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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사삼공삼 Jun 12. 2022

단편소설 #1

죽은 황제의 도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안녕하세요! 죽은 황제의 도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 어감이 별로라구요? 하긴, ‘죽음’이 앞에 붙어 있으니 영 찝찝하긴 하죠?


하지만 뭐 유명하잖아요 이 도시, 때깔 좋게 죽기 좋은 곳으루요. 하하하! 자, 선생님, 이리로 와 앉으셔요.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소파를 준비해 두었답니다. 저는 선생님께 최고의 죽음을 선물해 드릴 ‘죽음 코디네이터’입니다.


곧 인생에 단 한번인 귀한 죽음을 맞이하실 텐데, 깃털마냥 가벼운 마음으로 가실 수 있게! 지금까지 꾹-꾹 눌러 참으면서 하지 못했던 것들, 간절히 해보고 싶으셨던 것들! 하나도 빼놓지 말고 다 말씀해주셔요. 저희 ‘황제 서비스’에서는 선생님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디자인해드린답니다.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아쉬웠던 게 있으신가요? 절세 미녀와의 하룻밤은 어떠신가요? 미남도 물론 준비되어 있습니다! 혹은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재료로 만든 귀한 요리를 맛보시는 것도 가능합니다. 중력 제어 장치를 적용해 만든 무중력 침대에서 우주선을 탄 것 마냥 둥둥 떠다닐 수도 있으셔요. 손을 대기만 해도 녹아버릴 것처럼 보드라운 천으로 돌돌 감싸 드리는 건 어떨까요? 어떤 분은 스파게티로 가득 찬 풀장에 점프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구요! 궁금하실까봐 말씀드리자면 토마토 스파게티였답니다. 

 마지막 날까지 불리우고 싶은 이름이 있나요? 그럼 지금부터 그 이름이 선생님의 이름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로 둘러싸여서 떠나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자연의 일부가 되고 싶으신가요? 주무시는 것처럼?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면서? 말씀만 하세요! 모든 방법을 총 동원해 그 바람을 이루어드릴 거랍니다.


어떻게 이런 사업이 가능하냐구요? 음, 좀 긴 이야기인데 들으시겠어요?


사실 이 도시는 정말 작은 도시였어요. 도시라고 부르는 것도 과분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허허벌판이었죠. 판자집 몇 개가 겨우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나이 지긋한 부인이 와서 이곳에서 죽음을 ‘선택’하셨어요. 저 멀리 있는 어떤 나라에서 오신 분이었는데, 아마 ‘무지개가 뜨는 나라’에서 오신 분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무튼, 그 분은 그 먼 곳에서 이 동네의 장례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셨대요. 어떤 식이냐구요? 아, 누군가가 삶을 다하면, 그 사람이 살던 마을에서는 축제가 벌어져요. 돼지도 잡고, 닭도 잡고, 술도 마시고, 무튼 하루 내내 그렇게 먹고 마시다 다들 지쳐 잠들면, 그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어르신이 특별히 만든 독주를 단숨에 들이키셔요. 그리고 포대기에다 차게 식은 그 몸을 대강 감싸서는 말 안장에다 묶고, 술기운을 빌어 저기, 저 벌판 보이시죠? 저 벌판을 뛰다가, 걷다가 하는 거예요. 해도 뜨고 술도 깰 때쯤 되면 포대기는 비어 있고, 안에 들어 있던 건 언제 어디서 흘렀는지 알 수가 없게 되죠. 그 분은 먼 곳에서 오셔서 이곳의 자연이 되셨어요. 

 그런데 아마 그 분이 생각보다 유명한 분이셨나 보더라구요? 그 이후로 심심치 않게 그분처럼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분이 찾아왔어요. 그걸 본 저희 아버지는 무릎을 탁! 치셨죠. 이거다! 하고. 그렇게 ‘황제 서비스’ 회사를 런칭하셨고, 작디 작은 마을은 지금처럼 사람이 바글바글한 큰 도시가 되었어요. ‘죽은 황제의 도시’라는 건 처음 죽음을 택하러 이 마을에 오셨던 그 분을 기리기 위한 이름이에요.


