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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율 Aug 24. 2020

서른한 살, 미싱사

프롤로그


  본격적으로 미싱을 배우기 시작한 건 2019년 9월부터다. 왜 뜬금없이 서른 살 내 인생에 미싱이 튀어나왔냐면 당장 써야 하는 생활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신과 보호병동 퇴원 후, 제대로 된 직장도 아르바이트도 구하지 못해 돈이 궁해진 나는 당장 수입의 30%를 떼어주겠다는 엄마의 제안을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다. 엄마는 평소에도 '사람은 기술이 있어야 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엄마에겐 딸인 내가 드디어 기술을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이후 나는 엄마를 따라다니며 미싱을 배웠다. 사실 배웠다기보다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미싱을 돌렸다. 매일 아침, 봉제공장으로 출근하면 원단에 맞는 실을 찾고 기레빠시(자투리 원단)에 일자 박기와 곡선 박기를 연습했다. 엄마 옆에서 곁눈질로 공업용 미싱과 인터로크가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엄마는 36년 차 미싱사다. 공장에서 그녀는 모르는 것이 없었고 못하는 일이 없었다.


  미싱을 다루는 일은 무섭고 어려운 일이다. 나는 지금도 미싱을 잘 못 돌린다. 그렇지만 어느새 내 앞엔 미싱사란 설명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미싱을 배우며 가장 크게 깨달았던 것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가 잘하는 것보단 못하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살면서 내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고민해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미싱을 배우며 내가 못하는 것들과 촘촘히 부딪쳐왔고 지금도 그렇다.


  때론 미싱을 배우는 걸 두고 무모하다 소리를 듣기도 했다. 누군가는 지금이라도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무모하지 않은 일도, 빠르고 늦은 일도 없는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의 말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미싱을 배우고 남는 시간엔 다른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점이 더없이 좋았다. 나는 미싱을 돌리고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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