다는 이모가 먼저 와서 인터로크를 밟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따라 이모에게 걸어가면서 공장 안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곳곳에 박혀있는 크고 작은 비닐봉지 속 실뭉치들. 공업용 미싱과 인터로크, 오버로크 기계가 각각 늘어서 있었다. 각 미싱 앞에 아이론대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 위엔 재단용 가위와 어두운 색의 옷감이 늘어져있었다.
“우리 딸이야. 인사해.”
“안녕하세요!”
나는 이모에게 최대한 밝게 인사를 했다. 이모는 갑자기 등장한 나의 존재에 놀란 듯 엄마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우리 딸, 일 배우러 왔어.”
“뭐?”
“일 배우러 왔다고.”
“이 일? 정말?”
의정부 이모는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날 위아래로 훑었다.
“왜 이런 일을 배워? 힘들 텐데…”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고 엄마는 "그냥"이라고 말하고 별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이모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다는 듯이 다시 인터로크를 힘껏 밟았다.
“앞치마 꺼내서 입어.”
엄마는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에게 말했다. 먼지와 실밥이 붙지 않는 재질의 앞치마는 출근 전날 미용용품 가게에서 사 온 것이다. 그 가게엔 여러 색과 사이즈의 다양한 작업복을 팔고 있었다. 나는 내 종아리까지 오는 길이의 긴 앞치마를 꺼내 팔랑 펼쳐서 팔을 꿰어 입었다. 곧이어 성북구청 근처에서 산다는 이모가 출근을 했다. 엄마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나를 소개하고 인사를 시켰다. 성북구청 이모는 날 보더니 왠지 농담부터 꺼냈다. 엄마는 깔깔 웃었다.
‘6’은 신나게 적응했는데 출근인 ‘9’는 한참 적응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병동에서 퇴원했을 즈음엔 꽤 이른 시간에 일어나 활동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일을 시작하면 다 그런 것일까. 9 to 6에 적응하는 것에 방법은 따로 없었다. 그냥 해야만 했다. '못한다'는 말이 무력해질 때는 바로 '그냥'의 등장 다음이다. 지난날 직장을 구하지 못해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여겼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일을 구하고 나서도 나는 끊임없이 나를 잘 타일러야만 했다.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이제 '그냥' 일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9 to 6까지 하는 마당에 미싱, 그것쯤 별 거 아닐 거다.
졸린 눈을 비비며 힘들게 아침을 시작하는 나는 조금이라도 더 자기 위해서 곧 화장을 포기했다. 기계와 실뭉치에서 튀어나오는 먼지 때문인지 화장품을 바른 얼굴이 가렵기도 했다. 나는 어느새 민낯에 선크림만 바르고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