지루했죠? 아휴, 제가 괜한 이야기를 해 드렸네요. 1분 1초가 아까운데 말이예요! 자, 저희 서비스는 3일 코스, 5일 코스, 7일 코스가 있어요. 대체로 5일 코스를 많이들 택하시지만, 원하신다면 맞춤으로 일수를 조정한 코스를 제공해드릴 수도 있어요. 간혹 날짜를 확실히 정하고 싶지 않으시다고, 설정한 일정만 다 소화한 이후라면 랜덤하게 언제든지 자연스럽게 코스를 종료해달라고 하시는 분도 있으세요. 무엇이든, 원하시는 대로 다 들어드릴 거예요. 말씀만 해 주시면요!


가격은 어떻게 되냐구요? 어머, 그건 못 들으셨구나! 저희는 돈으로 대가를 받지 않아요. 오면서 보셨나요? 5층으로 된 커다란 건물이요. 네. 그게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죽음의 도서관’ 이예요. 코스와 옵션을 다 정하시고 나면 도서관 1층의 ‘작성실’에서 선생님이 남기고 가실 모든 정보를 두고 오시면 되세요. 무엇이든 괜찮아요. 살면서 느꼈던 작은 깨달음이라던가, 선생님의 전문 분야에 대한 고발도 괜찮구요, 다시는 상종하지 말아야 할 사람 리스트도 좋아요. 세세한 고발 내용이 적혀 있다면 더욱 멋지겠죠. 어떤 특정한 물건에 대한 사용법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선생님의 머리 속에 있는 모든 정보를 다 활자로 작성하고 온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만약 몸으로 하는 특정한 기술이 있으시고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싶으시다면, 영상으로 찍으실 수도 있어요. 


다만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은 분류에요. 1단계에서 5단계까지 나누어 주시면 되는데, 사실 대강 분류하셔도 괜찮아요! 귀찮잖아요! 꺄르르! 대표님께는 제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 말아주세요…! 저 혼나요오….? 제일 중요한 건 5단계에는 열람 조건을 입력하셔야 한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입력한 정보를 읽고자 하는 사람은 하루 세 번, 읽고자 하는 정보에 접근해서 답을 입력할 기회를 얻을 수 있어요. 네, 하루 세 번 뿐이에요. 한 가지 정보에 대해서 입력할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세 분이 입력한 정보에 대해서 입력해볼 수도 있어요. 그 사람이 입력한 정보가 열람 조건에 부합하는 경우에만 열람이 가능하답니다. 어떤 정보를 5단계로 설정하느냐, 그건 정해져 있지 않아요. 선생님 마음대로 하시면 돼요. 실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 뭐 이런 속마음도 괜찮구요, 어딘가에 보물을 숨겨 놓았다, 이런 것도 되구요. 아, 분량 제한은 없어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구요? 글쎄요, 중요한 건 그 열람 조건을 맞추기 위해 오늘도 수백, 수천명의 사람이 ‘열람실’에서 제발 이 답이 맞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거죠. 어떤 사람이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정보가 어쩌면 큰 행운을 가져다줄 거라고 믿으면서요. 그들은 먹고, 입고, 잠들기 위해 이 도시에 머물면서 돈을 지불하고 있어요! 재미있지 않나요? 사람들은 죽기 위해 전 세계에서 이곳에 오는데, 그 덕에 여기 사는 사람은 더 맛깔나게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요. 나아가 선생님들께 더 멋진 죽음을 선사해 드릴 수 있는 자본력이 생겼죠. 이게 바로 선순환 아니겠어요!


결정을 다 내리셨어요? 아 아직도 조금 선택하기 어려우신가요? 선생님은 꽤 신중하게 살아온 분인가 보군요! 자, 여기 최근 석 달간 다른 분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았던 다섯 가지 항목에 대한 열 가지 옵션을 추린 체크리스트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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